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이라 그랬어’의 첫 번째 단편
오 대표가 주관한 홈파티에 이연은 우연한 기회로 초대받는다. 이 모임은 모 대학의 최고경영자 과정을 밟은 수강생들의 소규모 모임인데, 그 구성을 보면 가히 가진 자들의 모임이라고 할 만하다. 명상센터 소장 서, 성형외과 의사 박, 법률회사 변호사 김, 그리고 ‘원래 부자’로 짐작되는 오 대표까지. 그나마 이 모임의 가장 젊은 구성원인 성민만이 평범한 축에 속한다. 오늘의 게스트인 이연은 가난한 연극배우이다. 이연은 자리에 함께 가줬으면 하는 성민의 부탁이 있었지만, 마침 50대 임원 역할의 중요한 오디션을 앞두고 있었기에 오늘 이 자리에서 무언가 인사이트를 얻을 것으로 기대하고 나가게 된 것이다.
이연은 거의 파티 내내 사람들을 섣불리 판단하는 대신, ‘가능하면 저 사람들처럼 생각하자’는 태도를 취한다. 파티의 초반에는 이들에게 호감을 느끼기도 하는 것 같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일정 수준의 부를 이룬, 자신의 ‘판단’과 ‘선택’이 몸에 밴(p.23) 이들을 보며 이연은 사회의 리더 격이라고 할 수 있는 자들 특유의 아비투스를 목격하며 아마도 처음에 목적했던 바를 일부는 달성했을 것으로도 짐작된다.
하지만 서로를 적당히 존중하고 환대하며 순조롭게 흘러가는 것만 같았던 파티는 점차 자연스레 ‘돈’에 대한 이야기로 흐르게 되면서 각자가 가진 진짜 속내가 무심결에 툭툭 드러나게 되는데. 여기에서 이연과 이들 사이에는 분명한 생각 차이가 존재하고. 그로 인해 소설의 후반부에는 묘하게 균열과 긴장이 흐른다. 그 균열을 본격 드러낸 기폭제 역할을 한 대화가 있다. 고아원 아이들이 만 18세에 시설을 나가며 받는 자립정착금의 사용에 대한 대화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이 돈으로 명품백을 산다더라 하는 이야기에 비난의 말을 쏟는 박의 발언이 이연의 심기를 거스른 것이다. 그냥 짝퉁을 사도 아무도 모를 텐데, 어차피 그 주위가 뻔하지 않겠어? 라는 말까지 사용한 박이었다. 어느 정도 모두가 그 의견에 동의한 분위기처럼 흘러간 대화였는데, 이연은 시간이 얼마간 지나고 맥락의 부자연스러움을 무릅쓰고서도 이를 바로잡는다. 그나마 그게 가장 가리기 쉬운 가난이어서가 아니었을까요 하면서. 그 아이들이 철없고 허영심이 세고 금융 문맹이어서 그렇다는 폭력적이고 단정적이었던 앞선 대화의 내용을 부정한 것이다. 이제까지는 그들의 티 안 나는 무례에도 적당히 분위기를 맞춰준 이연이었음에도.
이연은 다른 건 몰라도 지금 자신의 행동이 주정이 되면 절대 안 된다고 생각했다. 만약 뭔가 얘기할 거라면 아주 말짱해야 한다고. 그래서 아까부터 술을 더 입에 대고 싶은 욕구를 거의 초인적인 힘으로 꾹 참고 있었다. 살면서 어떤 긴장은 이겨내야만 하고, 어떤 연기는 꼭 끝까지 무사히 마친 뒤 무대에서 내려와야만 한다는 걸. 그건 세상의 인정이나 사랑과 상관없는, 가식이나 예의와도 무관한, 말 그대로 실존의 영역임을 알았다. 처음 여기 왔을 때만 해도 임원 연기를 위해 ‘최대한 저 사람들처럼 생각하자, 저 사람들 입장에서 느끼고 즐기자’ 다짐했는데, 그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안 되는 게 있어서였다. (p.40)
이연은 이렇게 실존의 영역으로,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한다고 생각이 들어서 내놓은 이 말을 끝으로 이만 모임에서 일어나야겠다고 정중하게 이야기한다. 마치 최선을 다해 연극을 잘 끝마치고 이제는 연극이 종료됐음을 알리는 것처럼. 그런데 하필 자리에서 일어나며 오 대표의 빈티지 잔을 깨게 되고, 넋 나간 얼굴로 어쩔 줄 몰라하는 장면이 이어진다. 그런데 이때 인상적인 건 오 대표의 표정에 어떤 원망이나 서운함 대신 묘한 만족감이라 할까 승리감이 얼핏 스쳤다는(p.41) 것이었다.
