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이후 미국, 영국, 우리나라 등은 정부 내부 업무에 대한 행정정보화를 시작했다. 1990년대에 들어서서 인터넷/웹 기술이 확산하면서 정부 부문은 전자정부(e-Government)를, 민간 부문은 전자(상)거래(e-Commerce, e-Business)를 각각 발전시켰다. 우리나라는 정부 내부 업무와 대국민 서비스에 ICT를 도입, 적용해서 온라인화, 스마트화를 지속한 결과 이제 UN, IMD, OECD 등이 인정하는 전자정부 선도국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한편, 2000년대 초/중반부터 에스토니아, 싱가포르 등은 정부 업무와 경제활동, 나아가 국민생활 전반에 적용해서 효율성, 효과성, 효용성 등을 높인 디지털 정부 또는 스마트 국가(Smart Nation)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2010년대 이후 AI, 빅데이터, 클라우드, IoT 등 급속히 발전한 디지털 기술을 산업경제 전반에 적용한 디지털 전환(DX: Digital Transformation)을 정부/공공 부문에 적용하는 것이다. ‘디지털 국가(Digital Nation)’라는 용어도 있는데 이것은 2014년, 에스토니아, 이스라엘, 뉴질랜드, 영국, 대한민국 등 디지털 정부 선도국가 장관들이 정기 협의체로 설립한 D5가 공식적으로 사용한 것이다. D5는 참여국이 늘어나면서 D7, D9으로 발전하였고 2019년 말에 덴마크가 참여하면서 10개국의 협의체(‘D9+’)가 되었다. ‘디지털 국가’는 그 외에도 일부 연구기관/기업의 명칭으로 사용되고 있다. 유사 용어로 디지털 사회, 디지털 플래닛(planet) 등이 있다. 이들은 실체는 조금씩 다르더라도 궁극적 목표나 구성은 큰 차이가 없다.
플랫폼 정부(GaaP: Government as a Platform)는 O’Reilly Media의 창립자로 오픈소스, 웹 2.0 등을 전파한 Tim O’Reilly가 2010년에 발표한 글에 처음 등장한 용어로 ‘국가 차원에서 필요한 여러 가지 서비스의 인프라 역할을 하는 정부’라는 뜻이다. GaaP는 클라우드 서비스가 확산하면서 등장한 ‘X(everything) as a Service’ 즉, ‘무엇이든 서비스로 제공한다’는 아이디어에서 비롯된 개념이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아마존, 구글, MS 등이 클라우드 서비스 시장을 형성하면서 개인이나 기업이 각종 IT 자산을 구매해서 사용하지 않더라도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 빌려 쓰는 방식이 확산하였다. GaaP는 제품을 미리 만들어 놓고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자판기 같은 정부가 아니라 사용자인 국민이 요구하는 바에 따라 그때그때 알맞은 서비스로 만들어서 제공하는 정부를 가리킨다. O’Reilly는 단방향의 폐쇄적 플랫폼이던 ‘웹 1.0’이 개방/참여/공유를 지향하는 ‘웹 2.0’으로 발전한 것처럼, 정부가 미리 만들어 둔 서비스를 국민이 호/불호(好/不好)에 상관없이 선택해야 하는 ‘정부 1.0’은 여러 이해관계자와 긴밀하게 상호작용하면서 진화하는 ‘정부 2.0’이 되어야 한다고 제안한 것이다.
