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월
자고 일어났더니 대참사가 일어나있다.
내가 안 일어나는 동안 아기가 심심했었는지 내 립스틱으로 침실을 그만…
아기 침대와 내 침대가 온통 립스틱 범벅이었다.
어쩐지 조용하다 했다. 덕분에 아주 잘 잤다.
눈 뜨자마자 내가 본 광경은 아기의 얼굴과 내복, 다리가 시뻘겋고 침대 패드도 시뻘겋던 것. 진짜로 비명을 지르며 일어났다. 으아아악!!!!!!
침대 패드 2개랑 아기가 입고있던 내복은 버려야 할 수준이고, 침대 밑에 깔아놓은 카펫과 베개 커버, 아기 담요는 몇 시간의 손 빨래 끝에 그래도 건졌다. 아이를 씻길 때도 온 몸에 립스틱 범벅이니 물로도 지워지지가 않아 클렌징 오일로 한 차례 씻어내야 했다.
1818 한다는 그 18개월이 한 달 빨리 왔구나.
오늘 그 욕을 속으로 내가 했던가.
청소를 마무리하고 나와서도, 뭐 하나부터 열까지 다 안 되는 걸 요구해서 안 된다고 못하게 하면 발을 쿵쿵 구르고 드러눕고 급기야 머리를 바닥에 박기까지 하는데, 아 이제껏 내가 육아서에서 본 그것들을 오늘 다 보는구나 싶었다. 육아서에서는 아이가 자기 뜻대로 안 돼 화가 나 머리를 박는 등의 자해 행동을 하면 쿠션을 갖다 대주랬는데. 현실에서 내 아이가 저러고 있는 모습을 보니 그냥 멍하니 바라보게 되었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 너는 뭐.. 뭐야?
울고불고를 몇 시간째 하며 떼를 쓰는데 나도 미쳐버릴 것 같아서 소리를 질렀다. 아랫집이든 윗집이든 아무튼 여기에 웬 미친년 하나가 사는구나 하고 뭐라 한마디 하려고 와봤다가, 우리집 문 앞에 아기가 자고 있으니 벨보다는 문을 두드려 주세요 하는 자석을 보면 그래도 아량 넓게 이해해주지 않을까 하며.
아기가 드디어 잔다. 울다 지쳐서 잔다.
다행인 것들을 억지로 막 찾아본다.
벽지에 바르지 않아서 다행이고
새빨간 그게 네 피가 아닌 립스틱이어서 다행이고
그래도 네가 아픈 게 아니어서 다행이다.
나는 골병 드는 것 같고 가끔씩 미쳐버릴 것 같지만
그래도 다행인 것들이 더 많으니까 다행이다.
내 요새 바람은
사람답게 살고 싶다.
밥이라도 편하게 먹고 싶다.
아이랑 몇 시간이라도 분리되는 시간이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