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왔던 고향으로 잠시 돌아가는 기분이라서 일까. 나는 수영이 좋다
모든 생명은 물에서 기원한다. 지금 땅에서 기어다니고 뛰어다니고 걸어다니는 모든 생물이 물에서 태어났다. 물에서 숨을 쉬는 어류에서 부터, 공기로 숨쉬는 돌고래, 그리고 땅위에서 자는 물개 그리고 걷는 개 그리고 원숭이, 사람으로 변하기 까지. 땅에서 사는 포유류들은 물 속에서의 생활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 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모든 포유류는 어미의 물속에서 탄생하고 자란다. 인간이 지상으로 나오기 전에 어미의 뱃속에서 하는 일이라고는 탯줄로 들어오는 영양분을 먹고 수영하는 것 밖에 없다. 지상에 나오면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우리는 어두운 물속에서 평화롭게 헤엄치고 태어났다.
원래 왔던 고향으로 잠시 돌아가는 기분이라서 일까. 나는 수영이 좋다.
사실 수영을 시작한지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3년전 부상을 당하고 재활의 목적으로 수영을 시작했다. 의사 선생님이 허리재활에 수영이 좋다는 소리를 그리 강하게 말하지 않고도 흘렸는데도 나는 수영을 시작했다. 당시에는 움직일 수 있는 행동 하나하나가 간절했다. 다친 이후에는 매일 침대에 누워 드라마, 영화, 책을 보는 것 뿐이었다. 하루에 책 2권 드라마 10편을 보고나면 이 짓도 슬슬 지겨워진다. 그래서 수영을 시작했다.
처음 수영장에 갔을 때의 어색함. 키를 받고. 앙상한 내 몸 위의 옷을 벗고, 축처진 뱃살, 축처진 고추들이 늘어선 탈의실 안의 풍경. 그러고 보면 수영장 탈의실 안에서는 젊은 남자를 거의 보기 힘들다. 강사선생님들을 빼고는 다들 처지고 늘어진 아저씨와 할배들 뿐이다.
젊은 사람은 수영장에 없는 까닭은 수영을 하면서 자연스레 알게됐다. 처음 초급반에 들어가서 킥판을 잡고 발차기를 했다. 팡.팡.팡. 허벅지에 힘을주고 파닥파닥. 이때는 앞으로 잘 가지도 않았다. 근데 신기하게 아프지가 않았다. 분명 땅위서 그렇게 움직였다면 분명히 다리가 저리고 마비가 왔을 움직임이었다. 아, 물에서는 아프지 않구나. 물 속에서 움직임은 쑤시지 않는구나.는 사실을 알게됐다.
초보자일때 옆레인을 보면 물개처럼 움직이는 사람들이 보였다. 물을 타고, 가르고, 물에서 뒤집고, 그런 사람들. 물 속에서 봤을 때는 몰랐지만 샤워실로 나와보면 이런 사람들 중에서 가슴가죽이 축 처진 할아버지들이 있었다. 샤워할때는 몸을 웅크린채 타월을 들고 자신의 몸을 쓰담쓰담 작게 닦아 내려가는. 영락없는 목욕탕의 할아버지들.
우연히 시간이 겹쳐 본 아쿠아로빅의 사람들도 그랬다. 클럽에서도 저렇게 춤추다가는 10분도 못추겠다 하는 춤을 1시간씩 춰대는 사람들. 그들 모두 할머니였다. 밖에서는 뼈가 시려서, 허리가 아파서 뛰지도 못하는 늙은 사람들이 수영장에서는 모두 아이처럼 뛸 수 있었다. 이 할머니들도 수영이 끝나면 서로 계란팩을 나누어 바르는 목욕탕 할머니들 이겠지. 내가 어릴적 여탕에서 봤던 그런 할머니들
몸을 씻고 시작하는 스포츠
몸을 씻고 시작하는 스포츠가 수영말고 또 있을까. 수영장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옷을 벗고 내 몸에서 불순물들을 닦아 내야 한다. 샤워기를 틀고 내 몸에서 땀을 닦아 내고 냄새를 없앤다. 입도 벌려 가글도 한번 해준다. 머리에 묻어있는 땀이나 왁스도 닦아준다. 서서 엉덩이를 든채 약간 이상한 자세로 항문도 닦아준다. (근데 이 과정이 위생상 졸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들 잘 닦고 들어갑시다) 이렇게 다 씻으면, 그제야 수영복을 입는다. 수영복은 몸에 착 붙어 저항을 줄여야하기 때문에 내가 입는 모든 옷들중 가장 빡빡하고 입기 힘들다. 양 발을 넣고 골반까지 애써 당겨 올린다. 동생이 스키니진을 입을 때처럼.
