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너도 다 그러기로
희생 같은 소리하고 있네. 네가 전쟁 용사냐? 희생하게? 열심히 산 것 같은데 이뤄놓은 건 없고 행복하지도 않고 희생했다 치고 싶겠지. 그렇게 포장하고 싶겠지. 네 아들 지석이한테 말해봐라. 희생했다고. 욕 나오지, 기분 더럽지? 누가 희생을 원해? 어떤 자식이, 어떤 부모가. 거지 같은 인생들의 자기 합리화 쩐다 인마. 지석이한테 절대 강요하지 않을 인생, 왜 너한테는 강요해? 너부터 행복해라 제발. 희생이란 단어는 집어치우고.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나오는 대사인데
너무 좋아서 다시 천천히 따라 적었다.
자식은 내 몸에서 나온 분신. 나 자신만큼 사랑해야 하고 특히나 몇 년간은 내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 돌봐야 하는 대상이다. 동시에 부모의 순수한 이기심이 잔뜩 투영되는 대상이기도 하다. 다른 게 아니라 그저 ‘내 자식이’ 행복하게 살았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는 점에서 그렇다. 나는 아이를 보며 마음으로 자주 바라곤 한다. 혹여나 심성이 너무 착해서 남들에게 쓸데없이 끌려다니지 않기를, 남에게 피해 주지 않는 한에서는 그냥 좀 제 멋대로 자기 뜻대로 살 수 있기를, 때로는 미움받는 용기도 있기를, 나중에 어른이 되어 직업을 갖게 되더라도 너무 일에만 매몰되기보다는 삶을 좀 즐기고 살기를, 1인분의 몫은 충분히 하고 살 정도로 돈도 잘 벌었으면 좋겠지만 그것보다도 가치 있게 잘 쓸 줄 아는 사람이기를, 꼭 아빠 같은 사람 그만큼 진짜 좋은 사람 만나 결혼하기를, 사람 보는 것에서만큼은 타협하지 말고 꼭 좋은 사람 알아보는 눈이 있기를, 그리고 만약 혹시나 그때도 유교적인 시댁 문화가 남아있어 본인의 삶이 너무 침해 당한다면 단호한 결정도 내릴 수 있기를, 누구에게도 내 인생의 칼을 쥐어주지 말고 언제나 삶의 주인으로 살기를, 무엇보다 자기를 제일로 아끼고 존중하며 살기를 바라는 그런 마음이 든다는 점에서 말이다. 딴 것보다 그 무엇보다 내 자식이 행복했으면 좋겠는 마음, 모든 부모가 자식에 대해 갖는, 나쁘지 않은 이기심일 것이다.
저 드라마 대사가 나에게 유독 좋게 들린 이유는 평소 내가 하는 생각과 똑같아서이다. 희생 같은 것 하고 싶지 않고 해본 적도 없고 앞으로도 할 생각이 없다. 희생하는 사람을 위대하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할 생각이 없고 내 딸도 하지 않았으면 한다. 설령 희생하지 않으려고 하는 나를 누군가 비난한다면 나는 그 사람은 나를 아끼지 않음이 분명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 사람을 위해 희생을 바라는 사람이 이 세상에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의 희생을 바라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상대가 아닌 오직 자기 자신을 위하는 마음인데, 이것이야말로 이기심 때문인데, 그런 사람을 내 인생에 둘 필요가 있을까? 그 사람 없이 내가 죽고 사는 것도 아닌데.
내가 행동하는 건 그전에 내가 이것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다 내가 좋아서 한 거다. 과정이 어떻든 또 결과가 어떻든, 누가 칼 들고 협박한 것 아니고 내가 한 선택이기에 누군가의 탓을 할 수 없는 것, 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탓을 하려면 오직 과거의 나를 탓해야 할 것이기에 나는 종종 이걸 기준으로 삼는다. 나중에 내가 내린 선택을 후회하지 않을까, 혹은 그 선택을 내림으로써 가게 된 내 인생에 대해 나중에 억울하거나 아깝지 않을까. 여기서 억울하고 아깝겠다는 생각이 들면 그 선택지만큼은 피해야 하는 것이 된다.
물론 내가 좋아서 한 선택도 어떻게 마냥 편하고 쉬울 수가 있겠는가. 그런 건 잘 없다. 특히나 이루려고 하는 무언가가 가치가 있으면 있을수록 마치 가파른 오르막길을 오르는 듯 숨차고 힘든 기분이 계속 들기 때문에 걸으면서도 이게 정말 잘한 선택이 맞나 의구심에 시달릴 때도 있다. 하지만 이 길을 선택한 건 다른 사람이 아닌 명백히 과거의 나였다는 사실을 다시 상기하고 나면, 그 길을 다시 묵묵히 걸어갈 수밖에… 돌아온 길이 아름다워보일 때까지는 절대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마음 가짐으로 그렇게 걸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는 것이 녹록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지만, 그래도 그 기준과 마음으로 살아간 이후로는 점점 후회나 아쉬움 같은 것은 잘 안 하게 되고 내가 내린 선택에 최선을 다하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산 인생은 진짜 내 것, 내 인생 같이 느껴진다.
아직 내 딸은 겨우 17개월 차인데 이런 생각 너무 앞서가는 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나중에 내 딸에게 이 대사를 꼭 들려주고 싶다. 어떤 경우에도 너부터 행복해라. 어줍잖게 희생 같은 거 하지 말고, 네가 정말로 마음으로 끌리는 것들을 선택하고 그만큼 최선을 다해 감당하며 살아라. 혹시나 너 자신에게 자꾸 착함이나 옳음의 가치를 강요하게 되는 순간이 온다면 네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그렇게 할 것인지 되물어봐라. 그리고 네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할 대접을 네 자신에게 먼저 하며 살아라. 그렇게 말해주고 싶다.
이것은 다짐인가 소망인가… 아무튼 내 진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