디지털 국가는 전자정부나 디지털 정부를 넘어서 국가 차원의 모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활동을 디지털화하는 과정이며 그 결과물이다. 필자는 ‘디지털 국가’를 ‘일반국민, 기업, 정부, 대학/연구기관 등이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서 일상생활과 업무의 효율을 높이고 긴밀한 상호작용을 통해 모든 국민의 삶의 질과 경제/사회적 가치를 높이는 미래 국가’로 정의할 것이다. 디지털 국가는 국가혁신의 여러 주체와 지원조직을 각각 지원하는 수직적 시스템, 그리고 그것들을 연결, 통합하고 공통적으로 지원하는 수평적 시스템을 포함한다. 계층적으로는 모든 국민이 이용할 디지털 서비스(예: ‘정부 24’)와 이를 제공하기 위한 애플리케이션(예: 주민등록관리, 운전면허관리), 공통구성품의 집합체인 디지털 플랫폼(예: 전자문서등록-저장-관리시스템, 정보보호), 그리고 디지털 인프라(예: 5G 통신망)를 포함한다. ‘스마트 국가’는 디지털 정부를 넘어서 국가 차원의 경제-사회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혁신활동을 자율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디지털 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디지털 국가에 접근하고 있는 나라로 에스토니아와 싱가포르를 꼽을 수 있다. 에스토니아는 구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1991년 이래 국가 차원에서 디지털화를 추진한 결과 이제 X-Road라는 디지털 정부 플랫폼을 해외에 수출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싱가포르는 1980년대 이후 계속된 국가 정보화 노력을 2014년 스마트 국가(Smart Nation) 전략으로 정립해서 행정정보화와 경제 및 사회 전반의 디지털화를 도모하고 있다. ‘디지털’과 ‘스마트’의 차이는 1장에서 정의한 것처럼 디지털 시스템 중에서 자율적인 판단-실행이 가능한 것이 스마트 시스템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지금 우리가 이용하고 있는 거의 모든 시스템은 디지털 시스템일 뿐 스마트 시스템(예: 4등급 이상의 자율주행차)이라 할 수는 없다.
이하, 본 장에서는 에스토니아, 싱가포르, EU/독일 등이 추진하고 있는 디지털 국가 전략과 특징, 추진과정, 서비스 구성, 플랫폼을 포함한 시스템 구조, 강점, 약점 등을 살펴볼 것이다.
에스토니아는 2023년 기준, 인구 130만명, GDP $381억(약 50조원) 정도인 작은 나라지만, 인구의 91%가 정기적으로 인터넷을 사용하는 디지털 강국이다. 디지털 국가시스템을 가리키는 ‘e-에스토니아’는 전자인증(e-ID), 사이버보안, 상호운용성, 전자의료, 전자정부, 스마트 도시와 모빌리티, 기업 지원, 디지털 교육 등 8개 영역에서 3천여 개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e-에스토니아는 AI, 빅데이터, 블록체인 등 신기술을 반영하고 정부뿐만 아니라 민간이 개발한 서비스도 연결하면서 지속 성장, 발전하고 있다. 예를 들면, 2019년에 수립한 국가 AI 전략(‘Kratt’)에 따라 여러 가지 AI 서비스(예: 챗봇 ‘뷰로크라트’, 2021~)도 기민하게 개발, 제공하고 있다. e-에스토니아는 국민이 신고하지 않아도 알아서 처리하는 소위 ‘선제적(proactive) 서비스’를 포함하고 있다. 사업 개시, 출생, 차량구매, 운전면허, 취학, 실업/구직, 결혼(2022. 12.~), 이혼, 장애, 병역, 주소 이전, 퇴임, 사망(예정), 집 건축, 사고 피해, 범죄 피해 등이 거기에 속한다. 예를 들면, 자녀 출생 신고를 하면 그 데이터가 의료보험이나 교육청과 공유되어 자동 관리되는 것이다. 전 국민의 95% 이상이 사용하는 e-Tax 시스템은 세금 신고에 단 3~5분이 걸리고, 신생 기업은 사업자 등록을 하는 데 단 3시간(과거 5일)이 걸린다. 모든 전자 서비스에 디지털 서명이 적용됨에 따라 정부는 매년 GDP의 약 2%에 해당하는 비용을 절감하고 있다. 에스토니아의 그와 같은 디지털 역량은 2022년 UN 전자정부 평가에서 참여도 지수 세계 3위, ITU의 글로벌 사이버보안 지수 3위, 그리고 무엇보다도 20여 개 국가가 데이터 공유 플랫폼인 X-Road를 도입, 활용하고 있는 점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에스토니아 디지털 정부의 성공요인은 크게 2가지 즉, 거버넌스 관리와 기술 아키텍처의 우수성을 꼽을 수 있다. 그 외에 인구와 국토가 작아서 기민하게 정책 수립-실행을 할 수 있고, 인터넷 시대가 열리기 시작한 1991년에 구 소련으로부터 독립했기에 ‘비효율적 기존 정부 시스템(legacy)’이라는 장애물이 없는, 소위 ‘그라운드 제로’ 상태에서 출발한 것이 유리한 여건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뒤집어 보면 ICT 관련 국가 차원 인프라는 오히려 상대적으로 낙후된 상태에서 시작했다는 의미도 된다. 첫 번째 성공요인으로 꼽은 거버넌스 관리의 우수성은 개방성에 입각한 정부-민간 간 역할분담과 긴밀한 협업, 일관성 있는 리더십, 관련 법/제도 등에서 찾을 수 있다. e-에스토니아는 경제통신부(MEAC: Ministry of Economic Affairs and Communication)가 정책을 주도하고 산하 조직인 정보시스템국(RIA: Information System Authority)이 기술개발과 시스템 운영을 주관해 왔다. X-Road는 2000년대 초에 RIA가 개발하기 시작하였고 2015~2018년 중에 핀란드와 공동개발한 후 국제화를 위해 비영리 조직인 NIIS(Nordic Institute for Interoperabilty Solutions)를 설립, 이관하였다. RIA는 2018년 이후, X-Road 기반의 에스토니아 내 플랫폼 생태계를 가리키는 X-Tee의 운영을 주관하고 있다.
