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사이 좋게 지내자
좋은 이야기만 쓰고 있지만
남편과의 이혼을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생각을 넘어 각오했던 적이 있었다.
그 순간에도
나는 남편이 여전히 좋았고 남편과 사는 것이 행복했지만,
그럼에도 남편과 안 보고 사는 것을 각오할 만큼
나에게는 괴로운 이유였다.
하필 그 각오 아닌 각오를 한 시점은
임신을 알자마자였다.
많이 울었었다.
특히 출퇴근하는 2시간의 운전 길에서
그렇게 울면서 운전을 했던 것 같다.
임신 초기 검진을 갈 때면
초음파를 보는 중 조바심에 '아이 심장 안 뛰나요?'를 먼저 물어서 의사 선생님께서도 왜 그런 말을 하냐고 하실 만큼 스트레스를 크게 받았었다.
이 정도의 스트레스면 이러다 아이가 유산될 수도 있겠구나,
나도 모르게 생각했던 것 같다.
어느 날에는 각오가 섰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나를 괴롭게 하고 싶지 않았다.
이대로 살다가는 어차피 병에 걸리거나
아니면 운 좋게 병에 안 걸리고 어떻게 살아간다 하더라도
죽기 전의 순간이 왔을 때
내 삶 전체가 후회되고 억울할 것임을 짐작했다.
그때도 내가 남편을 사랑할 수 있을 것인가 물었을 때,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남편인데
생의 과정에서 원망하는 사람으로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내 생이 아까워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남편을 아무리 사랑해도
나는 그 전에 내 생을 잘 살아내고 싶은 사람이었다.
이제 나는 나를 괴롭히는 것으로부터 빠져나올 생각인데 혹시 그것이 남편에게 있어서 결혼 생활에 중요한 요인이라고 생각된다면 우리는 여기까지인 것 같다고 말했다.
아기는 미안하지만 지울 생각이고
우리도 정리가 끝나면 나는 혼자 지방에 내려가서 살겠다고 이야기했다.
남편은 진지하게 들어주었고
다 들은 후에도 화내지 않았다.
나랑의 결혼 생활이 좋다고 답했고
이혼 생각 같은 것은 조금도 없다고 했다.
그렇게 내 편에 서주었다.
나는 그 말이, 그 선택이 두고두고 고맙게 느껴졌다.
남편은 말을 무겁게 하는 사람이고
자기가 한 말은 책임을 지는 사람이기 때문에
남편의 말을 믿을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나름의 위기를 겪었지만
그 뒤로 꽤 잘 지내고 있다.
이때 생각이 가끔 난다.
지금 우리가 행복하다고 해서, 잘 지낸다고 해서
그게 언제까지나 그럴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게 결혼 생활인 것 같다.
다 좋아보여도 들여다보면 나름의 사정이 있고
다 안 좋아보여도 또 나름의 끈끈함이 있을 수 있고.
'영원히 사이 좋게 살았습니다'와 같은 끝맺음은
평생을 서로를 놓지 않고 노력하고 또 노력하다가
여기에 운까지 어떻게 잘 따라준다면
그때, 삶의 끝에나 가서 말해볼 수 있는 위대함일 것이다.
가끔은 내가 기준이 너무 높은 게 아닌가?
그냥 적당히 70점 정도만 돼도
이쯤이면 됐다 만족스럽다 여기며 살아가도 좋지 않을까?
싶을 때도 있는데.
이상하게 다른 것에서는 그게 일부 실천될지라도
결혼 생활에서는 그러고 싶지가 않다.
서로가 가장 친밀하면서도 정중하고
서로를 그 누구보다 최고로 존중하고 배려하고
서로를 내가 가진 가장 좋은 것이라고 여기고
서로에게 적어도 나의 최선을 보여주는 모습으로
쭉 가고 싶다.
잘 되든 서투르든 적어도 그런 의지를 가진 채로.
오늘 사이 좋은 것은 오늘까지의 일,
내일도 사이 좋게 지내야지 하는 마음으로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