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길

by 강두구

가끔 이른 저녁에 잠이 깨면 맨발로 바닷가로 나가 담배를 태운다. 부모님은 내게 앞으로만 나아가라고 요구했었다. 그렇게 십수 년 달리다가 결국 그들의 생각이 틀리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주변은 둘러보았다. 적당한 학벌의 와이프, 유학 가있는 귀여운 딸. 물론 둘 다 바로 내 곁에 없다. 베를린. 돈이 아니라면 이러한 가족의 형태는 빈 껍데기만 남겠지. 아니, 이미 껍데기만 보고 시작했었나? 자기는 하나 뿐인 아들을 보며 버텼다고 회사 선배가 자신의 결혼 생활을 내게 늘어뜨린다.

“야, 그래도 우리 부러워하는 새끼들 꽤 많아 인마.”

물론 선배의 저런 얘기들이 나를 훨씬 더 위로해줬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결국 퇴근 후 집에 오면 텅 비어있다. 말 그대로 빈 방이 여러 개다. 대학 땐 좁은 방에 살아서 외로우면 그 느낌들이 내 근처에 붙어 있어서 외로웠다. 그런데 여긴 외로움이 커질 공간이 많고 넓어서 외롭다. 아내는 이 집을 주거가 아니라 투자용으로 여겼다.

‘확 팔아버려 이거?!’

‘뭐 고매하신 장인어르신이 해주신 집이니 불평하면 배부른 소리겠지.’

벽에 걸려있는 가족사진을 멍하니 본다. 딸, 아내, 그리고 나.

사진기 앞에선 항상 어색했었는데 저걸 찍었던 날은 왠지 미소지으며 저절로 웃고 있었지. 내가 이렇게 자연스럽게 미소짓고 행복할 수도 있는 사람이란 걸 깨닫고 스스로 대견했었다. 이런게 성공이구나. 사진관에서 사진사에게 핀잔을 한 번도 안 받고 마치 결혼도 여러 번 하고 애도 많이 낳은 남자라서 가족사진을 여러 번 찍어본 남자처럼 능숙하게 사진기 앞에 앉아 가족들과 포즈를 잡으며 웃는 거. 엄마, 아빠가 들려줬던 성공이랑은 달라.

“아빠, 나 비행기 태워줘. 아니! 진짜 비행기. 엄마랑.”

난 그 때 직감했다. 모성애란 너무나 견고한 구조로 짜여진 치밀한 감정이란걸. 부성애조차 그 사이를 뚫긴 어렵다는 것. 그리고 그들을 보내줌과 동시에 나만의 새로운 성공의 기준을 찾던 가 새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

인천공항. 딸과 아내. 뒷모습.

한 번 만 더 뒤돌아 손 흔들어 주면 이런 형태의 가족도 가족이라 인정해줄게. 나는 누가 내 생각이라도 읽은 것처럼 이내 나의 처절함마저 부끄러워했다.

쌩하니. 이륙. 베를린. 안녕.

한참을 공항에 홀로 앉아 있는다. 전 세계 사람들이 여기서 그리고 거기서 배웅. 마중. 배웅. 마중.

‘아냐 이건 이별 같아.’

결국 나는 아파트를 팔았다. 든든한 회사도 나왔다. 회사 선배가 내게 말한다.

“와, 이 새끼 진짜 부럽네.”

이기적으로 살아보는 게 이렇게 짜릿한 줄 알았다면 더 빨리 나만 생각할 걸 후회가 된다. 친정 쪽에선 분명 내게 소송을 걸 거다. 아무것도 모르는 딸이 크면 나를 원망하겠지. 아니, 이미 모성애 때문에 넌 이미 평생 엄마 편일거야. 상관없어. 이래나 저래나 내가 생활비 꼬박 꼬박 보내주고 영상 통화 매일 했어도 넌 아빠 원망하게 돼있어. 그게 사춘기거든. 나? 나는 그게 지금 왔을 뿐 이란다 얘야.

한국은 다 좋은데 너무 빨라서 문제다. 그래도 귀국도 하고 소송하는데 이것저것 준비하고 변호사 선임하고 상의하는데 기타 등등 (뭐 결국 돈) 한 달 정도는 걸릴 것이다. 그리고 거제도까지 홀로 이사 온 나를 찾으려면 꽤나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이런 자유가 또 다른 성공인가?

가끔 이른 저녁에 잠에서 깨면 맨발로 바닷가로 나가 담배를 태운다. 부모님은 내게 앞으로만 나아가라고 요구했었다. 그런데 바닷가 여긴 앞으로 나가면 빠져 죽어. 그래서 옆으로만 갈 수 밖에 없는 해안가를 좋아한다. 담배가 거의 다 타들어 갈쯤에 고개를 돌려 바다 쪽을 바라본다.

엄마, 아빠, 아내, 딸, 베를린이 가라앉고 있다.

전부 다 빠져죽어 간다. 허우적 거리길래 나는 씩 웃으며 담배를 바다로 튕겨준다.

‘여기, 향기 나는 구명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