민간에서는 ICT 기업들의 협업조직인 ‘ICT 클러스터’가 시스템 개발-운영에 참여하고 있다. 정부 부처 간에는 물론 정부-민간 사이에도 투명한 절차와 제도가 적용되어 긴밀한 협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코로나-19 기간 중에 ‘위기극복 해커톤(Hack The Crisis hackathon)’을 개최해서 민관이 함께 수십 개의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그중에서 물류 트럭 위치 추적, 글로벌 인력 공유 서비스 등을 개발, 활용한 바 있다. 이는 총리/장관 등 최고위 지도자의 디지털 마인드와 역량, 국민들의 스타트업 같은 실험정신 등이 원동력이 된 것이다. 관련 법/제도 중에서 탁월한 것으로 최소 데이터 원칙(Once-only principle)과 고수준의 데이터 보안/보호 조치를 꼽을 수 있다. ‘최소 데이터 원칙’은 ① 2007년 제정된 공중정보법(Public Information Act)에서 동일 데이터를 2개 이상 DB에 유지할 수 없도록 한 원칙, 그리고 ② 2014년 경제활동코드법(Economic Activities Code Act)에서 정부가 하나의 데이터를 국민에게 두 번 입력하도록 요구할 수 없도록 한 원칙을 가리킨다. 2019년에 시행된 개인데이터보호법(PDCA)은 국민이 개인정보를 등록/이용기록조회/이용거부/삭제할 수 있는 권한을 보장하고 데이터보호조사관(DPI)이라는 독립조직을 통해 이를 관리하고 있다.
두 번째 성공요인으로 꼽은 기술 아키텍처의 우수성은 X-Road 플랫폼을 기반으로 분산형 구조, 개방형 표준, 오픈소스, 상호운용성 보장 등의 원칙을 준용하는 점이다. 모든 데이터는 물리적으로는 중앙에 모으는 것이 아니라 생산 장소에 저장, 관리되고 개방형 표준을 통해 논리적으로 서로 연결되는 구조로 설계, 구현된다. 정부나 민간의 서비스는 레지스트리(Registry, 등록저장소)에 개방형 표준(예: WSDL, Web Service Description Language)으로 기술해서 관리되고 API로 호출, 활용할 수 있다. 모든 SW는 원칙적으로 오픈소스로 개발해서 국내는 물론 해외 기관과도 공유한다. 다만, RIA가 제정한 엄격한 상호운용성 규칙에 따라 중복이나 비효율이 최소화되도록 관리하고 있다. 특히, 탁월한 것은 기술구조나 표준에 부합하지 않는 리거시 서비스는 일단 API로 연결, 활용하더라도 시간을 두고 공유 가능한 구성요소를 발라내서 비용과 시간을 줄이는 노력을 계속한다는 점이다.
RIA가 2004년에 처음 제정하고 계속 발전시키고 있는 상호운용성 규정은 EU의 원칙을 준용한 것으로 상호운용성을 ‘서로 다른 조직이 공동의 이익과 합의된 목표 달성을 위해 협업하고자 할 때 각 조직의 비즈니스 프로세스를 지원하는 ICT 시스템을 통해 데이터를 교환함으로써 상호작용할 수 있는 능력’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 규정은 ‘보조성과 비례성’(subsidiarity and proportionality), 사용자 중심, 포용과 접근성, 보안/프라이버시, 다국어 지원, 행정 간소화, 투명성, 정보 보존, 개방성, 재사용, 기술적 중립과 적응성, 효과성/효율성 등 12개 영역에서 총 39개의 요건을 정의하고 있다. ‘보조성’은 이를테면 중앙에서는 지방/하부조직에 만든 시스템을 보조하는 (최소한의) 역할/기능, 예를 들면, 전자 ID, 정보시스템관리시스템(예: RIHA, 카탈로그 관리)만 담당한다는 것이다.