그리고 머리를 가지런히 뒤로 넘기고 뒷머리는 위로 올려 수영모에 넣는다. 수영모도 수영복처럼 꽉 껴서 눈매가 살짝 찟어지고 올라간다. 처음에는 머리를 꽉 싸매는 느낌이 답답해서 천 수영모를 썼지만, 머리가 꽉 잡혀있다는 느낌이 좋아 실리콘 수모를 쓴다. 그리고 수경을 들고 샤워실 밖으로 나간다.
이제는 근육을 풀어야할 차례. 작은 근육부터 차근차근 풀어주고 큰 근육으로 올라온다. 손목을 앞으로 뒤로 젓히고, 당기고. 팔을 꼬아 팔윗근육 그리고 어깨 근육을 풀어준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목을 풀어준다. 자유형을 하다보면 30분만 수영해도 몇백번 고개를 도리도리 해야한다. 좌우로 고생할 목의 긴장을 풀어준다. 그리고 허리를 좌우로 위로 당겨 늘려준다. 그리고 다리 근육까지 풀면 10분이 지난다.
어릴 적에는 분명 스트레칭이란 걸 해본적이 없다. 항상 뜨겁고 열이 많은 상태라 그런지 딱히 그럴 필요가 없었나보다 생각한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스트레칭은 필수다. "근육아 이제 움직일 꺼야. 조금 격렬하게 움직일수도 있어. 그러니까 놀라지 마렴. 지금 미리 풀어놓을께. 지금 뜨겁게 해두자.” 미리 알려줘야한다.
이제 수영할 준비가 끝났다.
수영을 잘하는 사람, 못하는 사람
수영을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의 가장 큰 차이는 물과 맺는 관계다. 수영을 잘하는 사람은 물을 타고, 물과 노는 반면, 수영을 못하는 사람은 물과 싸운다. 수영하는 생물을 보면 알 수 있다. 고래, 상어, 물개 이들 생물중 물과 싸운다고 보이는 동물은 하나도 없다.
물과 싸우지 않으려면 지상에서의 습관을 버려야한다. 땅위서는 힘있게 다리를 앞으로 내딛으면 빨리 뛰어진다. 힘을 주고 팔을 휘두르면 세진다. 하지만 물 속에서는 힘 만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아무 생각없이 세게 발을 차면 그 만큼 발이 가라앉을 뿐이다. 수영은 가라앉지도 완전히 떠있지도 않은 상태로 앞으로 나가야한다. 가라않으면 숨을 쉴수가 없고, 떠있으면 부력때문에 앞으로 가지 못한다.
속도와 숨도 잘 조절해야한다. 너무 느리면 앞으로 가지 못해 가라 앉는다. 너무 빠르면 숨이 따라가지 못해 멈추게 된다. 그러니까 수영을 할때는 너무 빠르지도 너무 느리지도 않게 헤엄쳐야한다. 그러면서 점점 내 속도와 숨을 늘려가야 한다. 내 한계를 알고 그 안에서 움직이는 것 그러면서도 조금씩 내 숨을 늘려보려고 하는 것. 뭐 정신수양 같지만 내가 수영을 사랑하는 이유 중 하나다.
물 한 모금, 하늘 한 모금
내가 수영을 사랑하는 이유는 또 있다. 수영을 하면 물 속 세상과 물 밖 세상을 계속 왕복하게 된다. 물안에서 호흡 한모금 내뱉고, 물 밖에서 호흡 한 모금을 마신다. 사실 실내수영장에서 하면 물밖 풍경이 딱히 멋지지는 않다. 숨을 들이쉬려고 고개를 내밀때마다 보이는 건 파란색 타일이나 레인 끝을 표시해주는 깃발들 뿐이다.
