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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덕현 Feb 08. 2024

디지털 혁신의 맥락(context)

디지털 혁신-01

디지털 혁신 시리즈를 시작하며

   필자에게 ‘혁신(innovation)’은 연구소, 기업, 대학 등에서 일하는 동안 계속해서 붙잡고 지낸 일종의 화두 같은 것이었다. 혁신의 의미나 목적(ends)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means), 특히 기술은 계속 발전해 왔다. ‘본말(本末) 전도(顚倒)’라는 말이 있다. 본질(本質)은 대개 내부에 있어서 드러나지 않은 일정 불변의 진리 같은 것이다. 반면, 말단(末端)은 겉에 드러난 실체로서 외부 자극에 쉽게 반응하고 변하며 때로는 본연의 모습조차 잃어버리는 수도 있다. 목적을 위해 수단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수단이 목적을 결정하는 것도 거기에 해당한다. 


   혁신이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활동이라고 본다면 인류 역사 자체가 혁신 과정인 셈이다. 우리가 함께 경험한 역사 속에도 수없이 많은, 크고 작은 혁신이 등장했다. 특히, 1990년대 인터넷 상용화에 따라 인류는 현실세계뿐만 아니라 가상세계에서도 소통하고 경제생활도 할 수 있게 되었다. 2022년 말, GPT로 대표되는 생성형 인공지능(Gen AI)가 등장함에 따라 인간의 지적 활동도 기계가 대신할 수 있게 되었다. 이와 같은 변화를 말단에서 보면 혼란스럽고 당황스럽겠지만, 본질을 이해한다면 좀 더 크고 넓은 시각에서 준비하고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전문가나 기업/기관이 미래 대변혁을 여러 가지 용어/개념으로 설명하는 것이 오히려 방해가 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2010년대 이후, 인더스트리 4.0과 5.0 (I4.0, I5.0), 가상물리시스템(CPS), 디지털 트윈2의 기계시대4차 산업혁명(4IR), 5차 산업혁명(5IR), 디지털 전환(DX), AI 전환(AX) 등이 기업/산업 내지 인류 차원의 혁신을 가리키는 용어로 등장하였다. 구체적인 혁신 전략 수립과 실행에 앞서 가장 중요한 것은 위와 같은 용어/개념(‘손가락’)이 가리키는 변혁(‘달’)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이해관계자와 공감하는 일이다. 잘못된 이해는 잘못된 판단-결정을 만들고, 잘못된 소통으로 이어져서 결국 잘못된 결과를 만든다. 


   이제부터 1960년대 말 이후 디지털 기술 발전에 따라 등장한 경제, 사회 변화를 디지털 혁신으로 규정한 가운데 그 목적(why), 대상(what), 방법(how) 등을 정리해 보려 한다. 


기술이 촉발하는 경제-사회 변화

   2010년대 중반부터 4차 산업혁명(4IR: The 4th Industrial Revolution)과 디지털 전환(DX: Digital Transformation)이 중요한 혁신 정책/전략으로 등장했다. 또한, 관련 용어로 인더스트리 4.0(I4.0)과 가상물리시스템(CPS), 디지털 트윈, 또 최근에는 인더스트리 5.0(I5.0), 5차 산업혁명(5IR) 등이 등장했다. 이들 용어/개념의 공통점은 무엇이고 차이점은 무엇일까? 어느 것이 상위 개념이며 하위 개념일까? 놓치지 말아야 할 본질은 무엇인지 또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 4차든 5차든 과연 ‘혁명’이라 할 수 있는 것인가? 이들의 공통점은 기술혁신이 촉발하는 미래 대변혁을 나름의 논리로 설명하면서 그것에 대비해야 한다는 일종의 알람(alram)이라는 데 있다. 이들이 진짜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현상에 대한 설명이나 미래 예측 자체보다는 바람직한 미래가 될 수 있도록 인류가 함께 준비/대비하자는 것이다. 따라서, ‘혁명’이라는 용어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농업혁명(1IR), 산업혁명(2IR), 정보혁명(3IR) 등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논리적 근거와 공감대가 조성되었으나 4IR에 대해서는 이견도 많다. 인공일반지능(AGI: 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에는 이르지는 못했지만, 대형언어모델(LLM)인 GPT가 새로운 혁명의 시작일 수도 있다. 


   4IR은 WEF 의장인 클라우스 슈밥이 2016년 1월 다보스 포럼의 의제로 제안한 것으로 가상계 기술(즉, 디지털 기술)뿐만 아니라 물질계 기술(예: 나노기술)과 생명계 기술(예: 바이오 기술), 나아가 앞으로 등장하게 될 융/복합 기술(예: 기후공학, 우주기술) 등이 촉발할 대변혁을 언급한 것이다. DX는 2010년대 초에 MIT, IBM 등이 정립한 개념으로 기업활동 전반에 디지털 기술을 적용해서 기업가치를 높이고 산업을 선도하려는 전략이다. I4.0은 2011년부터 독일 정부와 민간이 함께 추진한 전략으로 물질계와 가상계의 결합체인 가상물리시스템(CPS: Cyber-Physical System) 기반의 산업혁신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이들 용어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설명은 필자의 지난 ‘브런치’ 글을 참조 바람). I5.0은 EU가 2020년 말에 제시한 개념으로 I4.0에 바이오 기술, 스마트 소재, 디지털 트윈, 사이버 보안, AI 등 기술을 보강해서 인간과 기계가 공진화하는 생태계를 만들자는 것이다. 5IR은 막연하게 4IR 이후의 변혁, I5.0과 유사한 개념, 또는 2022년 말 챗GPT가 촉발한 인지혁명(Cognitive Revolution) 등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I4.0, CPS, DX 등은 가상계 즉, 디지털 세계에 초점을 둔 것이지만, 4IR, 5IR, I5.0 등은 바이오 기술과 인간을 포함한 생명계를 아우르는 개념이다. 