싱가포르는 1965년 말레이시아로부터 독립한 도시 국가로 2021년 기준, 서울특별시 정도 면적에 인구 약 550만명, 1인당 국민소득 약 $73,000인 강소국가이다. 1980년대 말부터 전자정부를 추진한 싱가포르는 국가정보화를 위한 여러 단계의 고도화 계획을 거쳐 2014년 11월, 스마트 국가 전략(Smart Nation Initiative)을 수립하였다. 싱가포르의 스마트 국가 전략은 전체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새로운 경제적 기회를 창출할 것을 목표로 디지털 정부, 디지털 경제, 디지털 사회 등 3가지 축을 건설하려는 것이다. ‘디지털 정부’는 효율적이면서 사용자 중심인 공공서비스를 제공하고 ‘디지털 경제’는 기업과 국민의 경제활동을 지원하며 ‘디지털 사회’는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과 서비스 자체의 포용성을 높여서 국민의 디지털 역량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싱가포르 ‘스마트 국가’의 우수성은 Cisco의 Digital Readiness Index 2019, Accenture의 GaaP(Government as a Platform) Readiness Index 2018,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 글로벌 정보기술 보고서 2016 등에서 1위를 차지한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싱가포르 ‘스마트 국가’는 교통, 주거/환경, 기업 생산성, 건강/노화 대응, 공공서비스 5가지 영역을 중심으로 아래에 예시한 다양한 디지털 애플리케이션 및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조준혁 등, 2021).
o Singpass(싱패스): 2003년 출시, 인구의 70% 이상 400만명이 사용, 340개 정부/민간기관이 제공하는 1,400개 이상의 디지털 서비스에 적용.
o MyInfo: 개인정보를 온라인 양식에 제출하는 것으로 'Tell Us Once'라고 함.
o PayNow: 내국인의 70% 이상이 사용하는 전자결제 시스템.
o SimplyGo: 비접촉식 요금 지급 시스템으로 교통카드, 신용카드, 스마트 기기로 사용할 수 있음.
o LifeSG: 국민의 ‘Moments of Life’ 지원 (예) 출생 등록, 육아 조언, 취업 지원, 비즈니스, 고용, 의료, 주거, 재산, 국민연금, 공공주택 자격확인 등.
o Parents Gateway: 학교-가정 원스톱 포털.
o OpenCerts: 교육 증명서 발급 및 검증 (블록체인 기반).
o 국가센서플랫폼(SNSP): 대중교통, 공공보안, 스마트 주차장/쓰레기통/가로등에 적용한 센서 네트워크.
o Parking@HDB: 스마트 주차장 (주차, 결제 가능).
o Bigbelly bins: 태양광 패널 스마트 쓰레기통 (미국 제품인 '빅벨리' 도입).
o Lamppost as a Platform (LaaP): 스마트 가로등 (환경 측정과 보안관제에 활용).
o 스마트 도심 모빌리티(Urban Mobility): 대중교통, 자율주행 무인차량 등 이용.
o Aptiv (구 NuTonomy, 2016~): 자율주행 택시.
o Self-driving Bus: 자율주행 셔틀버스(평균 서비스 만족도 4.55/5.0), 난양공대와 싱가포르국립대 등 협업.
o Auto Rider(~2015): 가든바이더베이 지역 내 자율주행 셔틀버스, 아시아 최초.
