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이라 그랬어‘의 다섯 번째 단편
좋았던 문장들
- 전부터 경수의 현재에서 늘 자신의 미래를 봤으니까. 그리고 그 미래에 자기 곁에는 아마 아무도 없으리라 여겼으니까. 선주는 ‘아직까지는 괜찮아’ ‘더 버틸 수 있어’라는 암시로 일상을 꾸려나갔다. 하지만 선주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어떤 중요한 문제를 계속 모른 체하고 있다는 걸. 너무 무겁고 괴로운 문제라 최대한 그 답을 미루고 있음을. 그리고 그건 기진도 마찬가지였다.
- 서울에서 부모님을 만날 때마다 자꾸 할 말이 떠오르는, 그러나 종일 그 말을 참는 얼굴을 하고.
- ‘요즘에도, 아니 우리 세대 부모 중에도 그런 분들이 계시느냐’면서. 그때마다 기진은 자신에게 무척 가깝고 생생한 현재가 누군가에게는 빛바랜 과거처럼 아득하고 낯선 일임을 실감했다. ‘같은 또래라지만 저 친구와 나는 정말 다른 세계에서 살아왔구나. 아마 앞으로도 쭉 다른 고민과 다른 돌봄, 다른 고독 속에서 살아가겠구나‘ 하고.
- 고통이 나를 압도할 때 나는 일부러 집밖으로 나가 수백 년 된 나무들 사이를 걷는다. (…) 그런 뒤 집으로 돌아와 세상에 고통을 해결해주는 자연 따위는 없음을 깨닫는다. 그러곤 이미 아는 걸 한번 더 깨달으려 다음날 다시 같은 장소로 나간다. 내 고통에 무심한 자연 앞에서 이상하게 안도한다.
- 선주가 한번 더 ‘이럴 때 딸이 있어 참 좋다’고 했다. 선주는 자신이 딸에게 짐이 되지 않을까 늘 걱정하면서도 가끔은 딸에게 의존하고 싶어했다. 왜냐하면 ‘방법’이 없으니까.
- 엄마와 헤어지고 나니 별로 한 일도 없는데 비로소 큰 숙제를 마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안타까움과 미안함, 짜증과 홀가분함, 연민과 죄책감이 동시에 찾아왔다.
- ’나는 매일 술을 마시며 하루하루를 간신히 버티는데 부모님은 어떻게 맨정신으로 삶을 견디는지, 어떻게 그렇게 조금도 취하지 않고 하루를 견디는지‘ 궁금했다. 그러자 기진의 머릿속에 ’어쩌면 엄마는 엄마대로 오늘 서울로 여행을 온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하나도 즐겁지 않지만, 공포감을 안도감으로 바꿔줄 어떤 여행을. 그리고 그 여행을 위해 집에서 가장 깨끗하고 좋은 옷을 골라 입고 새벽부터 올라왔을 거‘라고.
- 지금 이 순간 홀로 집에 가고 있을 엄마를 떠올렸다. 나의 오늘과 당신의 오늘이 다르다는 자명함이, 엄마의 하루와 자신의 하루의 속도와 우선순위, 색감과 기대가 늘 달랐다는 게, 앞으로도 그럴 거라는 게 문득 뼈아프게 다가왔다. 아무리 최선을 다한들 자신은 이 감정을 평생 느낄 거라는 점도. ‘나만 겪는 일은 아닐 텐데. 누군가는 진작 감내해온 일일 텐데.’ 다들 대체 이 숙제를 어떻게 풀어나가는지 감도 오지 않았다. ‘어쩌면 다들 날마다 아무 내색 않고 일터에 나와있는 걸까?’
딸이 엄마에게 갖는 필요 이상의 유대와 죄책감, 또 그래서 생기는 부담감과 짜증이 잘 표현되어 있었다. 이런 글에 공감하기 싫다 하면서도 공감하며 봤다.
지난주에도 연속 이틀을 나와 내 아이를 보러 다녀간 엄마가, 고작 일주일의 텀밖에 안 되었는데 또 가도 되냐고 묻기에 거절을 했다. 엄마가 오시면 엄마는 거의 황홀해보일 정도로 행복해하는 것을 잘 알지만, 엄마가 다녀가면 내 머리가 너무 소란스러워지기 때문이다. 어릴 적부터 언제나 벅차고 야속할 정도로 그토록 독립적으로 자라게 해놓고는 이제 와서는 나에게 싫은 소리 한 번을 못하고 그저 내 옆에 있고 싶어하는 엄마가 부담스럽다. 쌓이지 않은 유대를 이제 와 기대하는 엄마가 당황스럽다. 이렇게 약해지고 말걸, 그렇게 강하게만 몰아붙인 엄마가 밉기도 하다.
하지만 요새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가 이해가 되는 이유가 있다면.
이해가 좀처럼 가지 않던 엄마의 태도가 나를 향한 어떤 이유 때문이 아니라 그저 그게 엄마의 상식 수준이자 교육 수준이었고 엄마가 살아온 세상이었을 거라는 사실 때문이다. 그렇게 짐작을 하면서는 엄마가 그냥 한 인간으로서 보이며 안타깝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엄마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나도 나대로 내 상식 수준, 교육 수준, 내가 보는 세상이 있을 테고, 누군가에게는 그게 이해할 수 없는, 몹시 다른 층위로 보일 수 있을 테니까. 그래서 이해의 영역과는 별개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좁힐 수 없는 거리와 각자가 짊어진 고독이 있는 거겠지 싶다.
아무튼 이번에도 엄마에게 거절의 말을 하고, 조금 미안해져서 친구가 놀러 오기로 했다는 거짓말을 덧붙였는데. 엄마는 분명히 내가 또 밀어내는 걸 느꼈을 텐데도 그 거짓말에 적당히 믿어주는 척 답해준다. 엄마가 적당히 속아주는 편이 내 마음도 홀가분하게 해주는 것은 물론이지만, 아마 엄마의 마음도 조금은 덜 아프게 할 것이다. 그 정도의 타협을 하며 살고 있는 요즘이다. 엄마가 소풍 오는 기분으로, 여행 오는 기분으로 나에게 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지만, 하필 엄마의 감정을 고스란히 다 느끼는 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거리만을 유지하며 살려고 한다. 그냥 가끔 이런 글 읽을 때나 엄마의 고독에 마음 아파하면서, 엄마가 돌아가시면 미안함을 한쪽에 묻고 살아야 할 것을 짐작하면서도 말이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