기업혁신과 디지털 혁신

   1940년대에 시작된 정보통신기술(ICT: Information & Communication Tech.)은 이제 광범위한 문제해결에 적용되는 범용기술(General-Purpose Technology)이 되었다. 2023년 이후 생성형 인공지능은 새로운 범용기술로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커다란 변혁을 일으키고 있다. 디지털 기술(DT: Digital Technology)은 디지털 데이터를 수집, 가공, 활용하는 기술로 종래의 ICT와 AI, 그리고 최근 부상한 빅데이터, 클라우드, VR/AR/메타버스, 블록체인, 3D 프린팅, 로봇 등 신기술을 포함한다. DT 중에는 AI, 빅데이터, 클라우드처럼 모든 디지털 시스템/서비스에 포함되는 기반기술도 있고 3D 프린팅이나 로봇처럼 특정 문제에 활용되는 응용기술도 있다. 1950년대에 등장해서 몇 차례의 부침을 거듭하다가 비로소 각광을 받게 된 AI 같은 기술도 있지만, 3D 프린팅이나 메타버스처럼 여전히 해결해야 할 기술 자체나 실용화 측면의 문제점을 가진 기술도 있다. 


   기업혁신(Enterprise Innovation)은 규모나 산업과 관계없이, 또 예나 지금이나 모든 기업이 추구하고 있고 또 추구해야 하는 공통적 & 기본적 목표이다(참조: ‘기업혁신 목적/대상/방법 변화’ https://brunch.co.kr/@duk-hyun/23). 디지털 혁신의 궁극적 목표는 기업혁신의 목표인 기업활동의 효율(예: 시간/비용 절감), 효과(예: 사업 통합, 조직 통합), 효용(예: 고객 만족)을 높여서 산업/시장에서 경쟁우위를 확보하는 데 있다. 디지털 혁신은 디지털 기술을 중요한 수단으로 활용할 뿐 시장/고객의 요구/기대나 생산/판매 현장의 해결되지 않은 문제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기술, 심지어 검증되지 않은 기술을 들고 그 활용처를 찾는 것은 수단과 목적이 바뀐 것이며, 기업의 주 임무인 ‘혁신’이 아니라 대학/연구기관이 R&D의 일환으로 수행하는 ‘실험’에 해당한다. 


디지털 전환과 AI 전환

   디지털 전환(DX)은 2010년대 이후 급속히 발전한 디지털 혁신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DX 개념을 초기에 정립한 MIT & Capgemini(2011)는 DX를 ‘기업이 보유한 전략적 자산에 대한 디지털화 투자를 통해 경쟁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정의하였다. ‘전략적 자산’이란 기업이 경쟁우위를 확보하는 데 기여한 유형/무형 자산, 예를 들면, 기술/IP, 제품/서비스, 파트너/채널, 고객기반, 조직문화 등을 가리킨다. 같은 시기에 IBM(2011)은 DX를 ‘기업이 디지털과 물리적인 요소들을 통합하여 비즈니스 모델(BM)을 변화시키고, 산업에 새로운 방향을 정립하는 전략’이라고 하였다. 또한, IBM은 DX가 1990년대 말부터 지금까지 3단계에 걸쳐 진화된 것으로 보고 있다. 1단계는 디지털 상품(예: 음악, 오락) 등장과 인프라 구축 시기, 2단계는 2000년대 초 이후 e-비즈니스, 전자정부 등 확산 시기, 3단계는 2010년대 초 모바일, IoT, AI 등 기술 발전에 따라 기업 및 산업 전반의 변혁으로 확산한 시기를 가리킨다. 


   디지털 전환(DX)은 디지털 혁신의 하위 개념이다. 한편, 디지털 혁신은 혁신을 대상에 따라 구분한 국가혁신, 기업혁신, R&D 혁신, 대학혁신 등의 하위 개념이다. AI는 디지털 기술 중 하나이므로 AI 전환(AX)은 디지털 전환의 하위 개념이다. 기업 입장에서 AX, DX, 디지털 혁신 등은 모두 초점과 범위, 접근방법 등에서 차이가 있을 뿐, 기업활동을 구성하는 여러 가지 요소를 대상으로 완전히 새롭거나 종전보다 향상된 가치를 창출한다는 목적/목표는 차이가 없다. 디지털 혁신이 디지털 기술만으로 이룩할 수 없는 혁신이듯, AX도 AI만으로 이룩할 수 있는 혁신이 아니다. AI 전환은 급부상한 AI의 중요성과 유용성을 강조한 것이고 디지털 전환(DX)은 디지털 혁신의 성숙 단계를 가리키는 용어인 것이다. AX는 물론 DX는 외부 여건이나 내부 역량 미성숙으로 인해 아직 착수조차 못한 기업도 많은 상태이다. 규모나 산업에 관계없이 기업은 AX나 DX 트렌드를 쫓아가기보다는 긴 호흡으로 점진적, 지속적 디지털 혁신을 모색하는 것이 오히려 합리적이다.  // 


참고문헌

▪ IBM, Digital Transformation-Creating New Business Models where Digital Meets Physical, 2011. 

▪ MIT & Capgemini Consulting, Digital Transformation-Roadmap for Billion Dollar Organizations,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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