싱가포르 ‘스마트 국가’의 성공요인으로 관리 측면에서는 정부의 강력한 리더십과 민간 부문의 협력과 참여, 기술 측면에서는 CODEX 플랫폼을 통해 효과적으로 데이터를 공유하고 다양한 정보시스템을 연결, 통합한 점을 꼽을 수 있다. 우선, 관리 측면에서 싱가포르 정부는 스마트 국가 관련 정책 수립과 집행 책임 및 권한의 명확하게 설정하기 위해 관련 기관을 재편성, 통합하였다. 2017년 5월, 최상위 조직으로 총리실 산하에 디지털 정부 그룹(SNDGG: Smart Nation and Digital Government Group)을 설치하고 PMO인 SNDGO(~ Office)는 총리실, 재무부, 통신정보부의 파견 인력으로 구성하였으며 정책의 집행과 시스템 구현을 담당할 GovTech(기술청)를 설치하였다. GovTech은 3천여 명의 직원(개발자 700여명 포함)을 가진 조직이며 민간 기업(BCG, Citi, EY 등 컨설팅 회사, World Bank 등 포함)의 전문가도 참여하고 있다. 스마트 국가 전략 자체는 정부가 주도하지만, 여러 가지 형태로 기업은 물론 일반국민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예를 들면, 글로벌 기업에서 일하는 자국민을 3~6개월 동안 정부 프로그램에 참여시키는 Smart Nation Fellowship, 전문인력 양성을 위한 Smart Nation Scholarship, 대학과 공동 개최하는 해커톤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고 있다.
CODEX(Core Operations Development Environment and eXchange)는 각종 디지털 서비스를 더 빠르고, 더 잘, 그리고 비용 대 효과가 높게 만들고 정부/공공과 민간 부문의 데이터와 시스템을 연결해 주는 디지털 플랫폼이다. CODEX는 에스토니와 X-Road와 달리 이질적 데이터와 인프라를 연결하는 것뿐 아니라 시스템 개발 과정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공통구성품과 개발/지원 도구도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플랫폼이다. CODEX는 ① 각종 서비스/애플리케이션, ② 기술 스택(Tech. Stack), ③ 데이터 등의 계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술 스택’은 재사용 가능한 공통 서비스(예: e-ID를 포함한 인증, 알림, 결제), SW 서비스(예: API 게이트웨이, 데이터 분석을 포함한 개발지원 도구 등, PaaS에 해당함), IaaS(상용 클라우드 활용) 등을 포함한다. 데이터 계층은 정부가 정의한 데이터 아키텍처 표준과 데이터 교환 형식을 포함한다. 데이터는 물리적으로 통합된 DB가 아니라 분산 DB로 구축, 운영되므로 기관 간에 CODEX 기술 스택에 포함된 PaaS를 통해 교환/공유하게 된다. 독립적으로 개발된 시스템/서비스는 공통 표준과 API를 통해 연동된다. 개발팀은 서비스 제공에 투입되는 시간과 비용을 줄이기 위해 모노리식(monolithic) 구조인 기존 시스템을 지속적으로 재사용 및 공유 가능한 마이크로 서비스 구조의 빌딩 블록으로 전환하고 있다.
독일이 시작해서 EU 과제로 추진하고 있는 GAIA-X는 에스토니아 전자정부나 싱가포르 스마트 국가와는 착수 동기, 거버넌스, 접근방식 등이 약간 다르지만,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그것을 모든 국민이 누릴 수 있도록 한다는 궁극적 목표는 큰 차이가 없다. GAIA-X는 독일/EU는 미국과 달리 글로벌 경쟁력을 가진 EU 내 플랫폼 기업이 없는 상황에서 자국 산업과 시장, 나아가 국민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대응책으로 시작된 것이다. GAIA-X는 2019년 독일 연방 경제에너지부(BMWI) Peter Altmaier 장관이 제안한 것을 동년 10월에 정부가 공식 발표하면서 시작되었다. GAIA-X의 목표는 독일/EU의 ‘데이터 자주권 확보’와 ‘데이터 경제 활성화’를 위해 EU 전용 클라우드 서비스를 구축하고 독자적인 혁신생태계를 조성하는 데 있다. GAIA-X는 2021년, 비영리 단체인 AISBL 협회 (Gaia-X Association for Data and Cloud)가 설립되면서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했고 기술개발, 시범사업, 표준화 등이 진행 중이다. 독일/EU 정부는 ‘데이터 스페이스’ 구축, 플랫폼 기술개발 등 R&D 사업을 통해 GAIA-X를 지원하고 있다. GAIA-X 산출물은 데이터 스페이스 사업에 포함된 여러 가지 등대(lighthouse) 프로젝트 즉, EuPro Gigant(스마트 제조), Catena-X(자동차 공급망), AgDataHub(농업), Smart Connected Supplier Network(전자산업공급망), Mobility, EONA-X(모빌리티, 운송/관광), Structura-X(클라우드 서비스) 등에 적용될 예정이다.
