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함보다는 불완전함이 필요한 순간

힘 빼기

by rainy

결혼을 하고 초반 몇 달간 나는 꽤나 애를 썼다. 결혼 생활에 대한 그의 만족도가 높기를 바랐는데, 이 부분에서 나는 거의 ‘그래야만 한다’ 정도의 문제로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내가 하자고 해서 한 결혼이었기 때문이다. 나를 믿고 여기까지 와준 고마운 사람이었다. 물론 내 제안에 그가 오케이 한 것도 그의 주체적인 선택이었겠지만 그럼에도 나는 자꾸만 책임감에 휩싸였다.


퇴근 후 그의 집 도착 시간은 저녁 7시 30분, 나는 5시 30분. 2시간의 여유가 내게 있었다. 나는 그 시간 동안 집 청소와 화장실 청소, 저녁 식사 요리, 완벽한 식탁 세팅까지 마무리하곤 했다. 그렇게 하려고 아주 애를 썼다. 청소야 집도 작고 쓸고 닦는 것에 그나마 흥미와 소질이 있었는데, 요리가 영 서투른 나는 퇴근 후 1분 1초가 바쁠 수밖에 없었다. 양파를 네모난 깍두기처럼 썰면서도 칼질에 안 익숙했기에 무엇보다 재료 손질에 시간이 많이 걸렸고, 모든 요리는 레시피에 눈을 박고 순서대로 따라가야만 그나마 요리 비슷한 것이 나올 수 있었다. (물론 가끔은 그조차도 안 되었다.)


어떨 때는 이렇게까지 숨차게 할 일인가 싶었지만, 누군가 해야 할 일이라면 이왕이면 좀 더 시간적 여유가 있는 내가 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 있었다. 무엇보다 근무 시간이 나보다 길고 퇴근 시간도 나보다 늦는 그가 집에 왔을 때는 오롯이 편안하게 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다. 그러려면 그가 오기 전에 집안일할 것들을 남김없이 끝내놓아야 할 것만 같았다. 그가 퇴근하고 오면 집은 늘 깨끗하고 식탁에는 방금 막 완성한 따뜻한 음식이 차려져 있었으며 휴식을 취하는 것 빼고 해야 할 일 따위는 없었다.


다만 매주 수요일 아침에 이루어지는 분리수거만큼은 그가 꼭 하는 편이었는데, 보통 화요일 저녁에 내일 아침에 들고 나가기 쉽도록 그는 베란다에 있었던 내용물들을 현관 쪽으로 정리하여 내어놓곤 했다. 평범한 화요일이었다. 그날따라 모든 집안일을 다 해두었는데도 시간이 남아 평소 그가 하던 것을 대신해놓기로 했다. 내일 들고 나갈 분리수거 박스들을 신발장 쪽으로 가져다 두었다. 그런데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오는 그의 표정이 왜인지 밝지 않다. 저녁을 먹으며 이어지는 대화에서도 그답지 않게 신경질적이다. 결국 내가 이유를 묻자 그의 대답은 이러하다.


자기가 알아서 할 분리수거를 대신 정리해둔 것이 꼭 재촉하는 것처럼 느껴졌으며 평소 집안일을 혼자 다 감당하려고 애쓰는 것 또한 부담스럽고 특히 퇴근하고 왔을 때 저녁 식사가 완벽하게 다 차려져 있는 것이 제일 부담스럽다는 것이었다.

한 번씩 힘들다는 내색을 한 내 탓도 있었다. 하지만 항상 그렇듯 금세 나는 힘을 냈고 기꺼이 하는 것들이었기에 그의 남 같은 말에 서운해지고 만다.

- 그냥 누리면 안 돼? 다 되어있어서 너무 좋다 편하다 그럼 안 되는 거야?

- 그렇게까지 안 했으면 좋겠어. 그렇게 다 하고 결국 한 번씩 아프고 힘들어하잖아.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나는 깜냥도 안 되면서 죽어라 노력하고 있었던 것이다. 누구도 시키지도, 바라지도 않은 일을 혼자 굳이 굳이 다 하며 한 번씩 힘들어하는 나야말로 상대방을 불편하게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니, 방금 막 식탁으로 옮긴 따뜻한 음식을 먹이고 싶은 내 마음은 그에게 꼭 그 시간에 도착해야 한다는 압박으로 느껴졌겠구나, 뒤늦게 그의 마음이 이해가 갔다.


이를 계기로 나는 하나씩 하나씩 내려놓게 된다. 동시에 그는 하나씩 하나씩 할 일이 늘어나게 된다.


그런데 웬걸, 내 몸과 마음이 편해지는 것은 당연하고 그는 분명히 할 일이 더 많아졌는데도 예전보다 훨씬 마음이 편해 보인다. 무언가를 상대방에게 해줄 때 생기는 보람과, 이 집에서 내가 해야 할 역할이 있다는 기쁨을 나 혼자만 누리고 있었나 하는 반성까지 들었다.


지금의 그는 마치 우리집 도비처럼 부엌일을 포함한 온 집안일을 나보다 훨씬 빠르게 능숙하게 심지어 성실하게 잘 해내는데, 오히려 싸울 일이 없다. 그동안 서투른 나를 보며 얼마나 답답했을까…

나? 그가 뚝딱 만들어주는 세상 맛있는 요리에, 우리 엄마보다도 야무진 살림 솜씨에 물개 박수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아무튼 나는 완전 찬성이다. 관계에서 때로는 완전함보다는 불완전함이 필요하다는 것에 대해, 너무 힘을 주기보다는 조금은 힘을 뺄 필요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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