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경제-14
플랫폼 관련 용어/개념 정의
필자는 그동안 13개의 글을 통해 플랫폼 관련 용어/개념을 정리하고 소수의 글로벌 기업이 주도하는 불공정, 불공평한 기업생태계가 한 국가/지역의 모든 이해관계자가 공진화하는 혁신생태계로 발전하는 미래상을 꿈꿔보았다.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그와 같은 비전은 플랫폼의 의미에 대한 올바른 이해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플랫폼은 문맥에 따라 기술, 상품(유형 제품, 무형 서비스, 복합 솔루션 형태), 비즈니스 모델(BM), 기업, 생태계, 인프라 등을 가리키는 모호한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일반인이든 전문가든 정확한 의미를 담은 용어를 선택, 사용해야 올바른 의사소통과 문제해결이 가능할 것이다. 예를 들면, ‘플랫폼 규제(또는 촉진)’는 그 대상이 기술, 제품, 서비스, 솔루션, BM, 기업, 생태계 중 어느 것인지를 명시하지 않으면 엉뚱한 타겟에 불필요한 자원을 집중하게 되어 효율(예: 시간, 비용), 효과(예: 목표 통합), 효용(예: 이해관계자 만족)이 모두 낮아질 수밖에 없다. 필자는 ‘플랫폼’을 다음과 같이 구분해서 사용할 것을 제안한다.
o 플랫폼 기술: 여러 제품/서비스/솔루션에 공통으로 들어갈 기능들을 하나의 구성품으로 만들어서 활용하는 생산 기술로 디지털 기술과 서비스 기술로 구성됨. (예) 자동차/선박/항공기 등의 제품군(Product-Line) 설계-제조, 생성형 AI의 대형언어모델(LLM: Large Language Model). 참고로 ‘서비스 기술’이란 필자가 만든 용어로 인문학, 사회과학 등을 활용해서 서비스의 생산성과 성과를 높이기 위한 기술을 가리킨다. IBM은 2000년대 초에 버클리대와 함께 ‘서비스 과학’이란 학제적 연구를 시작해서 과학/공학/경영을 포괄하는 SSEM(Service Science, Engineering, Management)으로 확장한 바 있다.
o 플랫폼 제품: 여러 유형 제품에 포함될 수 있는 제품/부품 (예) 자동차 파워트레인, 스마트폰 OS.
o 플랫폼 서비스: 여러 무형 서비스에 포함될 수 있는 서비스 (예) 메시징, 데이터 교환, 프로세스 연결, 지불/결제, 식별/인증, 정보보호 등.
o 플랫폼 솔루션: 여러 상품에 포함 가능한 HW, SW, 통신 등의 결합체 (예) 차량, 드론, 로봇 등 무인이동체에 포함되는 자율주행 모듈.
o 플랫폼 비즈니스: 플랫폼 기술이나 상품을 활용해서 수익을 만드는 사업 (활동).
o 플랫폼 비즈니스 모델(BM): ① 플랫폼 기술이나 상품을 기업 자체 역량만으로 생산해서 여러 기업이나 개인에게 판매하는 BM ② 플랫폼 기술/상품을 기반으로 2개 이상 그룹에게 연결/중개/거래/협업/집적/통합 서비스를 제공해서 가치를 창출하는 BM. 필자는 ①을 ‘사슬형 (플랫폼) BM’ (예: 스마트폰 OS, 시스템 반도체, 게임기), ②를 ‘원탁형 (플랫폼) BM’ (예: 앱스토어, 마켓플레이스)으로 구분함. 완제품(또는 부품)을 생산-판매하는 전통 방식은 ‘파이프라인 BM’이라고 함.
o 플랫폼 기업: 플랫폼 BM을 한 개 또는 여러 개 운영하는 공기업이나 사기업을 가리키며 BM 개수에 따라 단일기업 또는 복합기업으로 구분함. (예) 미국 GAMMA. 중국 BAT, 우리나라 네카라쿠배 등.
o 플랫폼 생태계: 플랫폼 상품의 이해관계자들이 공동으로 생성, 유지하는 가치 네트워크를 가리키며 R&D, 생산, 유통, 소비, 재사용/폐기 단계의 전부 또는 일부를 대상으로 함.
o 인프라: 구성원 간 의사소통이나 물적/지적/인적/금전적 자산 등의 이동과 교환/공유를 촉진하기 위한 국가/사회 기반 (예) 방송/통신/교통망, 플랫폼 정부.
