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솔과 키보드
보도블록 위의 경쾌한 발걸음 같은 터치감으로 생각을 내려놓게 되는 키보드. 몇 해 전 지인의 가방에서 쏟아진 화장솔을 보는 순간 가장 먼저 떠올렸던 것은 먼지 쌓인 키보드였다. 놀라운 기능성을 경험한 화장솔이 여성 전용인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 여겼다. 키보드 틈새의 먼지가 눈에 띄면 늘 화장솔을 떠올리곤 한다. 담뱃갑이 비어버린 늦은 밤 베란다 서랍장 틈에 흘려 놓은 한 개비 담배를 발견하고 정작 라이터를 찾지 못했을 때의 당혹감보다 책상 위에서 사라진 화장솔의 부재가 나는 더 당혹스럽다. 신뢰할 수 있는 입력장치인 키보드의 진화는 달갑지 않다. 지금 이대로의 또각 거림과 숱이 많은 화장솔이 있다면..
로또와 책
무료해지면 헌 책방엘 간다. 천장까지 빼곡히 꽂혀있는 벽면의 들쑥날쑥한 책장을 대할 때면 풍요로움마저 느낀다. 아무런 감흥도 불러일으키지 못하던 관심 밖의 서가 앞에서 긴 파마머리의 여인과 눈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금세 새로운 관심분야가 생겨나기도 한다. 로또에 당첨되면 난 어쩌면 가장 먼저 헌 책방으로 달려갈지도 모를 일이다. 온방을 가득 채울 분량의 책을 1톤 화물에 잔뜩 싣고 돌아오는 길에 실없이 히죽거리는 스스로를 떠올리며 요즘도 복권방을 찾는다. 확률 50%인 로또는 왜 늘 비껴갈까? 나 아니면 남인데.. 몇 주에 걸쳐 서재를 꾸미고 책을 분류해 진열하고서야 그 가지런함에 안도하는 사치를 떠올리며 또 한주를 보낸다.
부대낌
무료하고 지리멸렬한 일상이 이상하리만치 기복 없이 반복되는 가운데에도 삶을 지탱하고 버텨내는 이유는 가끔 사람이다. 그러나 부대낌이 위안이 되는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가며 점점 멀어지거나 사라진다.
온라인에서 어쩌다 마주치는 사람이 나와 같은 종족이 아닐까 촉각을 곤두세우기도 한다. 사람에 대한 애틋함은 가끔 상처가 되고 브랜디에 담은 초콜릿의 흐느적거림과도 같이 흘러내려 이내 잊혀진다. (브랜디에 초콜릿을 언제 넣어보나?) 익숙하고 스스럼 없는 몸짓과 우호적인 눈빛의 사람은 늘 정겨움의 대상이다. 어느 유튜버의 여행길 영상에서 마주치는 낯선 사람들의 친절함은 사람에 대한 정겨움을 느끼는 흔치 않은 계기로 눈길을 끈다. 애써 다 말하지 않아도 고개를 끄덕여 줄 사람을 만나는 일은 부대낌이 싫지 않은 일이다.
넓은 창
통유리의 넓은 2층 창을 만나게 되는 카페는 금세 단골이 된다. 시야 한가득 분주한 제각각의 사람들을 적당한 거리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그곳은 불멍과 비할 바가 아니다. 어쭙잖게 짧은 순간 내려다 보는 거리에서 누군가의 삶을 유추하는 일은 아이러니하게도 나를 보게 되는 계기를 덤으로 얻곤 한다. 창이 넓은 그곳은 잠적을 돕는다. 어스럼 해가 지고 거리로 스스로를 내몰아도 좋을 어둠이 내리면 그제서야 빠져 나온다. 종로2가, 청담동, 분당 서현에 잠적하기 좋은 곳을 찜해두고 가끔 찾곤 한다. 넓은 창을 통해 바라보는 도심속 풍경에서 늘 무언가를 찾고 있지만 손에 잡히지 않는다. 넓은 창을 갖기 위한 꿈을 꾸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에겐
애써 나를 의식하며 말을 이어가느라 노력하는 모습과 간간이 지나치며 행동을 유추해 건네는 인사말에서 배려받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습관처럼 그것이 몸에 밴 사람들과 만나는 공간으로의 나들이는 피로감이 적다. 일상이 주는 속박의 굴레에서 이기적인 사람들의 틈바구니를 헤집으며 하루를 보내느라 지치는 와중에도 배려하는 사람을 만나는 일은 큰 위안이다. 오디션 프로를 통해 몇몇 심사위원이 강조하던 '진정성'은 음악, 일, 사람 모두에 해당되는 얘기다. 배려는 진정성에 기반하기 때문에 공감을 동반한다.
