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IR 4.6] 4차 산업혁명과 경제/사회 변화
농/축산/임업/수산업은 오랜동안 농촌, 산촌, 어촌 등지에서 채집이나 재배를 통해 인간생활에 필요한 식품을 공급하는 1차 산업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그러던 것이 식품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공산품 내지 생활용품의 원료/재료를 생산하거나 식품을 소비자가 직접 먹을 수 있는 상태/형태로 가공하는 2차 산업, 농식품과 가공품을 유통하는 3차 산업을 모두 포함하는 소위 ‘6차 산업’으로 발전되고 왔다. 이하에서는 대표 산업인 농업과 그 활동 영역인 농촌을 중심으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어떤 변화가 필요할지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우선 농업은 2차 산업혁명 즉, 생산의 기계화가 시작되면서 경제활동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급격하게 줄어들었고, 3차 산업혁명 즉, 지식/정보가 중요한 생산요소가 되고 서비스업의 비중이 커지면서 더더욱 그 역할이 축소되었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 경우, GDP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5.5%(1995년)에서 2.3%(2012년)로, 농가 인구는 306만 명(2010년)에서 253만 명(2017년)으로 줄어들었다. 이는 세계적으로 비슷한 현상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농산품 수출국인 네덜란드는 상대적으로 적은 농업 인구로도 국가 GDP와 고용의 10% 정도를 기여하고 있는 것과 비교한다면, 전략이나 실행방법 상의 차이가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농업/농촌 경우, 더욱더 심각한 것은 식량자급률이 23.6%(2012년)에 불과해서 스위스 205.6%, 미국 129.4%, 일본 30.7% 등에 비하면 말 그대로 식량 안보를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농촌은 빠르게 고령화되고 있고 도시와의 소득 격차가 커지고 있어서 삶의 질도 저하되고 있다(이상 참조: 김상철, 2014; 김종선, 2014).
한편, 농촌은 기본적으로 사회적(예: 정서적 안정), 문화적(예: 전통문화 보존), 환경적(예: 친환경, 생물다양성), 경제적(예: 균형발전)으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가진 공간이다. 농촌은 인류가 해결해야 할 거대 문제, 즉, 식량/에너지/물(FEW: Food, Energy, Water) 부족이라든지, 기후변화, 인구증가와 고령화, 도시화 등의 난제를 풀거나 완화해 줄 수 있는 기회 공간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외국에서는 농업, 특히 농화학과 종자산업에 대한 투자가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으며, 세계적 일간지인 포브스(Forbes)는 미래 6대 유망산업 중 하나로 농업을 꼽기도 하였다. 세계적 투자가인 짐 로저스도 농업의 미래를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한 마디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경쟁력을 높이려는 노력 못지않게 농업/농촌을 통해 미래에 예상되는 기회를 포착하려는 국가 차원의 관심과 투자가 절실한 것이다.
농업 전문가들은 농업 혁신을 위한 패러다임의 변화 필요성을 역설해 왔다. 예를 들면, 경험기반 재배기술은 정보기반 재배기술로, 나아가 스마트 농업으로 발전되어야 하며, 기계화 농업은 자동화/로봇화 단계를 넘어 지속가능한 정밀농업으로 발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과거, 농부의 감각과 경험에 의존해서 고수량 생산을 목표로 노지재배를 하던 방식은 센서와 정보에 입각해서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는 시설재배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이상, 출처: 김상철, 2014). 이와 같은 문제 인식에 따라 지난 10여 년 동안 정부/연구기관/농촌은 ICT 융/복합을 통한 스마트 농업 건설과 농업의 6차 산업화를 중점 추진해 왔다. 스마트 농업은 농산품의 생산-유통-소비 과정에 센서(예: GIS/GPS 등 위치 센서, RFID 같은 개체식별 센서), 유/무선 통신망, 데이터베이스, 판단/제어용 SW, ERP, SCM, SNS 등의 ICT를 결합하는 방식이다. 그 결과, 식물공장 또는 스마트팜, 농수산물 이력추적 시스템, 직거래를 위한 전자장터와 전자경매 등이 구축, 운영되었다. 6차 산업화 측면에서는 화천 산천어 축제나 함평 나비축제와 같은 지역별 축제와 농촌 체험관광 등이 확산되었다.
