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사랑하는 기분

너는 나랑 똑 닮았다

by rainy

아이를 갖기 전, 만약 아이를 갖는다면 막연하게 남편 닮은 아들을 갖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딸보다 아들을 선호해서가 아니라, 남편의 어린 시절 사진을 보고 너무 귀여워 한눈에 반해버린 나는 그 아이를 꼭 만나보고 싶다는 소망이 생겼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나는 남편의 꼬꼬마 시절은 물론이고 10대의 중고등학생 시절, 20대의 대학생이던 시절, 잠깐 지방에서 일했을 시절 등등 남편의 모든 시절이 그렇게도 궁금했다. 첫사랑 이야기도 궁금하고 처음으로 소개팅이라는 걸 해봤을 때의 이야기도 궁금했다. 남편을 조르고 졸라 짧게라도 겨우 몇 마디 들을 때면, 나는 눈을 반짝이며 설레는 마음으로 들었다. 그때의 남편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상상 속의 남편은 어느 시절이든 나한테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그런 남자 아이였기 때문에 그걸 내 아이를 통해 일부라도 보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아이를 정말로 만나게 된다면 나는 그때는 인생 중간이 아닌 처음부터 사랑해주고 싶었다.


나는 딸을 낳았다. 사실 딸인 것을 안 순간부터, 딸이어서 더 좋다고 생각했다. 아마 아들이었으면 또 아들이어서 더 좋다고, 소망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했겠지만, 정말로 딸이어서 더 좋았다. 비록 소망은 살짝 빗나갔지만, 사실 체력적으로나 성격적으로나 나는 아들보다는 딸을 그나마 더 잘 키울 자신이 있었기도 하고, 잘 키운 딸과 가능하다면 오래도록 영원토록 마음을 나누는 좋은 친구로 남고 싶었다.


딸은 길쭉한 눈매는 아빠를, 새 부리 같은 입술은 나를, 예쁜 인디언 보조개는 아빠를, 하얀 피부는 나를, 지금으로서 큰 키는 아빠를 닮았다. 고루 닮은 것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전체적인 분위기는 점점 나를 똑 닮아간다. 가끔 내 아기를 보면, 마치 내가 아기였던 시절의 내 사진을 보고 있는 것만 같아서 깜짝 놀랄 때가 있다. 내 아기를 보고 있자면 나를 보고 있는 것 같다. 내 아기를 사랑하고 있는데 나를 사랑하고 있는 것 같다. 내 아기에게 뽀뽀를 퍼붓고 있는데 어쩐지 내가 나를 예뻐하고 있는 것 같고, 내 아기에게 화를 낼 때조차 어른인 내가 어린 나에게 화를 내고 있는 기분이 들어서 멋쩍을 때도 있다. 아이와 나를 동일시하는 것을 경계하려고 하는데, 이 감정은 심리적 동일시라기보다는 그저 외모가 너무 닮아서 느끼는 착각에 더 가까운 느낌이다.


하여, 남편의 어린 시절을 구경하고 인생의 처음부터 사랑해주고 싶다는 소망은 이루어지지 못했으나, 어쩌면 그보다도 더 귀할, 내가 나를 다시 처음부터 사랑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나를 구석구석 사랑해주지는 못했었다. 매번 상황에 따라 자존감이 높은 편인지 낮은 편인지조차 헷갈리는 것을 보면 자존감이 그렇게 높은 편도 아닌 것 같다. 그런 내가, 나를 꼭 닮은 내 아이를 사랑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나 자신에게는 그러지 못했지만, 내 아이에게는 구석구석 사랑해주고, 잘해도 못해도 무조건적으로 사랑하고 수용하고, 사랑한다고 틈날 때마다 말해줄 수 있다. 그리고 그래야 마땅하겠지. 그래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 아기를 사랑하며 키우는 일인 동시에 다시 인생의 처음부터 나를 찬찬히 사랑해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고 여기련다.


그 정도로 내 아기는 나를 꼭 닮았다.

(하지만 아기야, 세상 무던하고 단순한 성격과 지능은 되도록 모두 아빠를 닮아주길 바라…^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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