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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일 May 22. 2020

슈프림맛 오레오가 의미하는 것

오레오 마시썽

일반적인 브랜드와 달리, 슈프림은 시즌 단위의 컬렉션 대신 드랍이라는 주 단위의 연속적인 라운드를 통해 제품군을 선보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물론 한 계절에 입을만한 옷가지는 대개 정해져 있으니, 기획과 디자인은 여전히 시즌 단위로 진행하는 것이 이래저래 유리하다. 실제로 라인업 중 대부분은 시즌 전에 공개되어 SNS나 커뮤니티에서 1차적인 이슈화가 이뤄진다. 다만 구체적인 발매 일정은 공개되지 않는다. 결국 원하는 아이템을 점찍어놓고서 할수 있는 건 언제가 될지 모르는 "X차 드랍"을 기다리는 것 뿐이다.  


발매 후 품절까지 걸린 시간을 정리해주는 랭킹 사이트

소비자의 입장에선 이런 식의 발매가 달가울 리 없다. 원하는 아이템을 확실하게 갖기 위해서는 기습적으로 공개되는 주차 별 발매 정보를 주의 깊게 챙겨봐야 하기 때문이다. 10대 청소년과 진검승부할 용기가 없는 시시한 어른이라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한편 브랜드의 입장에선 이보다 더 편한 일이 없다. 100개의 선공개된 아이템을 매주 5개씩 발매한다 치면, 나머지 95개의 아이템을 잠재적 볼모로 삼아 5개의 아이템에 관심을 당겨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를 통해 시즌 전반에 걸쳐 매니아들의 관심도를 늘 라이브 상태로 가열할 수 있다.


슈프림의 기상천외한 콜라보는 여기에 펀치라인으로 작용한다. 라이브한 관심 속에 기행에 가까운 제품들을 말 그대로 “드랍”하는 것이다. 얼마나 더 엉뚱하고 괴팍할 수 있는가? 더 쉽게 말해 뜬금없이 어그로를 끄는 것이 핵심이다. “그 이상한 콜라보 봤어? 진짜 파는거 맞아?” 라는 궁금증이 SNS를 통해 대중적으로 회자되고, 그럴수록 매니아들의 수집욕구는 불타오른다. 2020SS 시즌을 통틀어 가장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슈프림맛 오레오의 스토리텔링은, 맥락도 없고 바보같지만 바로 그 유머러스함 하나만으로 SNS시대에 가장 효과적인 마케팅 방식을 보여준다.


아포칼립스를 주제로 한 발렌시아가 2020FW 컬렉션. 

여전히 대다수의 기성 브랜드들은 컬렉션 방식의 시즌 런칭을 고수하고 있다. 10년 전만해도 패션 정보는 대개 잡지를 통해 유통됐고, 인터넷보다 훨씬 집약적인 종이매체에서 브랜드는 컬렉션 전반에 걸친 롱폼 스토리텔링을 할 수 있었다. 단벌의 옷으로는 끝나지 않는 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환경이었던 셈이다. 문제는 고도화된 정보사회에서 그렇게 긴 이야기를 들어줄만한 인내심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은 것이다. 4K화질로 루이비통의 런웨이를 실시간으로 들락날락할 수 있는 요즘 세상이건만 동시시청자는 전세계를 통틀어 3천명이 채 되지 않는다. 가진 이름값에 비하면 기대 이하의 재미를 가진 것이라 할 수 밖에 없다.


결국 각각의 아이템에 짧고 굵은 스토리텔링을 부여하고, 동시에 제품군 전반의 정체성도 균형있게 정리할 수 있는 디자이너들이 앞서나갈 것이고 실제로도 그런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마치 컨텐츠 업계의 중심이 레거시 미디어에서 유튜브로 옮겨가고, 대세가 롱폼에서 숏폼으로 바뀌어가는 과정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20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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