식물공장(Plant Factory)은 1950년대 유럽에서 시작되어 미국, 일본, 우리나라 등에 확산된 것으로 생육환경(예: 빛, 공기, 열, 양분)을 인공적으로 제어함으로써 농작물을 포함한 생물을 공산품처럼 계획생산할 수 있도록 만든 시설물을 가리킨다. 이것은 고효율 에너지소재(예: LED 인공조명, 태양열 등), 환경/공정 제어(예: 지능형 로봇, 실내환경/전력/에너지 감지), 식품/바이오(예: 영양성분, 특용작물, 항생제, 바이오 에너지), 마케팅-조달-생산-판매-서비스 등 다양한 전/후방 산업이 연결되는 융합산업이다. 정밀농업(Precision Agriculture)은 1980년대 밭농사 중심인 유럽에서 연구가 시작된 후, 관련 기술이 발전됨에 따라 1990년대 중반 이후 실제 적용된 농업 방식이다. 이것은 토양, 수량(水量), 잡초, 병해충 등의 상태를 지도정보로 만들어 두고, 사전에 설정된 기준 살포량 이하의 비료와 농약만을 이용해서 생산성과 경제성을 높이고 환경도 보호하는 방식이다. 여기에는 센싱, GPS 같은 원격탐사(remote sensing)와 지리정보처리(GIS), 의사결정 지원, 정밀농업용 포장기계 등 기술이 활용된다.
지난 글에서 소개했던 스마트 제조나 스마트 서비스처럼 농업/농촌에도 AI와 ICBM은 물론, 고수준 센서(예: 레이더, 라이다, 고성능 카메라), 무선센서통신, 비정형 DB, 로봇, 드론, 인공위성 등을 활용한 스마트 생산-유통-소비가 추진되고 있다. 레이더는 전자파를 이용해서 관측 대상 개체의 위치나 상태를 인식하는 반면, 라이다는 빛(예: 레이저)을 이용해서 그와 같은 임무를 수행하는 것으로 카메라와 함께 상호 보완적 역할을 하게 된다. 대표적 스마트 생산 기법인 예측(또는 처방)농업(Prescriptive Farming)은 관찰-처방-실행(농작업)-결과분석 등 4단계를 거친다. ‘관찰’은 센서로부터 수집된 농경지 데이터로 기초정보를 만드는 단계, ‘처방’은 센서 수집 데이터와 기존 DB의 데이터를 AI 같은 지능형 SW에 입력해서 농약/비료의 알맞은 양을 결정하는 단계이다. ‘실행(농작업)’은 계산된 만큼의 농자재나 비료를 투입하는 단계이고, ‘결과분석’은 계산된 결과와 실제 수확량을 비교해서 실행 방법을 수정, 보완하는 단계이다.
많은 해외 선도기업들이 위와 같은 예측농업을 실현하고 있다. 예를 들면 센싱과 모니터링 영역에서 존디어(John Deere)사는 트랙터의 첨단 센서로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를 농장정보시스템을 통해 장비와 연동시키고 있으며, 후지쯔가 구축한 아키사이(Akisai) 플랫폼은 각종 작물의 생육사진을 클라우드 수집, 관리, 제공하고 있고, 프랑스 에어리노브(Airinov)사는 광학탐지장비를 장착한 드론과 센서로 정밀농업을 지원하고 있다. 분석/기획 영역에서 몬산토는 빅데이터 기반의 정밀/처방농업 솔루션인 필드스크립트(Field Script)를 제공하고, 2014년에 몬산토에 인수된 클라이미트(Climate)사는 250만 지역의 기후정보를 분석해서 농업기업과 보험회사의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솔루션인 필드뷰(FieldView)를 제공하고 있다. 농작업 수행 영역에서 2017년 존디어가 인수한 블루리버(Blue River)사는 레티스봇(LettuceBot)(참고: 동영상)이라는 잡초제거로봇을 개발-판매하였다. 이 로봇은 1분 동안 5천 장의 사진을 촬영한 후 실시간 수준에서 상추와 잡초를 구분해서 잡초만 제거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이상 참조: 이주량, 2017).
스마트 유통의 예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지역에서 운영되는 스마트 푸드 그리드(Smart Food Grid)는 소비자의 스마트폰과 상품의 QR코드를 활용해서 농산물 생산자와 소비자를 실시간으로 연결해 준다. 적용 결과, 수요-공급의 불일치('미싱링크')가 줄어들었고 수집된 농산물 소비 빅데이터를 분석해서 자동 주문과 수/배송을 실시함에 따라 30% 이상의 부가가치가 창출되었다고 한다. 축산업에서도 여러 가지 디지털 신기술을 활용한 혁신이 이루어지고 있다. 예를 들면, 네덜란드 렐리(Lely)사는 아스트로넛(Astronaut)이라는 자동착유시스템으로 세계 시장의 70%를 점유하고 있다. 임업에서도 IoT를 이용해서 묘목의 최적 생육환경을 조성한다든지 수확자동화, 가지치기 로봇 활용, AI가 적용된 자율주행차량 운행, 라이다를 이용한 나무의 높이나 폭 측정, 드론을 이용한 산불 모니터링과 방제 등이 진행되고 있다.
