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볼루셔너리 로드

결혼한 후에는 어떻게 되었을까

by rainy


이 영화에는 영화 ‘타이타닉’의 주역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케이트 윈슬렛이 아이를 둘이나 둔 부부로 등장한다. 타이타닉에서는 끝내 이뤄지지 못했던 잭과 로즈의 풋사랑이 이 영화에서는 사랑의 결실을 맺은 부부로서 등장하다니, 그때의 못다 한 아쉬움을 달랠 수 있으려나 기대했는데 영화가 전개될수록 내 예상이 완전하게 빗나갔던. 하지만 너무 잘 만들었다고 느낀 영화였다.


1. 인물

이들은 첫눈에 반해 결혼했다. 당시의 그 둘은 서로가 서로에게 첫눈에 반할 만큼 충분히 매력적인 외모의 이성이었고, 20대가 가질 법한 열정과 낭만으로 채운 대화들을 나누며 인간 대 인간으로도 그들은 서로에게 깊이 매혹되었다. 특히 개인적 성취에 관한 것들, 일종의 미래에의 희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 서로의 꿈을 한껏 응원하고 지지하는 사이였던 그들은 아마도 서로가 내 인생의 소울메이트라고 굳게 믿었을 것이다. 그렇게 그들은 사랑하는 남자 여자이자 서로를 온전히 믿어주는 삶의 동반자로서 부부가 되었고, 이름도 원대한 ‘레볼루셔너리 로드‘라는 도심과는 조금 떨어진 외곽 지역에서 그것도 그 중 가장 아름다운 집에서 그들만의 보금자리를 꾸리게 된다. 출발이 좋았다. 동네의 이웃들도 그들 부부를 늘 선망의 대상으로 바라보았다. 성실한 남편과 아름다운 아내, 중산층 정도의 경제력, 귀여운 아이들까지 그야말로 화목한 가정의 모습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었으니까. 겉보기에.


하지만 균열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둘 다 이 몹시 안정적이지만 어떻게 보면 쳇바퀴 굴러가듯 똑같이 반복되는 것만 같은 하루하루들 속에서 조금씩 권태로움을 느끼기 시작한다. 영화는 이미 권태에 잠식되어버린 상태의 부부를 조명한다.

그리고 그것은 아내인 에이프릴이 더욱 심하게 느끼는 것 같다. 에이프릴이라는 여자는 애초에 가정 주부로서, 한 남자의 와이프로서, 아이들의 엄마로서만 만족할 수 있는 여자가 아니었다. 결혼 전에 그랬듯 계속해서 개인적 성취로서의 꿈을 꾸고, 실패할지라도 도전하고 또 도전하고, 그럼으로써 온전한 나로도 살아있는 기분을 계속해서 느끼고 싶어하는, 그래야만 숨이 쉬어지는 여자였던 것이다. 어느 사람이 안 그렇겠냐마는 에이프릴은 유독 자신의 이름을 죽이고 살아가는 것이 힘겨운 유형의 사람이었던 것 같다. 하여 에이프릴은 남편에게 어느 날, 마치 모든 걸 해결해줄 수 있는 돌파구를 찾았다는 듯이 파리로 떠나자고 제안한다. 녹이 잔뜩 슨 것 같은 권태로운 일상을 다 내려놓고 그곳에 가서 다시 새롭게 시작하자고, 우리를 예전에 가슴 뛰게 했던 것들을 다시 상기하고 그것을 실현하러 가자고 말이다. 가면 뭐 먹고살 거냐는 남편에게 내가 뭐라도 해서 벌겠다고 말이다.


현실에서의 권태를 느끼는 것은 남편인 프랭크 역시 마찬가지이다. 뻔한 인생을 살았다고 여기는 자신의 아버지와 하나 다를 것 없이 아버지와 같은 회사에 다니며, 아버지와 똑같이 의미 없는 일을 하고 있는 자신을 보며 프랭크는 순간순간 회의를 느낀다. 결혼 전만 해도 프랭크에게도 에이프릴 못지 않게 자유분방하고 의미로 충만한 삶을 꿈꾸던 낭만이 있었다. 다만 프랭크는 에이프릴과는 달리, 이제는 현실과의 타협을 마친 듯, 따분할 때면 신참 여직원과의 잠자리 정도로 적당히 그것을 해소하면서 살아간다. 그것이 가장의 숙명이라고 믿었을 테니까. 그런 면에서 프랭크는 믿음직한 가장이자 아버지인 것은 분명했다. 그래서인지 에이프릴이 뜬금없이 파리에 가자는 제안을 했을 때, 프랭크는 내키지 않아하는 모습을 보인다. 아내의 제안이 현실성 없이 뜬구름 잡는 것만 같다고 느끼기도 했겠지만, 또 다른 이유로 프랭크에게는 적어도 에이프릴보다는 자신의 이름으로서, 개인으로서 설 수 있는 공간이, 돌파구가 있었던 셈이다. 프랭크에게는 어쨌든 다닐 회사가 있었고, 맺고 있는 사회적 관계들 또한 있었으니까. 물론 둘의 성격 차이가 크게 있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2. 시대적 배경

여기서 잠깐 영화의 시대적 배경을 언급 안 할 수가 없는데, 이 영화는 1950년대의 미국을 배경으로 그 시대 속 부부를 다루고 있다.


