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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태 Jan 19. 2020

감정유실

글이 써지지 않는다. 글을 써야겠다고 한글창을 열어놓으면 머릿속에도 한글창이 열린다. 노트북 화면이나 머릿속이나 똑같이 새하야니 멍-하게 있게 된다. 명령체계를 잃은 손가락은 연신 키보드 위에서 헛 손가락질만 하다 오른쪽 맨 위 엑스표시를 향해 커서를 움직인다. 화면이 바탕화면으로 바뀌면 어지럽게 놓인 파일과 폴더들이 나온다. 머릿속도 복잡해진다. 


 글을 쏟아내던 때가 있었다. 어디엔가 무언가를 적어두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때였다. 자주자주 수첩이나 휴대폰 메모장을 열어 생각이나 보았던 장면들을 적어두었다. 적어둔 메모가 하나의 글이 되는 일은 드물었지만 가끔 수필이 되거나 시가 되곤 했다. 감정이 풍부했던 시기, 그만큼이나 괴로웠던 시기였다.  


 마음이 닳아버렸다. 현실에 많이 부딪혀버린 탓일까, 언제가 한 번은 친구에게서 영화를 추천 받은 적 있었다. 여행 스타일도 맞고 추구하는 삶의 방향도 비슷해서 꽤 오랫동안 우정을 이어온 친구였던 지라 감정적으로도 꽤 비슷했다.  


 “내가 봤는데 엄청 감동적인 영화였어, 그러니 너도 한 번 봐봐 틀림없이 좋을거야”


 좋아하는 색감에 잔잔한 배경, 즐겨 찾던 영화의 흐름. 이 모든 걸 갖춘 영화를 보고서도 별 다른 마음이 들지 않았다. 무엇보다 ‘저런 장면이나 대사를 아름답게 꾸며놓다니‘ 같은 불편한 마음도 살짝 올라왔다. 엔딩크레디트와 같이 덤덤한 마음이 올라왔을 때는 오히려 당혹스러웠다. 어쩌다가 이렇게 돼 버린 걸까. 


 누군가를 좋아할 때나, 마음이 식어갈 때, 상대에게서 부정당하거나 상처받아도 마찬가지. 삶이 단단해지고 있는 건지 냉소적으로 변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마음도 마찬가지로 쓸수록 닳고 마는 것일까. 삶이 괴롭기만 했던 날에는 하루빨리 무뎌지길 바랐으나 무뎌지고 보니 가끔 그때가 그리워지곤 한다. 


 글로 전할 수 있을 만큼의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에세이와 시가 떠나버린 느낌이다. 이제는 자료를 찾고 분석하고 의견을 내는 시사칼럼 같은 게 더 수월하게 써질 때가 많다.  어딘지 모르게 씁쓸해진다.


 지금보다 나이가 들면 얼마나 더 무뎌져 있을까. 그때는 이런 글조차 쓸 수 있을까, 나이가 든다는 게 이런 걸까, 어릴 적 글은 기본적인 문장체계도 없었으나 감정이 풍부했고 지금의 글은 그때보다 문장력은 생겼으나 감정이 메말라졌다. 그때의 글이 좋을 때가 있고 아닐 때 가 있지만. 이제는 그때처럼 쓸 수 없음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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