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은 여름’의 세 번째 단편
좋았던 문장들
- 도화 식대로 가로로 세 번, 세로로 한 번. 각 잡은 수건을 층층 쌓을 때마다 ‘우리집에선 늘 둥글게 말았는데......‘란 생각이 절로 났지만 아무래도 여긴 도화 집이었다. 이수 돈이 조금 들었다 해도 그건 사실이었다.
- 잠결에 자세를 바꾸다 도화는 속이 편하다는 느낌을 몇 번 받았다.
- 제철 음식이라 그런가.
도화가 간밤 편안함을 설명하자 이수가 도화 쪽으로 몸을 틀며 호응했다. 도화는 새삼 그 말이 이상하게 들렸는데, 직업상 비 올 확률이라든가 바람의 세기, 적설량에 민감한 도화에겐 요즘 들어 ‘제철‘이 다 사라진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 인생의 작은 우연과 돌이킬 수 없는 결과, 교훈 따위 없는 실패를 떠올렸다. 지난 십 년간 자기 삶에 남은 것 중 가장 귀한 것이 뭘까 생각했다.
- 도화가 경찰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뒤에도 이수는 혼자 노량진에 남아 공부했다. (중략)
이수가 공부를 그만둔 계기는 ‘도화’였다. 이수는 도화가 ‘어디 가자’ 할 때 죄책감 없이 나서고, 친구들이 ‘놀자’ 할 때 돈 걱정 없이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건 사소한 갈등에 속했다. 당시 이수를 가장 힘들게 한 건 도화 혼자 어른이 돼가는 과정을 멀찍이서 지켜보는 일이었다. 도화의 말투와 표정, 화제가 변하는 걸, 도화의 세계가 점점 커져가는 걸, 그 확장의 힘이 자신을 밀어내는 걸 감내하는 거였다. 게다가 도화는 국가가 인증하고 보증하는 시민이었다. 반면 자기는 뭐랄까, 학생도 직장인도 아닌 애매한 성인이었다. 이 사회의 구성원이되 아직 시민은 아닌 것 같은 사람이었다. 입사 초 수다스러울 정도로 조직생활의 어려움을 토로하던 도화가 어느 순간 자기 앞에서 더이상 직장 얘길 꺼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 이수는 모든 걸 정리하고 노량진을 떠났다. 한 시절과 작별하는 기분으로 뒤도 안 돌아보고. ‘뒤도 안 돌아보기’ 위해 이를 악물며 1호선 상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 진입 장벽이 낮은 대신 실적 압박이 커 스트레스가 심한 곳이었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거절과 모욕, 하대를 당할 때마다 이수는 자신이 ‘있을 뻔한 곳’ ‘있어야 했던 곳’을 쳐다봤다.
- 도화가 침착한 얼굴로 이수를 바라봤다. 오래전, 이수가 현관을 나설 때면 ‘저 사람 저대로 사라져버리면 어쩌지, 길 가다 교통사고라도 당하면 어떡하지’ 가슴이 저렸던 기억이 난다.
- 이수야.
- 응.
- 나는 네가 돈이 없어서, 공무원이 못 돼서, 전세금을 빼가서 너랑 헤어지려는 게 아니야.
- ......
- 그냥 내 안에 있던 어떤 게 사라졌어. 그리고 그걸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거 같아.
- 도화는 노량진이라는 낱말을 발음한 순간 목울대에 묵직한 게 올라오는 걸 느꼈다. 단어 하나에 여러 기억이 섞여 뒤엉키는 걸 알았다. 서울시 동작구 노량진동 안에서 여러 번의 봄과 겨울을 난, 한 번도 제철을 만끽하지 못하고 시들어간 연인의 젊은 얼굴이 떠올랐다. 교회 식당에서 “도화씨가 좋아하는 거 같아 잔뜩 집어왔어요“라고 말하며 흰색 플라스틱 그릇 위에 가득 쌓인 동그랑땡을 자랑하던 모습과 옆면이 새카매진 한국사 교재, 베갯잇에 묻은 흰 머리카락, 눈가 주름, 살냄새 그런 것이 밀려왔다. 한겨울, 도화가 오들오들 떨며 현관문을 열면 따뜻한 두 손으로 언 귀를 녹여주던 모습과 여름이면 도화 쪽으로 바람이 더 가도록 선풍기 각도를 조절해주던 이수의 옆얼굴도. 그때서야 도화는 어제 오후, 주인아주머니를 만난 뒤 자신이 느낀 게 배신감이 아니라 안도감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마치 오래전부터 이수 쪽에서 먼저 큰 잘못을 저질러주길 바라왔던 것마냥.
