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영태 Feb 15. 2020

바다를 보는 일

 바다를 보는 일을 좋아합니다.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굽이치는 파도를 보고 있거나, 바람을 한껏 맞고 있거나, 누군가 즐겁게 웃는 소리를 듣고 있거나 하는 일말입니다. 해가 뜰 때와 해가 한창일 때, 해가 질 때의 모습 역시도 좋아합니다.


 바다를 보고 있는 지점에서, 그러니까 내가 서있는 곳에서, 내 시선이 닿는 끝은 어디일까 생각해보곤 합니다. 육지일지 아니면 끝 모를 바다일지, 육지라면 반대편에서도 누군가 바다를 바라보고 있을지, 혹 ‘나’ 같은 사람은 아닐지 말입니다. 시선을 길게 내어 바라보고 있으면 반대편에 있을 사람이 조금 걱정되고 안쓰러워집니다. 가능하다면 서로의 고민을 터놓고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먼 곳에서 눈 마주치고 있을지 모르니 말입니다.


 바다를 보고 오고자 했습니다. 대학을 그만두고자 했을 때나 퇴사를 결심했을 때처럼 말입니다. 그때처럼 홀로 바다를 보러 정동진으로 향할 생각이었습니다. 마지막 기차를 타서 덜컹거리고 소란스러운 사람들 속에서 맥주를 마시고 싶었고 불편하게 한숨 잤는데도 도착하기 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 이리저리 뒤척이며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고 싶었고 겨우 정동진에 도착해서는 일출을 보고 정동심곡바다부채길을 걷고 싶었습니다. 그 길에 쌓았던 돌탑은 잘 지내는지 보고 그렇게 걷다가 백반집에 들러서는 배고팠지 라며 물어봐주셨던 아주머니와 다시 한 번 인사를 나눠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사고를 당한 후 중국집에서 키워지다시피 하는 길고양도 잘 지내는지 보고 싶었습니다.  


  한동안 휴대폰을 꺼두고 있었을 때라 무작정 버스 막차를 타고 역으로 갔습니다. 예전에도 비슷한 시간에 다녀왔으니 별다른 문제없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역에 도착하고 보니 기차 시간표가 변경돼 있었습니다. 결국 헛헛한 마음만 가지고 다시 돌아와야만 했습니다. 휴대폰을 꺼두었던 건 일을 그만두고 쉬는 동안 듣고 싶지 않는 소식들을 들었고 궁금하지 않은 이의 소식을 들으며 지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삶의 윤곽에서 굴러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당신도 알고 있겠지만 당신은 저쪽에서 나는 여기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있었습니다. 

당신이 바라보는 나의 모습과 내가 바라보는 당신의 모습이 다른 채로 말입니다. 흐릿하고 불명확한 이야기의 결말은 당신은 저쪽으로 나는 이쪽으로 굴러 떨어지는 것 뿐 이었습니다. 우리가 얻었던 선명함이 겨우 이거 하나 뿐이라는 사실이 힘들기만 했습니다.      


  조만간 다시 바다를 보러 갈 예정입니다. 이번에도 혼자지만 휴대폰은 켜두고 갈 생각입니다. 혼자 여행을 떠나는 사람이 여행지에 바다를 보는 일을 꼭 넣어뒀다면, 그 사람의 마음속에는 풀어내고 싶고 당장이라도 내던져버리고 싶은 무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다 앞에서, 비릿한 바람을 맞으며, 휩쓸리게 두고 싶은 것들을 가만히 두어놓고, 맥주 한 캔 마시며 멍하니 있거나 누군가 폭죽을 터트리는 걸 보고 있다 보면 어딘가 한 부분은 꼭 괜찮아진다고 믿고 있습니다.


 나에게 있어 바다를 보고 싶다는 말은 괜찮아지고 싶다는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니 내가 홀로 바다를 보고 오고 싶다고 말하는 건, 내가 어떤 상태인지 알아달라는 겁니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오직 당신만이 알아줬으면 하는 말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알아도 당신만 모른다면 결국은 아무도 모르는 말입니다.  


 바다를 보고 오겠습니다. 언젠가 이 말을 당신께 한다면 내가 어떤지 알아봐주길 바랍니다. 그리고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나에게 물어봐주시길 바랍니다. 바다는 어땠는지, 이제는 좀 괜찮아졌는지. 사실 바다를 보고 온 거보다 당신의 그 말 한마디에 괜찮아질지도 모르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런 말을 할 수 있다는 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