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영태 Sep 20. 2020

우리도 결국 꼰대가 된다

 얼마 전 지인이 2.30대 청년들의 목소리를 담은 기획글을 묶는다고 인터뷰를 요청해왔다. 좋은 기회인 거 같아 별다른 고민 없이 응했고 청년활동가로 지내는 이유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중 질문 하나가 인상 깊었는데, 나의 20년 뒤 모습은 어떨 거 같은지였다. 나는 웃으며 “아마 꼰대가 되어있지 않을까요.”라고 답했다. 반쯤은 농담이었고 반쯤은 확신이었고 그렇게 되지 않길 바라는 염원과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체념 같은 걸 뒤섞은 채로 말이다.  


 지금 이 순간도 자라는 세대는 코딩이다 뭐다 우리 세대가 접하지 못한 걸 배워나가고 있다. 그런 것과 멀리 떨어져 쉰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을 때, 나는 얼마나 낡고 뒤쳐져있을까 생각하면 등골이 서늘해진다. 젊은세대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지 모른다. 급격하게 변하는 세상의 속도를 힘겹게 따라가는 지금의 기성세대처럼 말이다.   


 기성세대가 젊었던 시절과 지금세대는 취업, 문화, 노동, 인권, 젠더, 결혼, 육아등, 많은 부분에서  다르다. 기성세대는 그걸 인정하지 않고 단순히 본인의 ‘젊었던 시절’만 이야기한다. 이야기로 끝나는 게 아니라 이게 '정답'이라고 한다. 젊은세대의 말은 기성세대에게 잘 닿지 않는다. 그러니 대화가 될 리도 해결이 될 리도 없다.


 그래서 젊은세대는 기성세대를 비판한다. 그게 젊은세대의 의무와 권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간과하고 있는 게 있다. 우리의 ‘젊음’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 우리의 권리와 의무는 한정적이라는 것. 다음세대가 우리를 비판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는 걸 말이다.


 태어나고 지금까지 젊음을 누리고 있는 시점에서 부조리하다 느끼는 모든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최대한 개선하고 개량시키고 여과시킨 뒤 해결하지 못한 문제는 다음세대의 몫으로 남겨둘 수밖에 없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참으로 미안한 문제다.


 다음 세대 활동가들은 똑같이 말 할 거다. 왜 이런 세상을 물려줬냐고. 어쩌면 한심하다 욕할 수 있다. 전부 틀렸으니 물러가라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이 다가올지도 모른다. 그때 우리는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왜 우리가 바꾸어 낸 부분은 인정해주지 않냐고. 지금 우리가 기성세대에게, 지금 기성세대가 우리에게 하는 것과 똑같이 서로에 대한 인정이나 이해도 없고 비판과 비난, 혐오만 오고 가는 대물림된 세상에서 말이다.

 

 사람이라면 인정받고 이해받고 싶어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 지금의 기성세대가 젊었을 때 이런 세상이 올 줄 꿈에서라도 알았을까.  지금은 맞다고 생각하는 가치가 시간이 지나면 틀렸다고 할 수 있는 걸, 따라잡지 못하는 기술에서 허덕이는 걸 말이다. 마찬가지로 우리세대도 꿈에도 모를거다. 가까운 미래에 닥칠 막연한 일을 말이다.

 

 이렇게 주절주절하고 있는 건, 사실 무섭기 때문이다. 우리가 손가락을 들어 비판하던 위치에서 손가락질 받는 위치로 옮겨지는 순간은 반드시 온다. 모조리 부정당하는 순간도 반드시 찾아온다. 그러니 나는 종종 기성세대를 비판하되 그들의 노고를 인정해야 한다고 떠들고 다닌다. 무조건적인 비판은 하지 말자고 말한다. 진정으로 기성세대를 존경하고 위해서가 아니라 다음세대에게 하는 부탁으로 오로지 ‘나’를 위한 비겁한 고해성사로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청년활동가의 변명이거나 항변이거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