GAIA-X는 앞에서 소개한 에스토니아나 싱가포르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늦게 시작되었지만, 매우 높은 이상과 목표를 갖고 있기에 극복해야 할 관리 및 기술 측면의 해결과제가 상당히 많다. ‘시작이 늦었다’는 것은 이질성, 분산성, 자주성 등이 훨씬 더 큰 상태라는 것을 의미한다. GAIA-X는 10가지 핵심가치 즉, 개방, 투명, 자주, 공정, 독립, 포괄, 자유, 연합, 혁신, 진화 등을 추구한다. EU 데이터 스페이스 사업은 7가지 원칙 즉, 유럽 가치 기반의 데이터 보호, 개방성과 투명성, 진실성과 신뢰, 디지털 주권과 자기 결정, 자유시장 접근과 유럽 가치 창출, 모듈화 및 상호운용성, 사용자 친화성 등을 추구한다. 위와 같은 가치를 확보하기 위한 독특한 장치 중 하나로 모든 서비스에 라벨(label)을 붙이고 이를 관리하는 것이다. ‘라벨’은 서비스 제공자가 붙인 데이터 자체의 속성에 검증기관(즉, GAIA-X 협회)이 분산된 합의를 통해 검증, 확인한 후 평가한 등급을 덧붙인 것이다. 이와 같은 제도적 장치를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적합한 알고리즘과 SW가 기술 스택과 서비스에 포함되어야 한다.
관리 측면의 해결과제는 한 마디로 상이한 이해관계를 가진 여러 회원사를 공동의 이익을 위해 긴밀하게 협력하도록 만드는 거버넌스를 조기에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AISBL 협회는 2022년 10월 기준, 357개 기업(75%는 민간기업, 그중 50%는 중소기업)이 회원사로 참여하고 있다. 회원사는 EU 기업, EU 내에서 활동하는 해외기업, 타 지역 기업/기관 등이 참여하고 있다. 회원사는 특성에 따라 전통산업의 수요기업(예: 도이체방크, 폭스바겐, 미쓰비시, 한국 스마트제조추진단), 기술/공급 기업(예: SAP, 지멘스, 캡제미니 SE, 시스코 시스템즈, 아마존 유럽), 공공/민간 연구소(예: 프라운호퍼, VTT)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컨설팅 회사인 아서 앤더슨은 회원사로 참여하고 있는 글로벌 플랫폼 기업(예: IBM, 아마존, MS)의 영향력이 큰 상태이며 컨트롤 타워의 리더십이 부족하기에 정부 참여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ONI & BCG, 2020).
GAIA-X는 기술 측면에서도 쉽지 않은 해결과제를 갖고 있다. 에스토니아 디지털 정부의 안정성과 확장성은 정부 주도로 구축한 데이터 공유 플랫폼인 X-Road에서 비롯된다. GAIA-X는 그와 같은 디지털 플랫폼의 설계-구현이 완료되지 않은 상태에서 여러 가지 디지털 서비스가 병행, 개발되고 있다. GAIA-X의 기술 아키텍처는 2023년 현재 개념 설계 단계에 이르고 있으며 몇 가지 기술개발 과제가 진행 중이다. GAIA-X 기술 아키텍처에 대한 최근 공식 문서인 v.22.10(2022년 발표)에는 기술 특성과 구현 기준만 정의되어 있다. GAIA-X를 지원할 플랫폼 기술개발 과제 중 하나인 GXFS(GAIA-X Federation Service, 2020. 9.~2023. 12.)는 데이터 공유를 위한 표준 인터페이스를 개발하려는 것으로 독일 정부가 15백만 유로를 지원하고 있다. 또 하나의 프로젝트인 iECO(2021. 1.~2023. 12.)는 데이터 신뢰성을 보장하기 위한 인증/검증 기술을 개발하려는 것으로 건설산업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정부가 12백만 유로를 지원하고 있다. Software AG사에 의하면 GXFS v.1은 아직은 GAIA-X 아키텍처의 모든 요구사항을 반영하지 못한 상태이며 특정 기술구조에 편향되어 있어서 이미 진행 중인 여러 가지 데이터 스페이스 프로젝트에는 적용하기 어렵다고 한다. 또한, 제조업의 데이터 스페이스 구축을 목표로 한 EUProGigant(2022. 3.~2025. 2., 5백만 유로)에 적용한 결과, 시스템 배포(deployment) 과정이 지나치게 복잡해서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 또한 상당한 시간/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에스토니아는 1990년대 초 독립 이후 정부 주도로 집중적인 투자를 해왔고 20여 년이 지난 지금, 세계 최고 수준의 디지털 전환을 이룩하였다. 싱가포르도 1980년대 말에 시작한 전자정부를 2014년에 정부, 경제, 사회 전반을 디지털화하는 목표로 재정립해서 이제 세계 최고 수준의 디지털 국가가 되었다. 두 나라의 공통적인 성공요인은 정부 지도층의 일관되고 탁월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민관이 협력해서 데이터 공유와 서비스 통합을 위한 플랫폼을 먼저 개발하고 이를 기반으로 분산성, 이질성, 자주성을 가진 정부와 민간의 다양한 서비스를 연결, 통합한 데 있다. 민간이 주도하고 있는 독일/EU의 GAIA-X는 새로이 요구되는 기능/서비스를 추가하는 작업과 리거시 시스템을 연결, 통합하는 작업을 병행하다 보니 시간/비용면에서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한다. 이와 같은 문제는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공통의 이익을 위해 협업할 수 있도록 만드는 리더십이 뒷받침되어야 극복할 수 있다.