플랫폼 비즈니스의 가치명제 도출
위와 같은 용어/개념 정의를 바탕으로 (영리/비영리 목적) 플랫폼 기업이 플랫폼 비즈니스를 수행할 때 다음과 같은 가치명제를 염두에 둘 것을 제안한다.
o 플랫폼 기술은 지속 발전시켜서 그 혜택이 인류의 경제, 사회, 문화 활동 전반으로 파급되도록 하여야 한다. 실제 대부분의 글로벌 플랫폼 기업은 이질적 요소들을 연결-매칭하고 거래/협업을 지원하는 최고 수준의 디지털 기술과 서비스 기술을 지속적으로 확보, 발전시키고 있다.
o 기업이 생산-판매하는 모든 완성(상)품은 플랫폼 상품으로 전환함으로써 더 큰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애플은 완성품인 iOS를, 구글은 완성품인 검색엔진을 기반으로 앱스토어, 검색광고 등의 플랫폼 상품을 추가/확대하였다. B2C용 완제품인 게임기를 게임 SW 개발자용 B2B 상품으로 만드는 것 또는 B2C 상품인 가구를 DIY 킷트를 포함한 반제품으로 만드는 것도 최초 생산자가 만든 가치에 외부 보완자(complementor)가 만든 가치를 더하는 결과가 된다. 플랫폼 상품은 공급쪽 규모/범위의 경제에 수요쪽 규모의 경제를 합친 결과물이다.
o 파이프라인 BM보다는 사슬형 (플랫폼) BM이, 사슬형보다는 원탁형 (플랫폼) BM이 더 큰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원탁형 BM 중에서도 연결/중개보다는 거래/협업, 집적/통합 등 고수준의 원탁형 BM이 더 큰 가치를 만든다. 단, 비즈니스 성과는 BM보다는 상품 자체의 수월성과 임직원의 BM 실행 역량에 따라 달라진다. 예를 들면, 애플은 컴퓨터 생산-판매(: 파이프라인)에 스마트폰 OS(: 사슬형), 앱마켓(: 원탁형, 거래), 헬스케어(: 원탁형, 집적/통합) 식으로 BM을 발전시켰다.
o 플랫폼 기업은 하나의 BM보다는 특성이 다른 여러 개의 BM을 운영함으로써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다. 전통적 파이프라인 BM은 상품 자체가 가진 수월성/차별성이, 사슬형 BM은 상품이 다수 제품/서비스에 포함되도록 표준화해서 다른 기능을 연결시킬 수 있도록 만드는 생산 기술이, 원탁형 BM은 내/외부 역량을 연결, 통합하는 역량이 각각 경쟁력을 좌우하므로 BM의 강/약점을 조합해서 비즈니스 포트폴리오로 설계,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o 플랫폼 비즈니스 성과는 플랫폼 기업 중심의 생태계를 넘어서 이해관계자 생태계로 발전함에 따라 지속가능성이 커진다. 영리/비영리 목적 플랫폼 생태계를 국가 차원에서 연결, 통합해서 디지털 시대의 국가혁신생태계(NIS)를 만들 수 있다.
