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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태 Feb 22. 2019

Famine, 굶주림

#1


독일의 천문학자인 케플러는 말했다. 행성이 움직이는 속도에 따라 대응되는 음이 있다고, 케플러는 지구의 움직이는 속도를 음정에 대입했을 때 지구의 음정은 파와 미라고 했다. 파와 미, 이것을 이어 발음하던 케플러는 famine 이라는 발음과 유사해진다는 것을 발견했고 이것이 지구를 가장 잘 설명하는 단어라고 했다. famine, 라틴어로 굶주림이라는 뜻이다.


#2


케플러는 1571년에 태어나 1630년에 사망했다. 만약 케플러가 같은 시기 조선에서 태어났다면 중종시대에 태어나 선조시대에 사망한 것이다. 그 사이 임진왜란도 겪었을 것이다. (케플러는 30년 전쟁을 겪었다. 어느 곳에 태어났더라도 전쟁을 겪었을 것이라는 건 슬픈 일이다) 케플러가 살았던 시대를 본다면 지구를 famine 이라고 정의 한 것에 대해서는 아마 큰 이견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떨까,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케플러가 살았던 시대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것 없는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 여전히 그 속도의 음정은 파와 미다. 그 시대와 비교하면 적어도 한국에서는 조선시대보다 꽤나 풍족해졌다. 쌀밥은 당연한 것이고 닭고기를 비롯해 돼지고기 소고기 같은 고기류도 어렵지 않게 먹을 수 있다


한국에서만 하루 버려지는 음식물 쓰레기는 2만 톤에 달한다. 아프리카나 제 3세계를 제외하고는 우리는 적어도 ‘먹는 것’ 에는 극복한 것으로 보여 진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케플러에게 ‘famine’ 이라는 단어는 지구와 어울리지 않아요.’ 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을까    


#3           


굶주림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가 굶주림을 말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가난이다.

가난은 곧 굶주림이고 굶주림은 곧 생명활동 정지까지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famine 이라는 뜻에는 ‘아사하다’라는 뜻도 포함 돼 있다. 케플러가 살던 시대에 비해 우리는 먹을 것이 넘쳐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보니 ‘음식’ 이 ‘쓰레기’로 취급되기도 하며 매년 이 ‘쓰레기’ 처리를 위해 한국에서만 매년 30조원이라는 비용이 발생되고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적어도 한국에서는 굶주리는 사람은 없어야 할 것이고 적어도 먹는 것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어야 할 것이 맞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왜 이런 모습일까, 음식이 넘쳐나서 쓰레기로 버리는데 밥 사먹을 돈이 없는 사람들이나 끼니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제 3세계를 고사하고 주변을 둘러봐도, 잘 산다는 해외 국가들을 보아도, 여전히 굶주리는 사람들은 넘쳐난다. 이게 대체 무슨 경우란 말인가, 왜 여전히 가난과 굶주림은 제자리 비행하고 있는 것인가    


#4


무엇이 문제일까라는 것에 우리는 깊은 성찰을 해야 할 시간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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