찾아도 찾아도 배려하는 지인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 누군가를 그대가 해보는 것은 어떨까..
늦은 밤과 이른 새벽 사이
한 때 불면증에 시달리고 싶다는 뜬금없는 충동을 갖곤 했다.
생산적인 결론을 얻어야 했던 많은 경우의 일들은 늦은 밤과 이른 새벽 사이에 어렴풋이 가닥을 잡곤 했던 탓이다. 맞닥뜨린 일과 마주 보며 치열하게 고민했던 문제는 세상이 잠들고 나서야 비로소 가지런해지는 경우가 많다. 내 안의 생각을 끄집어내는 일에서 생각을 방해하는 요소는 시야를 가리는 밤이 되어서야 제거되는 듯했다. 언제쯤 다시 불면증에 걸릴 수 있을까..?
시간은
시간은 많은 것을 알려줬다. 세상을 먼저 살았던 이들의 흔하디 흔한 진부한 말들이 진리였음을 깨닫게 했고 가슴 아픈 사랑의 결말에 찾아온 눈물과 아쉬움은 뒤의 또 다른 설렘으로 잊혀 진다는 것과 술잔을 부딪히는 이에게 들려줄 이야기와 겨울을 위한 긴팔 스웨터의 요긴함뿐만 아니라 바뀌는 계절 사이의 걸음걸이가 여느 때완 달라진다는 것을..
김밥과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꼬깃꼬깃 아껴 둔 용돈으로 해야 했던 브릿지 염색이 어느 순간 새치로도 대신할 수 있음과 내키지 않는 약속을 미루기 위한 감쪽같은 발상의 스킬 또한 늘어날 수 있음을.. 그리고 점점 빨라진다는 것을..
공상은 더블 위시본을 타고
공상은 가끔 슈퍼차저의 엔진음과 배기음에 의지한 체 어느 한적한 해변도로로 날 옮겨 놓는가 하면 이국적인 리조트가 즐비한 해안가에 이르러 모터보트에 몸을 옮기는 자신을 떠올리게 한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그늘진 야자수 아래를 뛰어오며 애타게 날 부르는 어느 여인과 멀어지는 사연 많은 대목에서 화들짝 놀라 주위를 둘러보기도 한다. 일그러진 미간을 펴주고 기억들 사이사이 공백을 참신한 장면들로 메꾸기도 하는 공상은 흐릿해지며 끝이 예견된 멍 때리기로 이어진다. 눈을 감으면 언제든 떠날 수 있는 남태평양은 어쩌면 그리 선망할 일도 아니라는 어처구니없는 결론을 얻으며..
느린 걸음
느린 걸음은 보스턴의 낙엽 떨어지는 가로수 길이나 바람 좋은 라임 강변이 아니어도 좋다. 도심 식당가의 번잡한 골목이나 바뀌는 신호에 맞춰 들어 선 사람 많은 횡단보도여도 좋을 일이다. 주말 근무 뒤 나온 덕수궁 돌담길이나 주말 청계천 연인들 사이에서의 느린 걸음만 아니라면 일상 속의 느린 걸음은 되려 스스로를 돋보이게 하며 시선을 끌 수도... 출장 길 회사로 복귀하는 바쁜 오후일수록 감미롭고 타부서 전근이 예정된 상사의 기대가 한껏 높은 영향력 벗어난 기획안을 결제판에 챙겨 일어서는 몇 발자국의 느린 걸음은 짜릿하기까지 하다.
감사한 것들에 대한 너스레의 주제로 그럴듯해 보여 시도한 '느린 걸음'은 어째 좀 어거지 같다는 생각이 이제서야 든다.. 슬리퍼를 끌며 맨발로 다녀온 편의점에서 돌아오는 내내 그저 보폭을 줄이고 느리게 걷는 것만으로 얻을 수 있는 소소한 행복은 한겨울에 할 짓은 아닌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