김애란 작가의 “바깥은 여름” 단편집이 이런 감정들을 담은 글인 줄 몰랐다. 이건 이 책의 세 번째 단편이었는데, 세 작품 모두 읽으며 눈물을 흘렸다. 첫 번째 작품도 두 번째 작품도 가까운 이의 이별과 죽음을 담고 있었는데, 이 작품도 그랬다. 작품 속 인물들의 내면이 하나같이 모두 겨울이어서 책의 제목이 ‘바깥은 여름‘이 된 건가 추측한다. ’은/는‘의 보조사는 대조의 의미를 취할 때가 있는데, 이 제목에서 쓰인 ’은‘이 대조의 의미를 담고 있는 보조사로 사용된 거구나.
시험 준비를 하다 한 명은 합격하고 한 명은 불합격한, 오래된 연인의 이별을 담고 있는 이번 이야기는 내가 시험 준비를 길게 해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더욱 공감이 갔다. 시험 준비를 하다 보면 이미 그 문턱을 넘어가 합격한 사람들, 혹은 애초에 시험과는 무관했고 지금도 무관한 사람들이 마치 건너편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럼, 관두면 되지 않겠나 싶겠지만 이미 어느 정도 시험에 발을 담근 시간이 길다보면 그것도 결코 쉬운 일이 되지 못한다. 다른 일을 하면서도 내가 ’있을 뻔한 곳‘ ’있어야 했던 곳‘이 마치 입에서 끝내 삼키지 못한 무언가처럼 남아 나를 계속 괴롭히기 때문이다. 나 같은 경우는 시험 자체에 대한 매력과 동기가 부족해 열중하지 못하다가, 나중에는 이 굴레에서 빠져나오고 싶다는 강한 열망이 결국 여기를 벗어나게 만들었다. 내가 여기를 스스로 넘는 것, 그거 말고는 뾰족하고 시원한 답이 없는 답답하고 어두운 터널 같은 것이 시험이다. 만약 내가 시험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아주 집중하고 시간과 돈도 투자할 만큼은 과감히 투자해 최대한 빠르게 합격하고 치워버려야 하는 것, 그게 시험이다. 오래 매달리다보면 제철은 오지 않은 채 천천히 시들어만 갈 뿐 나에게 과연 무엇이 남았는지 모르겠는 기분이 들기 때문에. 물론 온전히 집중하는 것도 상황에 따라 허락되는 사람이 있고, 안 되는 사람도 있어서 어려운 게 또 시험이겠지만 말이다.
작품 속 먼저 시험에서 합격해 건너편으로 건너간 도화는 아직 건너오지 못한 이수에게 ‘네가 돈이 없어서, 공무원이 못 돼서, 전세금을 빼가서‘ 헤어지는 게 아니라고 하는데, 다시 말하면 사랑이 식어서 헤어지는 게 아니라는 말 같은 걸 하는데... 과연 그럴까? 싶기도 했다. 이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도화 입장에서는 맞는 말일 수도 있겠으나 이수 입장에서는 부정될 말이니까. 만약 이수도 도화처럼 합격해 이수가 건너간 같은 그 쪽으로 건너갔다면, 그래도 둘의 사랑이 식었을까? 그래도 이수가 지금의 이수 같았을까?
그래서 둘 다가 안타깝다.
현실에 진 사랑 이야기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