- 이 부분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잘 섞이는 듯 연기하다가 기어코 자신이 이들보다 더 낮은 사회 계급으로서의 인정을 드러내는 발언을 하고 만 이연이 또 기어코 실수를 했고 그에 딱 어울리는 넋 나간 표정을 짓고 있는데, 오 대표 자신은 오히려 그럼에도 불구한 여유를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오는 우월감일지, 아니면 애초에 나는 너를 충분히 존중했지만 우리는 결국 이러나저러나 섞일 수 없는 계급임을 공고히 한 상황에서 오는 자기만족일지. 내가 그 계급이 되어본 적이 없어서인지 정확한 심리는 잘 모르겠다.
그저 이 단편을 읽고 느낀 점은.
누가 맞고 누가 틀리다거나
누구 입장에 더 공감이 간다거나 그런 것보다는
책에 쓰인 아래의 문장으로 감상이 결국에는 귀결되는 것 같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자리에 서보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p.24)
나는 오 대표도, 서도, 박도, 김도 이연을 오늘의 손님으로서 충분히 환대했고 매우 호의적이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거기에 이연에 대한 존중이 충분했는가는 잘 모르겠다. 제일 말수가 적었던 서가 오늘 파티에서 이연에 대해 한 말은 걱정과 근황이 거의 전부였다는 사실이나, 수지 안 맞는 일에 골몰한다는 점에서 연극배우를 존경한다고 말하는 박이나, 자신의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빈티지 잔을 이연이 깨뜨리고 허둥지둥할 때 잔을 잃은 서운함보다는 승리감이 얼핏 스쳐간 오 대표나. 이연을 한 명의 ‘사람’, 존재로서가 아니라 고작 오늘의 장난감 정도로, 우리와는 완전히 다른 ‘신기한’ 사람 정도로 치부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찝찝하게 남기 때문이다. 더불어 자신과 다른 입장에 서있는 사람을 충분하게 온전하게 존중하기란 참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무튼 나는 이연의 입장은 입장대로, 성공했다고 말할 만한 저 자리에 있는 나머지 사람들의 입장은 또 입장대로 공감이 갔다. 내가 저들의 위치에 갔을 때, 남들의 인생에 대해 그저 내 상식선에서 단편적으로 판단하는 우를 단 한 번도 범하지 않을 수 있을까? 생각했을 때 완벽하게는 자신이 없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래서 결국에 남는 감상을 단 하나의 문장으로 정리한다면 위의 저 문장이라고 할 수 있겠다는 것이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자리에 서보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사람은 다 다르고.
사람이 자기와 다른 자리에 서있는 사람을 충분하게 이해하는 건 너무도 어려운 일이기에
함부로 재단하고 함부로 그것을 입으로 뱉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소설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도 저들처럼 때때로 실수하고 살아갈지도 모른다는 사실 또한 씁쓸하게 짐작했고
또 반대로 내가 이연과 같은 상황에 놓이게 된다면 나 역시 저렇게 할 말은 실존의 영역으로 여기며 기어코 똑바로 할 수 있기를. 바라게 됐던 소설이었다.
짧은 단편이었는데도
내용의 농도가 너무 짙어
단숨에 나머지 모든 단편들도 읽을 수는 없었던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