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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태 May 19. 2020

어두워진다는 것

송화가루였다. 창문을 열고 잤더니 노트북 덮개 위로 수북하게, 잘 보이지 않지만 방 여기저기도. 노트북을 대충 닦아내며 생각했다. 청소를 해야겠다고. 오늘은 꼭 청소를 해야겠다고. 책상 위는 미납된 고지서와 찌그러진 맥주 캔과 몇 페이지 읽다가 던져놓은 책들로 어지러웠다. 책상 위뿐만 아니라 방 안 아무렇게 널어둔 옷가지들도, 쌓여있는 빨랫감도. 설거지거리도, 가득 찬 쓰레기봉투도.


 청소를 해야지. 청소를 해야겠다. 어제도 생각했다. 그 전날에도. 그 전전날에도 생각했다. 생각만 했다. 나의 날은, 나의 방은, 별다른 일 없이 내일의 방에 누워 있는 나에게 넘겨졌다. 저녁이 되면 허투루 시간을 보냈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도망칠 수 있다면 도망치고 싶었다. 

 
  5월에는 꽃가루가 많이 날린다. 그 사실을 잊고 있었다.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라서,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무신경하게, 아니 무신경이 맞았을까. 생각들, 그 사이로 송화가루가 들어왔다. 착실하게. 쌓였다. 방 여기저기로. 이건 착실함이 맞다.   


 청소기를 돌리고 방을 닦았다. 쓰레기를 버렸고 수건도 개어 넣고 겨울옷을 정리했다. 그릇을 씻고 책들을 정리했다. 오랜만에 방이 정돈됐다. 청소기 소리도 멈췄고 세탁기 돌리는 소리도 멈췄다. 그릇을 씻는 소리도 끝나니 방은 적막이 됐다. 잠시 평안했으나 곧 다시 어지러워질 거 같아 쓸쓸해졌다.  


 창문을 닫고 자야겠다. 무엇도 들어오지 못하게. 그럼에도 방은 어지러워질 테지만 그래도. 당장 내일이면 청소를 해야 할 상태가 되겠지만 그래도. 당분간은 무언가 쌓여있는 상태가 아니길 바랐다. 


 가만, 가만히, 이대로 머물고 싶었다. 


 * 나희덕 시집 <어두워진다는 것> (창비시선.2001) 中 어둠이라는 시의 시어를 몇 개 각색하여 문장에 사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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