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펙트 데이즈

추천할 수 없는 영화지만 좋았던

by rainy



화장실 청소부의 하루가 반복적으로 제시된다.

그는 매일 똑같은 하루를 사는 것 같다.

어스름한 새벽이면 동네의 한 할머니가 비질을 하는 소리에 눈을 뜨고

양치를 하고

집을 나서기 전에는 꼭 화분에 물도 주고

선반에 주루룩 늘어놓은 시계나 열쇠 같은 것들을 챙기고

집 바로 앞에 있는 자판기에서 늘 같은 캔커피를 마신다.

차에 타면 오늘 하루 운전하며 들을 올드팝을 고른 뒤,

노래를 들으며 출근길 운전을 한다.

이때 그의 표정은 밝다.

마치 하루가 덤으로 생기기라도 한 것처럼 꽤 행복해보인다. 웃음이 맑다.

그는 도쿄 시내를 돌아다니며

그의 담당 구역인 공립 화장실들을 정말 프로페셔널하게, 반짝반짝 빛이 날 정도로 완벽하게 청소한다.

그러다 점심시간이 되면 늘 먹는 샌드위치를 사들고

근처 공원에 가서는

나무들과 빛과 그림자들 같은 것들을 보며 먹는데,

이때 햇빛에 빛나는 나무의 잎들과 그림자를

필름 카메라로 찍는 게 그의 소소한 행복 중 또 하나이다.

업무가 끝나면

늘 가는 목욕탕에 가서 깨끗하게 목욕을 하고

늘 들르는 술집에 들러 하이볼 한 잔에 간단한 식사를 한다.

이따금씩 중고책방에 들러 책을 고르고

자기 전에 이것들을 조금씩 읽다가 잔다.

이게 그의 루틴이다.

이것을 영화는 꽤 긴 시간을 들여

천천히 - 보여준다.

똑같은 하루들이 반복된다는 것은

그가 루틴을 조용하지만 강력하게 열렬히 지키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의 나이는 우리 아빠 나이 정도로 보이기도 하고

그보다는 조금 더 젊어보이기도 하다.

완전히 늙어버린 노인까지는 아니고

그래도 아직 남자의 느낌이 나는 젊은 노인 정도랄까.

일본은 아무래도 고령화 사회로 오래되다 보니까 그런지

보통 잘 다루지 않는

노인의 마음, 고민, 시선 같은 것들에 대해 잘 다루곤 하더라.

처음에는

젊음보다는 늙음 쪽에 훨씬 가까워져버린 저 나이에

가족도 없이 혼자 살면서

매일 화장실 청소 일을 하는 그의 삶이

과연 무슨 재미일까 싶은 마음도 들었는데,

그것은 내가 아직 그 나이를 살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갖는 오만이었음을

그의 강박적일 정도로 반복되는 루틴을 보며 깨닫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는 루틴을 지키는 것 자체에서

행복감과 안도를 느끼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 저런 삶도 나쁘지 않지

아니 오히려 저런 태도로 사는 게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들어갈 즈음,

그의 반복적이었던 일상에 조금씩의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별 거는 아니고

그냥 갑자기 누가 찾아와서 일상에서 작은 변화가 생긴다든지

자주 가는 술집에서 예상에 없던 타인의 어떤 장면을 보게 된다든지 하는 정도.

영화에서 끝내

그의 과거나 그가 이렇게 살기를 선택한 사연이

명확하게 제시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가 사실은 슬픔에 가득 차있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가 가끔 짓는 표정이 말해준다.

그래서 과거에도 미래에도 잠식 당하기가 싫어

현재, 지금 이 순간, 오늘에만

그렇게까지 최선을 다해 집중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겠다 하는.

영화의 엔딩은 다행히

다시 찾은 일상이다.

어스름한 새벽 또 할머니의 비질 소리에 잠에서 깨고

캔커피를 마신 뒤

올드팝을 들으며 출근길 운전을 한다.

그런데 이번에 그의 표정에는

온갖 희노애락의 감정들이 한데 서려있다.

환희와 슬픔과 회한 그런 게 다 느껴진다.

그렇게 영화는 끝이 난다.

마치, 영화 속 죽음을 앞둔 또 다른 한 노인의 대사였던

“무언가 알아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한 채 인생이 끝나네요.”처럼

뭔가 명확한 메시지를 손에 쥐지 못했는데

영화가 종료된 기분이 든다.

그냥 느끼다가 끝난 영화였다.

중간중간 공감하고, 중간중간 생각하다 끝나버렸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

늙음이란 얼마나 외로운 걸까.

어떻게 늙어야 하는 걸까.

노인이 되면 어떤 마음가짐으로 사는 게 좋으려나.

그런 고민을 하게 한다.

어떻게 늙어야 하나?

누가 뭐라 해도

나만의 루틴을 정성을 다해 만들고 지키고

온전히 내 하루를 살아가는 것

그냥 그거면 완벽한 하루하루들이 아닐까? 라고

좀더 생각해보니 영화가 질문과 답을 넌지시 해준 것도 같다.

중요한 건

그 안에 빛과 기쁨과 환희만이 아니라

인생의 어두움, 마치 그림자 같은 슬픔과 회한과 후회와 모든 게 다 있다해도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를 잘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이다.

볼 때는 밍밍하다 하면서 봤는데

여운이 남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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