기술 측면에서 볼 때, 농업/농촌의 혁신은 디지털 기술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즉, 바이오기술(BT)이나 나노기술(NT)과의 기술융합과 더불어 비기술혁신 영역인 마케팅이나 조직구조와 조직문화 등에 대한 혁신도 필요하다. 농업과 BT 융합기술의 예로 바이오매스(biomass, 생물연료)가 있다. 바이오매스는 ‘태양 에너지를 받아 유기물을 합성하는 식물체와 이들을 식량으로 하는 동물, 미생물 등의 생물유기체 즉, 화학적 에너지로 이용되는 생물’을 가리킨다(출처: 위키백과). 임목(예: 나무조각), 농업 부산물(예: 볏짚, 옥수수대), 축산 폐기물(예: 분뇨), 도시 폐기물(예: 폐수 슬러지) 등이 바이오매스에 해당된다. 바이오매스는 건물 난방이나 자동차 연료 같은 바이오 에너지로, 또 친환경 소재인 생분해성 플라스틱을 만드는 데 활용된다. 농업과 NT 융합기술의 예로 고기능성 신소재인 나노 셀룰로오스(Nano-cellulose)가 있다. 이것은 식물 세포벽의 주성분인 섬유질(즉, 셀룰로오스)에 기계적 또는 화학적 처리를 가해서 만들어 낸 천연 고분자 소재로서 높은 투명성, 재생 가능성, 생분해성, 생체적 안정성, 높은 열 안정성, 용이한 성형성 등의 장점을 갖고 있다. 나노 셀룰로오스는 공기 투과도가 낮고, 기계적으로 안정적이며 투명하기에 식용 또는 의약용 포장재료로 활용된다. 또한, 열팽창 계수가 낮고 강도는 높기 때문에 리튬이온 전지용 분리막, 디스플레이, 태양전지, 전자종이, 센서 등에 활용된다(참조: 조진우 등, 2017).
4차 산업혁명과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전도사격인 세계경제포럼(WEF)은 농업/농촌을 혁신하기 위한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WEF의 농업 혁신 프로그램은 포용성(inclusivity),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 효율성, 영양과 건강 등 4가지 가치의 실현을 목표로 두 가지 전략 즉, 식량 소비 개선과 식량 생산-유통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식량 소비개선 측면에서는 (1) 대체 단백질 개발을 통해 CO2 감축(9.5억톤), 물 소비 절감(4천억 입방미터), 토지 활용 확대(4억 ha) 등을 도모하고, (2) 식품 센싱기술 개발을 통해 안전, 품질, 추적성 등을 향상함으로써 식량 손실 감소(2천만톤), (3) 영양게놈학(Nutrigenetics) 연구, 적용을 통해 개인화된 섭생이 가능하도록 함으로써 비만 인구 감소(5.5천만명)를 실현하려는 것이다. 식량 생산-유통 개선 측면에서는 (1) 스마트 유통을 통해 농민 소득 증대(2천억불), 온실가스 배출 감소(100 메가톤), 물 소비 감소(1천억 입방미터), (2)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농가 소득 증대(700억불), 농산품 생산 증가(1.5억톤), (3) IoT 적용을 통해 투명성과 추적성을 향상함으로써 식량 손실 감소(3.5천만톤), (4) 블록체인을 적용해서 추적성을 높임으로써 식량 손실 감소(3천만톤) 등을 실현하고자 한다(출처: WEF, 2018). WEF의 이와 같은 프로그램에는 AI, VR/AR, 에너지 기술, 유전자 편집 기술, 바이오 농약, 자율주행차/드론, 로봇, 3D 프린팅, NT 등이 활용된다.
농업혁신은 위와 같은 기술혁신뿐만 아니라 마케팅 혁신과 조직혁신이 필수적이다. 마케팅혁신은 한 마디로 기존의 복잡다단한 유통구조를 혁신함으로써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산업으로 되도록 하는 작업이다. 조직혁신은 농가(기업), 농부, 농지 등에 대한 종합적 혁신 작업이다. 예를 들면, 네덜란드 경우, 농지와 경영방식 측면에서 영세한 개인농을 기업농으로 전환하기 위해 30여 년 동안 이해관계자가 함께 논의하고 결국 합의에 이르는 농지개혁에 성공했으며, 정부와 학계/연구계, 그리고 농민이 긴밀한 협력을 통해 지금의 성공적 농업/농촌을 이루었다고 한다(출처: 강호진, 2018). 우리나라는 개인농과 기업농의 비율이 30:70 정도이며, 농가당 경지면적이 매우 협소한 수준이어서 영세성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외부자 시각에서 보면, 농업 관련 정부/지자체/공공기관, 농협을 포함한 각종 단체/협회, 대학/연구소 등은 타 학문/지식산업의 기술과 경험을 받아들여서 내부 혁신에 적극 활용하는 데는 여전히 폐쇄적인 상태인 것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