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격언처럼 마음에 품고 사는 말이 있다. ‘활동가의 삶이 활동을 제외하고 아무것도 없다면 불행하다’와 ‘활동가 친구가 아닌 다른 친구가 없다면 잘못 살고 있는 거다’ 이 두 가지 모두 언젠가 선배 활동가가 일러준 말인데 한대 얻어맞은 기분에 서늘해지기까지 했다. 돌아보니 나는 점점 불행한 활동가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연말이 되면 항상 우울했다. 한 해가 끝나간다는 울적한 기분도 한몫했지만 연말이 되면 대부분의 사업이 완료가 되기 때문에 ‘할 일’이 없다는 게 제일 큰 이유였다. 평소에는 일주일 전부를 ‘활동’과 관련된 일정으로 만들었고 대구를 떠나 다른 지역으로 가는 게 일상이었으니 말이다.
“너는 항상 바빠”
친구와 친한 직장동료들은 어느 순간부터 나를 늘 바쁜 사람으로 보기 시작했다. 그 순간이 자연스럽게 그들과 멀어지는 계기였다. 나는 ‘활동’이 먼저였고 그 외는 전부 후순위로 미뤘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사람과의 만남이나 약속까지 후순위였다. 혹시나 관계가 틀어져 활동에 지장이 생길까 염려하고 생각하고 망설이다 그렇게 끝나버리는 순간도 허다했다.
결국 나에게 남는 건 무엇이었을까. 활동가인 ‘나’의 역량과 경험, 보람은 높아질지언정 그 외 ‘나’는 무엇도 아니었다. 연말이 우울해졌던 건 그 때문이었다. 올해는 다짐했다. 일을 벌이지 말자고. 아, 일을 벌이더라도 ‘활동’이 우선이 아니라 취미생활, 경제기반, 인간관계 부분도 종종 우선으로 두자고. 지금까지는 살아왔던 습관이 있어 단번에 다짐을 실천하지 못하고 있지만 노력 중이다. 최근에는 선약이었던 일정이나 회의도 가끔 빠지고 약속을 가거나 ‘아, 저는 이날 안 돼요’라고 외치는 순간도 많아졌다. 일탈하는 기분이라 죄책감은 살짝 들지만 재미는 있다.
삶은 밸런스다. 어느 하나에만 몰두한다면 그 분야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을지언정 그 외는 전부 엉망이 될 수 있다. 나는 한 명이더라도 하나가 아니다. 다원적이고 다양한 욕구를 가지고 있다. 가족관계에서, 친구사이에서, 연인 사이에서, 직장에서 ‘나’의 모습과 욕구는 다르다. 직장에서 성공해 존경받는 인물이 된다고 해도 가정을 챙기지 못해 가족에게는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이 된다면 불행한 삶일 수 있다. 내가 속한 어느 곳이든 나의 모습이 다양하게 충족될 수 있도록 조절할 필요가 있다.
여기까지 이야기하면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근데 너는 활동가 아니냐고. 활동가는 공익을 우선시해야 하지 않느냐고. 그러니 ‘활동’이 자기 삶보다 우선시되어야 하는 건 당연하지 않냐고. 나는 말하고 싶다. 활동을 이유로 내가 사라지는 삶이 되거나 활동만이 내가 살아지는 삶이라면 이제 나는 못해먹겠다고. 활동도 좋은데 나는 이것만으로는 불행하니 행복해지겠다고. 취미생활도 하고 돈도 벌고 사람도 만나고 그러겠다고. 주변 몇몇 활동가처럼 되기 싫다고. 근데 뭐 욕먹을 짓은 어느정도 있으니 욕은 달게 먹겠다고 말이다.
활동가라고 ‘활동’만이 전부가 아니라 생각한다. 나의 모습 중 한 부분이 활동가일 뿐이다. 적어도 나에겐 그렇다. 아마, 누군가도 그럴 수 있겠다 생각한다. 그러니 너무 헌신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