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살고 싶어졌다

아이를 낳고 생긴 가장 큰 변화

by lovelyjio


죽음은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살아갈 법한 나이에도 죽음은 늘 가까이에 있는 기분이었다. 외가 친척분들 중 자살하신 분이 세 명이다. 나의 외할머니와 같이 그 시대에 있을 법한 희생적인 삶을 살아오신 할머니의 자매분들 중 세 분이 인생의 중후반기에 우울증으로 투병하시다 결국에는 자살로 생을 마감하셨다. 그 이야기를 전해 들었던 때부터 나는 어린 마음에 혹여나 피에 그런 게 흐르는 게 아닐까 싶었는지 엄마도 자살할까봐 두려웠다.


중학생이 되고 집의 형편이 기울었다는 걸 알았고, 학교에서 돌아오면 나는 엄마가 자살해 있을까봐 무서웠다. 우리 가족은 그 시간 속에서 여러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고맙게도 엄마도 아빠도 그 시기를 죽지 않고 최선을 다해 버텨주었다. 아빠의 절박했던 당시의 갈등은 내가 다 자라고 나서 들어본 적 있지만 다행히 그 선택은 실행으로 옮겨지지 않았다. 아마도 죽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이 부모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고등학생 때의 나는 엄마의 자살을 더 이상 걱정하지는 않게 되었지만 이제는 내가 자살하면 어떨까 생각을 많이 했다. 우울증은 아니었다. 우울하지 않았으니까. 다만 왜 살아야 하는지 왜 굳이 삶을 이어가야 하는지 왜 학교를 가야 하는지 그런 근본적인 물음에서 이렇다 할 답을 찾지 못해 자주 공허해했다. 아프다는 핑계로 학교를 자주 빠졌고 무단으로 지각도 많이 했다. 점심 즈음 학교에 가는 일이 많았다. 당시 담임 선생님들은 나를 많이 눈감아주셨다. 지각 체크를 적당히 해주실 때도 있었고, 학원에 간다는 서명을 학원이든 부모님께든 받아와야만 야자 째는 걸 허락해주던 선생님들도 나는 그냥 가고 싶다는 말 한마디에도 쉽게 허락해주시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위태로워보였나 싶다. 무기력하고 삶의 의지가 없어보이는 학생. 나도 교사가 된 후 그런 학생을 본 적 있는데 고등학생 시절의 내가 생각나 마음이 많이 쓰이곤 했다. 졸업할 때쯤에는 이미 더러워진 출결로 수능 100% 전형만 생각해야 했다. 공부 자체는 재미있었지만 마음 한 켠에 내가 25살에도 살아있을까가 늘 믿기지 않는 마음이 있어 당시의 지금을 열심히 살지 못했던 것 같다. 그렇지만 나는 25의 나이를 맞이했다. 그 나이를 맞던 순간 감회가 새로웠고, 그 시기를 안전하게 잘 지나자 그때부터 조금씩 믿을 수 있게 되었다. 아 나는 30살에도 40살에도 살아있겠구나, 이렇게 계속 살아가겠구나. 그럼 대비를 해야겠다. 그런 생각도.


어쨌든 대학은 갔고 평범하고 즐거운 대학 생활을 했지만, 마인드는 하루살이처럼 살았다. 하루하루 당장 필요한 학비와 용돈을 벌었고, 남는 시간에는 하루하루 놀았다. 참 한심하고 지금 생각해도 가장 후회로 남는 시간이다. 그 시간에 공부나 열심히 해서 장학금을 받을걸, 아님 차라리 그때나 갈 수 있는 배낭여행을 떠날걸. 그런 아쉬움이 남게 되었다. 하지만 어쨌든 매일같이 하던 자살 생각을 잠깐 하지 않았던 시간이었다. 하루하루가 단기적으로 재미있었다. 그러다 대학교 졸업을 하고 몇 년간은 아직도 삶의 목적을 찾지 못해 또 마음속으로 혼자만 아는 방황을 했다. 왜 살아야 하는지 왜 삶을 이어가야 하는지 그때도 여전히 알지 못해서 10대 때만큼은 아니었지만 가끔씩 공허해지곤 했다.