그러다 우연히 캘리포니아 여행에서 야외 수영장에서 전혀 다른 체험을 했다. 숨을 내뱉는 풀 안은 비슷했지만, 숨을 들이쉬기 위해 고개를 들어 본 풍경은 ‘하늘'이었다. 하늘 한모금, 한모금을 마시며 수영을 할때는 정말 하나도 힘든 기분이 느껴지지 않았다. 해가 지는 시간에 수영을 하면 하늘과 같이 해가 보였다. 그 때는 붉은 하늘을 들이마셨다. 이 기분에 중독되서 매일 매일 수영을 갔다. 사촌이 다니는 대학교 수영장이여서 그 친구 학생증을 빌리면 돈도 따로 들지 않았다. 수영장 한켠에 붙어있는. “Life is simple. Eat, Sleep, Swim”문구도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정말 1주일은 먹고, 자고, 수영만 하며 살았다. 그렇게 야외에서 매일 같이 수영을 하다보니 수영복 라인 밑으로만 새까맣게 타버렸다. 그 후 몇 달 동안 반바지를 입을 때마다 색이 다른 두 피부가 보였지만, 그 때 생각이 나서 괜히 뿌듯했다.
내 숨이 보여
수영할 때는 내가 뱉는 숨이 보인다. 수영의 모든 영법은 고개가 나올때 입으로 숨을 들이쉬고 물속에서 코로 내쉰다. 그래서 수영 처음 배울때 하는게 '음~파 음~파’다. (근데 이거 생각보다 반대로 하는 사람 많다. ‘음~' 할때 숨을 내쉬고 ‘파~' 할때 들이키는 거다. 파소리는 인위적으로 내지 않는 것이 좋닼ㅋ)
평소 물 밖에서는 스스로의 숨이 잘 보이지 않는다. 기껏해야 겨울에 김이 모락모락 조금 보이는 정도? 근데 수영에서는 내가 뱉어낸 모든 공기가 방울방울 수면위로 올라가는 것을 볼 수 있다. '내가 이렇게 숨을 내쉬고 있구나. 내가 이만큼 뱉어내고 있구나. 그럼 다음에 이만큼 들이쉴수 있겠구나.’
힘겨울 때 내 숨을 보는 건 엄청난 응원이된다. 내가 내쉬고 있는 숨의 양은 내가 내고 있는 힘의 양을 보여준다. 내쉬는 숨의 길이는 내가 앞으로 낼 수 있는 힘의 지표가 된다. 마지막 스퍼트를 하고 잇을 때, 숨이 적으면 '내가 숨을 더 쉬어야 겠구나' 하고 생각한다. 힘이 들 때 스스로 힘을 내기위해 자각하게 해준다. 고마운 숨방울들이다.
숨을 참아야 하는 순간
수영할때도 가끔은 숨을 참아야 되는 순간이 있다. 바로 잠영할 때다. 잠영은 숨을 참은채 물속에서 이동하는 영법이다. 물속에서만 움직이기 때문에 공기의 저항을 받지 않는다. 때문에 어떤 영법보다도 빠르다. (숨을 못참는 사람은 제외)
아무런 저항 없이 물 안에서 움직이다보면 고요함을 느낀다. 밖에서 크게 떠드는 사람이 없다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내가 가르는 물살의 느낌만 내 어깨를 지나간다. 이렇게 평화로운 기분을 즐긴다.
하지만 언젠가 내 숨이 끝나는 때 다시 물밖으로 나가야한다. 수면 위의 산소를 다시 마셔야한다.
수영이 끝나면 다시 지상으로 나가야한다. 다시 중력을 받아야한다.
땅은 우리를 끌어당기고 기압이 우리를 누르지만 다시 서야한다.
땅은 불편하고 무겁지만 그 곳에 다시 서야 할 이유도 있다.
중력의 무게를 견디는 사람이 수영을 할 수 있다. 물안에만 있어서는 근육이 생기지 않는다. 수영선수들의 울그락불그락한 몸들은 사실 모두 역기를 들고 턱걸이를 하는 운동으로 만들어진 몸이다. 물안에서만 있는 사람은 흐물흐물해진다. 수영을 잘 할 수가 없게된다. 물 안에서 더 잘 움직이기위해서, 아니면 땅위에서 살아야 하기에. 어째뜬 우리는 중력을 견뎌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