당시는 산업화와 도시화를 거친 후였으므로 임금 노동에 의존하는 가구들이 많아졌고, 덕분에 당시의 사람들은 이전의 실용적 결혼에서 벗어나 비로소 낭만적 사랑이 있는 결혼의 자유를 누렸다고 한다. 이 같은 사랑 기반의 결혼은 이전 모델이었던 실용적 결혼 모델의 가장 파괴적인 요소들, 엄격한 가부장제와 개인의 자율성 무시와 같은 것들을 무너뜨리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하지만 동시에 결혼 추구에 방해가 되는 몇 가지 문제들이 내재되어 있었다고 하는데, 그것은 아래와 같다.


(1) 여성의 경제적 의존

(2) 핵가족과 사회적 고립

산업화 이전에는 확대 가족의 구성원이나 소규모 지역 사회의 일원들과 이웃으로 지냈으나, 산업화, 교외화가 되며 현대판 유목 생활을 하게 되자 사회적 교류가 약해졌다. 특히나 여성은 동료들과 매일 사회적으로 교류할 수 있는 직장 생활이 없었기에 더욱 취약했다. 지금과 비교하자면 1950년대의 육아는 여성의 몫으로 고립과 소외의 측면이 강했다. 사랑에 기반한 결혼 생활의 이상, 그리고 그 이상에 부합한 가정생활의 이미지는 여성의 사회적 네트워크를 희생시키는 대가로 부부간의 유대를 강화시켰다.

(3) 배우자의 진실한 이해 결핍

남편과 아내가 서로의 삶과 경험을 깊이 이해하기가 더욱 힘들어지고, 진정한 친밀감을 공유하기가 힘들었다. 이 결혼 모델을 전형적으로 규정하는 영역 분리와 단란함이라는 두 가지 특징은 사실상 양립하기가 힘들다. 다시 생각해보면, 서로의 친밀감과 정서적 지원을 기대하면서 한편으로는 그 어느 때보다 남편과 아내를 갈라놓는 제도를 만들고자 했다는 게 기이하게 보인다.

(4) 심리적 발달의 정지

오늘날 자신감과 배려심은 성별에 관계없이 기본적으로 나타나는 욕구이다. 그러나 이 시기 남자 아이들은 엄격한 사회화를 통해 자신감은 강하지만 배려심과는 멀게 키워졌고, 여자 아이들은 자애롭지만 자신감과는 거리가 멀도록 키워졌다. 만약 남성과 여성이 본질적으로 화성과 금성처럼 아주 많이 다르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영역 분리의 원칙을 엄격하게 고수하더라도 심리적으로 피해를 입을 이유가 없다. 하지만 남성과 여성 모두, 심리학적으로 말하자면 지구에서 태어난 게 사실이다. (괜찮은 결혼, 엘리 J. 핀켈. 발췌)


책에서 소개한 다음 장의 제목은 다름 아닌 ’사랑의 결혼, 균열의 서막‘이었다. 부부를 점점 더 분리된 존재로 몰아가면서 동시에 단란함을 추구했던 이 모델은 위의 이유들로 균열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성취감이 떨어지는 결혼 생활을 견딜 마음이 없었다. 이렇게 말하고 있다. 책의 문장을 그대로 가져왔다.


나는 에이프릴과 프랭크 부부의 사례가 이 모델의 균열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로 봐도 무방할 것 같다고 여긴다.


에이프릴이 결혼을 하고도, 성실하게 직장을 다니며 가장의 역할을 잘 해내는 남편을 두고도 현실에의 안주와 권태를 견디지 못하고 계속해서 이상에 대한 갈증을 놓지 못하는 이유를 단지 에이프릴 개인이 가진 예민함, 지나친 감수성의 문제로만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사회를 벗어난 개인은 있을 수 없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에이프릴 역시 그냥 이 시대에 흔히들 있을 법한 안 좋은 사례 1인 것이다.


돈 걱정 없이 집에서 꽃 같은 아내로, 자애로운 어머니로서 존재하는 것이 누군가는 꿈꾸는 삶일 수도 있겠으나,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숨 막히는 폭력일 수도 있다. 그 누구도 가해하지 않았지만 한 사람으로서의 주체성을 꺾고 그저 꽃처럼 존재하라고 강요당하는 환경은 충분히 폭력적일 수 있는 환경이라고 생각한다. 매슬로의 욕구 이론에서도 인간이 갖는 가장 상위의 욕구는 결국 자아실현의 욕구이지 않은가. 에이프릴은 에이프릴대로 그 시대 속 프레임 안에 갇힌 모습이 너무나 안타까웠지만, 정작 눈물이 나온 것은 프랭크 때문이었다.