30대가 되고는 몇 년간 다시 자살 생각을 많이 하는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여전히 살아가야 할 이유를 못 찾았을 때다. 밤에 자려고 눈을 감으면 낮에 찾아본 실행 방법들을 머리로 계속 시뮬레이션했다. 같이 사는 가족은 오히려 눈치채지 못했지만, 속마음을 터놓던 친구가 당시의 나를 많이 붙잡아주었다. 거기서 한 발짝 내딛으면 그때는 진짜 위험해지는 거라는 친구의 말에 어느 날은 퍼뜩 정신이 차려졌다. 사실 깊은 속내는 죽고 싶지 않고 잘 살고 싶었나보다. 그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삶이 싫었을지도. 그때부터 나는 적금을 깨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여행을 다니면서 식견이 넓어진다든가 뭐 그런 대단한 걸 깨우치지는 못했지만, 세상은 너무 아름다우니 세상 구경이나 실컷 하며 살아도 삶의 의미는 충분하지 않을까, 그냥 좀 대충 살아도 좋지 않을까 오히려 그런 생각들을 하며 삶의 의지가 올라올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나름대로의 답을 찾았다. 그냥 사는 거라는 거. 그냥 태어난 김에 사는 거다. 그리고 내 의지가 아닌 운으로 얻은 생이니 오히려 감사히 여기고, 이왕이면 잘, 후회 없이, 충만하게 사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이 쉬운 답을 찾는 데 얼마나 긴 시간이 걸렸는지 모르겠다.


남편을 만나 처음으로 사랑을 했고 결혼을 했다. 연애를 그때 처음 해본 것도 아니었는데 남편을 만나니 내가 이전에 해오던 것들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나를 잘 아는 사람들로부터 냉소적이라는 평가를 많이 들어왔었는데, 진정한 사랑을 해본 적이 없어서였음도 깨달았다. 그때부터 나는 진짜로 살고 싶어졌다. 남편이랑 결혼을 하고 나니까 심지어 오래 살고 싶어졌다. 죽음 자체가 두렵다기보다는 죽으면 이 사람과의 인연이 끝날 거라는 게 싫었다. 연애를 해도 충분히 본 기분이 들지 않아서 결혼한 건데, 생을 다 채우고 나면 그때는 그를 충분히 본 기분이 들까? 궁금하다. 그랬으면 좋겠다.


아이를 낳기 싫었던 이유에는 생에 미련이 크게 없이 살아오던 내가 미련이 생길까봐 하는 이유도 컸었다. 요새 역시나 그 예감이 맞았구나 하고 매일 느낀다. 아이를 보니 너무 사랑스럽고 너무 귀해서 이 아이를 오래 보고 싶고 오래간 옆에서 지켜주고 싶어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어릴 땐 그렇게 죽고 싶더니, 막상 나이는 들어가는데 반대로 자꾸 삶에 끈덕끈덕한 미련만 늘어가고 간절하게 살고 싶어지니 좋은 일이 분명하지만서도 한편으로는 큰일이라는 생각도 든다. 간절함이 생긴다는 건 그만큼 마음을 쓰는 일이니까. 요새는 건강하려고, 잘 살아보려고 꽤 마음을 쓰는 중이다. 동시에 그런 마음도 한 켠에 가지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갑자기 죽을 수 있다. 많은 이들이 그렇겠지만 그걸 옆에서 몇 번이나 목격했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 아이가 내 품에 안겨 예쁘게 자고 있는 순간, 나는 지금 살아있다는 감각을 더욱 생생하게 느끼려고 한다. 나는 지금 살아있고 이게 사실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이 순간을 마음에 담는다.


이제는 살아야 할 이유도 뚜렷해졌고 살아가며 이루고 싶은 목표도 여럿 생겼다. 아이를 낳고 생긴 가장 큰 변화 중 하나일 것이다. 약간은 미션 깨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기분도 들지만, 인생이 예전보다 훨씬 재밌어지고 충만해져서 좋다.


결론은 오래 살고 싶어졌다는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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