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

일상 이야기

by rainy

1. 건강 검진

건강 검진을 했다. 평소 좋게 나오던 많은 부분에서 건강이 조금씩 나빠졌다는 결과를 받았다. 원래는 건강 검진을 하고 나면 평소에 식단 관리하냐는 말을 들을 정도로 나름 다 좋은 수치들을 받았었는데, 안 좋은 결과값들을 보니 적잖이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곰곰이 되짚어보니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드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툭하면 거르는 끼니, 그러다 현기증 날 때쯤 배달 음식 파스타 따위로 한 끼 겨우 먹던 식사, 평소 일할 때에 비해 현저히 없어진 운동량…

저녁에 가벼운 술 한 잔이야 10년이 넘도록 하고 있었으니까 그것보다는 위의 두 가지가 가장 달라진 일상이었는데, 아무튼 그랬다.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그렇게 건강이 조금씩 나빠지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번을 기회로 삼아, 일상을 바꾸기로 했다.


일단, 주말에 반찬을 만들었다. 아이가 생기고 난 뒤로 우리 반찬을 만든 것은 아마도 처음이었을 것이다. 이제는 아이만 잘 챙겨 먹일 것이 아니라, 나도 잘 챙겨 먹이기로 결심했다. 배달을 하나의 선택지로 두다 보니 자꾸 거기에만 기대는 것 같아서, 배달도 끊기로 마음을 먹었다.

또 하나, 매일 저녁에 빨리 걷기를 시작했다. 그렇게라도 최소한의 운동량을 채워야겠다.

마지막으로, 금주를 결심했다. 뭐 그동안도 마셔봐야 고작 하루에 맥주 반 캔에서 한 캔, 혹은 막걸리 반 통 정도가 다였어서 딱히 경각심이 없었는데, 어쨌든 그것도 건강이 좋을 때 얘기였다. 일상적인 술은 끊기로 마음 먹었다.


2. 상담

처음으로 상담이라는 것을 해보았다. 역시나 마의 목요일이었다. 남편의 회사 복지로, 당장 전화 상담이 가능한 서비스가 있기에 그것을 이용했다.

나의 엄마보다도 연배가 많으실 것 같은, 나이가 지긋하신 게 목소리만으로도 느껴지던 분이었다.


사실 50분 통화에 별로 할 말은 없었다. 육아가 힘드네요… 그런 말을 하고 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침묵이 지속되자, 그분께서는 먼저 이것저것을 물어 오셨다. 부모님, 형제, 남편의 부모님, 성장 과정에서 부모에게 의존해온 정도 그런 것들을.


그분은 단기 상담이라 그런지 단 한 번의 통화로 내 문제를 빠르게 진단해주셨다. ‘너무 고단하게 살아왔네요.‘ 하실 때는 살짝 울컥하기도 했다. 어려서부터 주변에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보니 지금의 상황도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왜 사회 시스템의 도움을 받지 않냐고, 지금 시기부터는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도 괜찮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쓸데없는 완벽주의를 내려놓으라는 말씀도 해주셨다. 그때부터는 거의 긴 설득에 가까웠다.


그래, 어린이집에 가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휴직 기간 중 어린이집에 보낸다고 해서 꼭 아이를 방치하는 것은 아니다, 덕분에 그런 생각이 피어났고, 다음 날 대기를 걸어두었던 어린이집에 상담을 다녀왔다. 대기 순번 1번인 상태에서 죄책감 때문에 계속 요리조리 월을 미루고 있던 참이었다. 막상 상담을 가보니, 적어도 내가 해주는 것보다는 훨씬 다양한 활동들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그래, 보내보자! 자리 비면 연락 주세요. 하고 돌아와 그날 밤 잠에 드는데 왜인지 또 아기에게 미안해져 다시 또 고민을 시작하게 되었지만 아무튼 그렇다. 어쨌든 생각의 변화가 조금씩 있는 중이랄까.


3. 열린 마음

최근에 후배가 추천해 준 책을 하나 읽었다.

요새 부동산에 관심이 생겨 유튜브랑 책을 끄적거리는 중이었는데, 그러면 재밌을 것이라며 추천받은 책이었다.


제목은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 ㅋㅋㅋㅋ 제목이 적나라하고 노골적인 것이 김 부장을 풍자의 대상으로 삼은 글이려나 싶었는데 정말로 그랬다. 아니, 생각보다 더 그랬다. 김동리 소설 ‘화랑의 후예’에 나오는 황 진사랑 오버랩되기도 할 정도로, 김 부장은 시대에 아주 뒤처진 인물로 묘사되고 있었다. 세상이 변하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모른 채 낡은 관념에만 갇혀서 허우적대고 있는 꼴이, 처음에는 우스꽝스럽고 혐오스럽다가 나중에는 그냥 그도 단지 한 시대를 충실히 살아낸 죄밖에 없지 않을까 싶어져 짠하기도 하다가, 최종적으로는 그를 거울삼아 나의 현재를 성찰하기에 이르렀다.


안 그래도 남들 사는 대로 휩쓸려 안 살려고 하는 경향이 있는데, 나이를 먹을수록 주관은 더욱 확고해지고 주변에는 내가 존경하고 믿을 수 있으면서 게다가 굳건한 내 편이 있어주니, 가끔은 내 세계가 너무 좁아지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될 때가 있었다.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는 사람들 틈에서 두 발 붙이고 살아가는 것은 물론 좋은 일이겠지만, 생각까지 편협해지는 것은 경계해야 할 일이다. 나이가 들수록 오히려 열린 마음을 가져야지, 그런 다짐을 새삼스럽지만 다시금 했다.


김 부장은 그토록 그의 자존감을 필요 이상으로 드높여주던 대기업에서 해고 아닌 해고를 당한 후, (그가 평소 무시해오던) 형의 카센터 옆에서 세차장 일을 시작하게 된다. 누구보다 권위적이었고, 눈으로 보이는 몇 가지로만 사람을 계급을 나누어 줄 세우던 그였는데, 이제는 소위 말하는 ’똥차‘를 보고도 함부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 법을 조금씩 배우게 된다. 큰 일들을 겪으며 겸손해진 것이다.


한 사람을 설명하는 타이틀도 물론 그 사람의 시간과 노력으로 이루어낸 값진 결과임이 틀림없지만, 그것들을 다 내려놨을 때 나는 어떤 사람일 것인가 하는 문제도 그만큼 어쩌면 그보다 훨씬 이상으로 중대한 문제라는 것을 말해주는 책이었다. 부동산 지식이나 쌓아볼 겸 읽은 책이었는데, 어떻게 나이 들어야 할지 어떻게 나이 들면 안 될지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별개로, 요새 인생 처음으로 부동산에 관심이 생기면서 생각이 많아진다. 현명한 것이 무엇일까,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 그 경계에서 갈팡질팡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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