플랫폼 사고 및 플랫폼 기술의 중요성
‘플랫폼 사고(thinking)’는 공동의 이익을 창출하기 위한 플랫폼을 함께 만들고 유통해서 성과를 함께 나누는 사고방식이다. 플랫폼 사고로부터 특정 구성품을 공유할 수 있게 만드는 플랫폼 기술이 등장, 발전했고 이를 바탕으로 플랫폼 상품과 BM이 등장했으며 경제적, 사회적 의미를 갖는 플랫폼 생태계에 이르게 된 것이다. 플랫폼 사고가 빠진 플랫폼 기술, 상품, BM, 생태계 등은 플랫폼이라 할 수 없다. 플랫폼 사고에서 비롯된 플랫폼 기술과 플랫폼 상품은 이해관계자에게 여러 가지 효익을 제공한다. 문제는 플랫폼 BM이 본질에서 벗어나 단지 ‘이윤’만 추구할 때 건전한 생태계가 아니라 플랫폼 기업이 독주, 독식하는 가치사슬에 머물면서 불공정, 불공평을 키우는 점이다. 플랫폼 사고가 부족하면 플랫폼의 가치를 낮게 평가해서 공유할 부분을 찾거나 만들지 않게 되고 눈앞에 있는 작은 이익을 탐하느라 플랫폼 기술/상품이 제공할 장기적인 혜택을 놓치게 된다.
‘플랫폼 기술’은 공통요소를 찾고 모아서 하나의 구성품으로 설정하고 이를 다른 여러 제품/서비스가 공유할 수 있도록 내부 기능과 연결(interface) 부분을 규격화/표준화해서 생산하는 기술이다. 생산자는 특정 제품군(群)이 활용하는 공통구성품의 비중을 높임으로써 생산 비용과 시간을 줄일 수 있고 소비자는 여러 제품/서비스를 동일/유사한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플랫폼을 잘못 만들면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가 그와 같은 혜택을 얻지 못하고 오히려 걸림돌이 된다. 플랫폼 사고에서 출발했더라도 (플랫폼 기술 부족으로) 공유할 부분이 없거나 공유하려고 해도 공유할 수 없게 된 것은 플랫폼 상품이 아니다. 12개의 리거시 시스템이 안고 있는 비효율을 제거하겠다고 만든 플랫폼이 소기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13번째 리거시 시스템이 돼버리는 것은 목적(: 플랫폼 사고)과 수단(: 플랫폼 기술/서비스) 양쪽에서 실패한 것이다.
플랫폼 기술은 산업/기업이 주도해서 개발하고 정부가 활용함으로써 확산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부가 R&D를 통해 핵심기술 개발을 지원할 수는 있지만, 사업화 단계를 거쳐 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투자와 노력이 지속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대형언어모델(LLM)과 생성형 AI를 포함한 신기술 등장 과정에서 볼 수 있듯이 이제 미래/첨단 기술은 자금, 인재, 시장지배력 등을 확보한 글로벌 대기업이 선도하고 있다. 정부는 플랫폼에 대한 촉진자/규제자이면서 공공 플랫폼 운영자이기에 정부와 민간의 긴밀한 협력은 국가 차원에서 매우 중요하다. 핀란드 정부(2018)는 플랫폼 기술은 산업이 주도해야 하지만, 산업(도메인)별로는 정부/공공이 주도하거나 정부-민간 공동 사업으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하였다. 건강/의료, 에너지/환경, 수송 인프라 등 공익에 직결된 산업은 정부가 주도하고 글로벌 시장을 타겟으로 한 산업은 정부-민간이 협업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플랫폼 사고가 부족한 정부/공공 사업
일반기업이 생산-판매하는 상품에 플랫폼 사고와 기술이 적용되어야 하는 것처럼 정부/공공 서비스에도 같은 원리가 적용되어야 한다. 공익을 추구하는 사업/예산이기에 ‘공유’와 ‘공동활용’은 더욱더 중요한 기준인 것이다. 공공 사업은 일반기업의 비즈니스에 비해 객관적 성과 평가가 상대적으로 어렵기에 기획/계획-설계-집행 전반에 대한 좀 더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실제로 플랫폼 사고, 플랫폼 기술, 플랫폼 BM, 플랫폼 생태계 등에 대한 진지한 고심 없이 진행되는 공공 플랫폼이나 정부 지원 사업들이 널려 있다. 예를 들면, AI, 빅데이터, 클라우드, 메타버스 등 디지털 기술개발, 전통산업의 디지털 전환(DX), 스마트 도시/제조/의료 등 신산업 육성, 관련 인재개발 등 사업 대부분이 부처별, 사업별, 주관기관별로 수직 분할되어 진행되고 있다. 디지털 시스템은 일반적으로 여러 가지 문제(또는 산업)에 공통 적용 가능한 수평(horizontal) 기능과 문제/산업별로 특화된 수직(vertical) 기능으로 구성된다. 두 기능의 비중을 대략 50:50 또는 30:70이라고 하자. 절반 또는 1/3에 해당하는 수평적 기능(즉, 플랫폼)을 부처별, 사업별로 쪼개면 중복과 비효율이 커지는 것은 물론이고 범정부 나아가 국가 차원의 공동 목표로 통합하는데 제약이 생길 수밖에 없다.