프랭크는 아내를 깊이 사랑한다. 권태가 왔을지라도 여전히 많이 사랑하고 있다. 신참 여직원과의 원나잇을 즐긴 것도 일상의 권태를 이겨보기 위함이었을 뿐이고 자신도 남자임을 확인하고 싶은 이유였다고 말한다. 물론 그게 정당화가 될 수는 없지만, 영화 내내 아내를 향한 프랭크의 사랑이 진심이라는 것은 충분히 느낄 수 있다. 프랭크는 자신의 원나잇 고백에도 “그래서 뭐? 나는 아무렇지도 않아.”라는 반응을 보이는 에이프릴에게 울면서 절규한다. 나를 왜 예전처럼 사랑하지 않냐고 울부짖는 모습이 너무 짠하다. 만약 프랭크가 에이프릴보다 조금만 더 순응적인 여자를 만났더라면 느끼지 못했을 절망이었을 텐데 싶다. 물론 에이프릴만큼 자신을 한 명의 온전한 사람으로서 존중해주고, 가장의 역할에 매몰되지 말고 계속해서 자신의 꿈을 찾으라고 응원해주는 여자는 아니었을 수도 있지만…


3. 파리행에 대한 이웃들의 반응

이 둘의 파리행은 잠시 진행되는 듯했다. 내키지 않아하던 프랭크도 에이프릴의 제안에 동조해주는 듯했다. 잠시나마 희망을 꿈꾸던 그때, 파리행에 대한 계획을 이웃들에게 전하던 순간의 그 둘은 정말로 반짝반짝 빛나고 생기 있었다. 이때 보이는 이웃들의 반응이 인상적이다.


이들 부부와 친하게 지내던 부부가 이 얘기를 들은 날 밤, 그 와이프가 갑자기 눈물을 터뜨린다. 내가 왜 우는지 모르겠어 라고 말하는 와이프를 남편은 가만히 안아준다. 아마도, 나는 직면하지 못했던 그 갈증을 용기 있게 직면하여 수면 위로 끌어올린 뒤 삶으로 현실로 돌파하려고 하는 그들 부부를 보니 말로 다 못할 부러움, 무력감 그런 것들이 한데 섞여있었지 않을까.


오직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이가 한 명 있었는데, 이는 다름 아닌 이웃 중 한 명이었던 미치광이였다. 여기서 나는 미치광이인 그만이, 시대에 가스라이팅 당하지 않고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그렇기에 미치광이 취급을 받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모를 일이다. 누군가는 이미 파리에 가자는 에이프릴을 두고도 미치광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을 수도.


4. 결말

파리행은 프랭크의 승진으로, 사실은 떠나고 싶지 않았던 프랭크의 본심으로, 에이프릴의 예상치 못한 임신으로, 이때다 하고 다시 녹이 슬대로 슨 일상으로 주저앉히려는 프랭크의 설득으로 인해 어그러지고 만다. 그리고 서로의 밑바닥을 박박 긁어 확인하며 크게 싸운 다음 날, 에이프릴은 프랭크에게 정갈한 아침 식사를 차려주고 오랜만에 환하게 웃으며 출근하는 프랭크를 배웅한다. 파리행의 불발로 이미 영화는 새드 엔딩에 가까워져가고 있었지만, 그때는 불길한 예감이 엄습하기까지 한다. 마치 태풍이 오기 전처럼 이상할 정도로 고요하던 그날의 집, 그날의 에이프릴의 분위기가 앞으로 에이프릴이 할 선택을 예고하는 듯하다. 예상은 그대로 적중하고, 영화는 그렇게 막을 내린다.


서로 사랑했지만 부서진 부부의 이야기이다.

이름도 원대한 레볼루셔너리 로드라는 곳에 정착했지만, 정작 일상의 혁명조차 시작도 못한 채 홀연히 사라져버린 부부의 이야기이다.

겉보기에 훌륭한 가정이었고 사랑스러운 부부였지만, 속은 천천히 곪아가고 있었던 부부의 이야기.

한 시대에 유독 안 맞는 개인과 시대에 그럭저럭 순응하고 살아가는 개인이 부부가 되어 갈등하는 이야기.

이상주의자와 현실주의자의 다름을 담은 이야기.


개인적으로 둘이 출연하는 영화 중에서도 그 둘의 연기력이 가장 돋보였던 영화로 꼽는다.


keyword
화, 목, 토 연재
이전 03화가장 따뜻한 색, 블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