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들은 매장을 방문해서 어떤 경험을 얻고자 하는가?
엄청나게 오랫만에 백화점 쇼핑을 했다.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거의 5년도 넘은거 같다.
팀원들과 같이 헬스장에 가기로 했는데, 멍청하게 슬리퍼를 신고 출근을 해버린 것이다. 지도를 찾아보니 사무실 맞은 편 압구정 현대백화점에 반스 매장이 있었다. 스트릿 지망생들의 영원한 동반자 VANS… 그런데 막상 와보니 정겨운 반스는 온데 간데 없었고, 알고보니 ‘빈’스라는 편집매장의 이름을 잘못 본 거였다. 이대로 돌아가 신발 핑계를 대면 비웃음거리가 될 게 분명해… 하는 수 없이 4층의 남성의류 섹션으로 올라가면서 주변 매장들을 둘러봤다.
매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특징을 관찰하면 그 브랜드의 상업적 태도를 아주 쉽게 알 수 있다. 백화점이나 면세점에 입점한 럭셔리 브랜드 매장을 둘러보면, 안에 서있는 점원들이 하나같이 검은 옷이나 정장을 입고 있다. 내로라 하는 브랜드들, 구찌, 루이비통, 샤넬, 맥퀸, 디올, 펜디… 예외는 없다.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슬쩍 묻힌 유니폼도 더러 있지만 어쨌든 정장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우리는 보통 상대방에 대한 존중을 표하고자 포멀한 옷을 입는다. 그래서 고객과 만나는 서비스직에 종사하는 사람들, 백화점 매장 점원들은 유니폼을 입는다. 그런데 패션 문화와 개성 표현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 아닌가? 유니폼, 획일화된 의복을 입고 있다는 건, 의복을 착용자의 개성 표현 수단이 아닌 TPO적 기능만 남긴 역할분장의 도구로만 보는 것과 같다. 나아가 고객에게 패션적 가치, ‘옷을 잘 입는 법’을 전수해야 할 화자에게서 가장 강력한 표현 수단이 배제된 것이다. 그 사람이 옷을 잘 입는지 아닌지 증명도 할 수 없는데 뭘 믿고 좋은 추천을 받을까?
흔히 알려져있듯이 백화점, 면세점의 매장 판매직은 채용 허들이 가장 낮은 직군 중 하나다. 쉽게 뽑아 쉽게 쓰는 임시직이 태반이고, 업무 교육이라고 해봤자 단편적인 제품 정보를 암기시켜 빠르게 업무에 투입하는 정도다. 그 분들을 무시하는게 아니라, 별도의 전문성을 검증하지 않은 채용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그래서 대부분의 판매원들에게 체계적인 스타일링 전문성을 기대하기는 무리가 있다. 단지 제품의 스펙만 상세히 알고 있다고 좋은 제안을 할 수 있는게 아닌데… 발렌시아가의 핸드백을 든 사람한테 그게 무슨 가죽 어떤 등급인지 아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대답을 못 한다. 나조차도 자주 신는 조던1에 무슨 가죽을 썼는지 별로 관심이 없다. 당연한 것이 원래 패션 소비에서 소재의 고급 정도는 결정적인 고려 사항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펙이나 가격표를 종일 외워도 반쪽짜리 제안이 될 뿐 좋은 스타일링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결국 서비스 제공자로서 남는 경쟁력은 건 극진하고 정중한 접객 서비스 밖에 없다. 친절함도 분명히 중요하지만, 굳이 패션이 아니라 어떤 B2C 세일즈에서도 필요한 기본적인 요소다.
유니폼을 입은 직원들로 채워진 브랜드는, 패션의 가치를 높히는 것이 아닌 접객 서비스의 가치를 높히는 매장 경험을 지향한다. 그리고 그 브랜드들은 언제나 가장 높은 매출을 낸다. 사실은, 고객들도 패션을 바라보지 않기 때문이다. 매장을 방문해서 어떤 경험을 얻고자 하는가? 그 브랜드의 어떤 가치를 내 몸에 입히고자 하는가? 어떤 답을 하냐에 따라 같은 매장에서도 다른 소비 경험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