EU의 R&D 및 혁신 사업 중 상당 부분은 여러 국가, 조직, 연구자/기술자가 함께 기획/계획-집행하는 식이며 기술 플랫폼과 관리 플랫폼(즉, 허브 조직)을 구축하고 이를 통한 연결과 협업, 통합을 도모하고 있다. 예를 들면, EU는 1984년에 시작한 R&D/혁신 사업인 프레임워크 프로그램의 절반 정도를 협업(collaboration) 영역에 투자해 왔다. 현재 진행 중인 Horizon Europe 프로그램(2021~2027)은 유럽 디지털 혁신 허브(EDIH: Digital Innovation Hub), 유럽 혁신위원회(EIC) 시범사업, 혁신/기술연구소(EIT) 등의 협업 사업을 포함하고 있다. 이들은 특정 기술/주제에 대한 혁신 사업과 달리 디지털 기술 및 서비스 기술 고도화, 협업 네트워크 조직 운영, 관련 인재/전문가 양성 등 공통요소에 대한 다학제 접근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를 중심으로 연구소 간 융합 R&D를 진행하고 있으나 규모와 협업 수준 면에서 상대적으로 미약한 상태이다.
플랫폼 사고와 산업 경쟁력 강화방안
플랫폼 사고를 확대하고 플랫폼 기술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시스템 공학과 서비스 기술에 대한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 Top-down 수직적/계층적 분할은 시스템 공학의 핵심 원리로 효율성을 얻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Top-down 분할은 하위 시스템의 결과물을 수평적으로 연결하고 bottom-up으로 통합하는 작업이 수반되지 않으면 당초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 유형 제품과 하드웨어를 개발하는데 분석적 사고와 전통 공학이 중요했던 것처럼 무형 서비스와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데는 통합적 사고와 서비스 기술이 중요하다. ‘서비스 R&D 활성화 전략’(관계부처합동, 2020)에 의하면 2018년 기준, 우리나라의 GDP 대비 R&D 투자는 OECD 2위지만, GDP 대비 서비스 R&D 투자는 하위권인 25위이다. 정부 R&D 투자 중 서비스 R&D는 단 5.2%로 매우 미미한 수준이다. 그렇게 적은 예산마저도 플랫폼 사고가 미비된 가운데 관광, 보건, 금융, 물류 등 업종별 R&D에 분할 투자되고 있다. 참고로, 핀란드는 2007년에 SW와 디지털 기술을 포함한 서비스 R&D 투자액이 하드웨어 중심의 ‘산업(industrial) R&D’ 투자액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15년 전부터 정부 R&D의 50% 이상을 서비스 기술에 투자해 온 것이다. 미국, 영국, 캐나다 등 서비스 강국들은 정부는 물론 글로벌 기업이 서비스 기술에 투자하고 있다. 그 결과, 선진국들은 제조업에서는 고부가가치 영역인 상품 기획/디자인, 엔지니어링 등에서, 서비스업에서는 산업을 재편성하는 수준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발굴에서 초격차를 확보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제조업에서는 상대적으로 부가가치가 낮은 제조/가공 파트에서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고 서비스업은 수십년 동안 변함없이 하위 수준인 것이다. 정부 및 국가 R&D에 대한 근본적인 발상의 전환과 시스템 개편이 절실하다. //
참고문헌
▪관계부처합동(2020), ‘서비스 R&D 활성화 전략’, 혁신성장전략회의 20-4, 2020. 10. 27.
▪핀란드 정부(2018), ‘Digital Finland Framework’, Ministry of Economic Affairs and Employment, 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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