ONI & BCG(2020)는 개방형 디지털 환경(ODE: Open Digital Environment) 연구의 일환으로 에스토니아와 싱가포르 사례를 분석한 바 있다. 에스토니아 디지털 정부의 우수한 점으로는 X-Road가 견지해 온 개발/관리 원칙 즉, 첫째 공공과 민간의 여러 시스템을 연결, 통합할 수 있는 개방적이며 상호운용 가능한 구조, 둘째 재사용 및 공유 가능한 컴포넌트 활용, 셋째 데이터 교환 과정에서 프라이버시와 기밀 유지 보장, 넷째 애자일(agile) 개발방법론 적용, 다섯째 다수의 공공/민간 조직 참여를 통한 공동창조(co-creation), 여섯째 혁신가들의 협업 네트워크 육성 등을 꼽았다. 실제로 X-Road 플랫폼은 e-에스토니아가 분산성, 상호운용성, 무결성, 투명성을 보장하는 기술 기반이 되고 있다. 논리적 연결, 통합을 쉽고 안전하게 구현할 수 있기에 굳이 공유 가능한 타 부처/기관의 데이터/서비스를 중복해서 개발하거나 보유할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최소 데이터 원칙(Once-only principle)’을 법률로 규정해서 국민이 데이터를 이중으로 입력하거나 정부가 중복해서 보유하지 않도록 하며, 데이터에 대한 모든 접근기록을 투명하게 관리한 것도 탁월한 점이다. 그와 같은 기술/제도를 기반으로 정부뿐만 아니라 민간기업이나 개인도 새로운 서비스 개발에 참여하게 되어 디지털 정부 구현에 필요한 인력/예산, 기간 등을 줄일 수 있었다.
싱가포르가 2014년에 수립한 ‘스마트 국가’는 디지털화 범위를 정부를 넘어서 국가 차원으로 확장함으로써 더 큰 문제를, 더 크고 넓은 시각에서 해결하면서 인력/예산, 시간 등을 효과적으로 활용한 전략이라 할 수 있다. 기술 측면에서는 싱가포르도 공유 가능한 빌딩 블록을 ‘기술 스택’에 포함하고 이를 정부와 민간이 함께 표준으로 제정, 관리함으로써 상호운용성을 높인 것이 성공요인이다. 거버넌스 측면에서는 스마트 국가라는 큰 문제를 특정 부처가 아니라 여러 부처에 산재해 있는 기능과 전문성을 하나로 모은 일종의 cross-functional 조직을 통해 일관성 있는 정책을 수립, 추진한 것이 성공요인이다.
두 나라 모두 개방적이고 투명한 정책 운영을 통해 기업과 국민 참여를 높인 것이 또 다른 공통점이다. 두 나라는 우리나라나 미국, 영국에 비하면 규모가 작은 국가이기에 관련 정부 조직을 통합하는 것이 용이했을 것이다. 국가 규모가 크고 복잡한 이해관계를 가진 국가로서는 상대적으로 어려운 과업이겠지만,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비효율과 낭비는 피할 수 없게 된다. 중요한 것은 기술 측면에서는 물리적 집적이 아니라 논리적 연결/통합을 이룩하고 관리체제는 물리적 집적을 넘어서 진정한 ‘원팀’을 이룰 수 있는 리더십과 절차를 마련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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