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IR 4.7] 4차 산업혁명과 경제/사회 변화
4차 산업혁명(4IR)은 디지털 기술, 바이오기술(BT), 나노기술(NT) 등을 포함한 다양한 자연과학/공학, 사회과학, 인문학, 문화예술 등의 기술융합에서 비롯된다. 그 결과, 전통 제조업, 서비스업, 농축산임업 등의 경계가 무너지고 신산업이 등장하는 산업융합이 확대되어 의식주, 건강, 레저, 교육, 소통, 재정 등 개인생활도 크게 바뀌게 될 것이다. 예상되는 수없이 많은 변화 중에서 몇 가지만 예를 든다면, 의생활 측면에서는 체온 조절, 몸 상태 모니터링, 외부와의 통신 등이 가능한 옷을 입게 될 것이다. 식생활 측면에서는 물이나 에너지 소비를 줄인 가운데 충분한 영양분을 갖고 있으면서도 저가격인 식품을 먹고, 주생활 측면에서는 에너지를 자급자족하고 필요에 따라 다른 주택/건물과 소통하는 가운데 공동체의 안전이 보장되는 주택에서 살게 될 것이다.
사물인터넷(IoT)의 확산에 따라 개인이 가정과 직장에서 이용하는 모든 기기들이 늘 연결되어 있기에 언제, 어디서나 그것들을 조작하고 관리하는 일도 가능해진다. 5G 내지 차세대 정보통신망 덕분에 시/공간을 초월한 의사소통이 가능해지고, 각종 이동수단(예: 개인용 비행기, 자율주행 드론)이 발달함에 따라 직장과 가정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지며, 가족을 포함한 인간관계, 집이나 사무실 공간, 출/퇴근 등의 개념이 달라질 것이다. 의료는 유전공학 발달에 따라 질병의 사후 치료가 아닌 사전 예방 및 관리로 개념 자체가 달라질 것이고, 의학, 생물학, 화학, 기계/전자공학 등 기술융합에 힘입어서 인간의 장기나 사지에 선천적 장애가 있거나 사고로 인한 손상이 생겼더라도 그것을 인공 장기/기관으로 부작용 없이 교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인공 장기/조직은 여러 대학과 기업에서 연구개발 중이며 눈, 심장, 허파, 간, 신장, 팔/다리 등은 머지않아 상업화 수준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위와 같은 특정 기술의 개발과 보급 속도는 R&D 역량, 혁신적 기업가의 등장, 시장/소비자의 수용, 개인/기업의 투자, 정부 정책, 국가/사회 차원의 거버넌스 등의 유효성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AI 경우를 살펴보자. 1950년대 중반에 연구가 시작된 AI는 2000년대 중반까지 50여 년 동안 미국, 유럽, 일본 등 국가에서 정부지원과 산업체 활용이 늘어났다가 줄어듦에 따라 두 차례의 침체기(‘AI Winter’)를 겪은 바 있다. 2006년 캐나다 토론토 대학의 제프리 힌튼 교수가 심층신경망(Deep Neural Network)을 통해 딥러닝을 부활시켰고 그 후, 구글, 애플, IBM, 아마존, 페이스북 등 미국 기업, 그리고 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 등 중국 기업이 집중 투자함에 따라 AI 전성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정부 정책이나 사회적 거버넌스가 매우 중요한 유전자 편집 기술 경우를 살펴보자. 이 기술은 인류를 긍정적 의미의 신인류로 도약하게 만들 수도 있고 반대로 패망의 길로 이끌 수도 있는 기술로 평가되고 되고 있다. 이 기술에 대해 미국, 유럽 등은 정부와 학계가 공동으로 ‘연구는 허용하되 임상시험이나 적용은 규제하는 방침’을 견지하고 있다. 우리나라처럼, 연구조차 허용하지 않는다면 기술 자체를 발전시킬 수 없음은 물론, 예상되는 기술의 역기능에 대한 대비도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반면, 중국은 정부나 학계의 규제가 상대적으로 약한 상태이어서 2018년에는 국제 사회가 우려하는 연구 결과가 발표된 적도 있다.
WEF(2016)는 2025년까지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여러 개의 사건들을 예시한 바 있는데 그중에는 다음과 같은 개인생활 변화가 포함되어 있다. 즉, 10년 이내에 대부분의 시민이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인터넷에 연결 가능한 가운데 개인 식별용 디지털 ID를 갖게 되고, 필요한 대부분의 서비스를 스마트폰을 통해 수행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에 연결된 의류나 안경을 착용하고, 클라우드에 있는 무료 데이터 저장소를 활용하며, 약사나 기업의 이사 같은 중요한 직무를 로봇이 대신하고, 사람들은 자가용보다 카셰어링을 더 많이 이용하며, 3D 프린터로 찍어 낸 인공 간을 이식하는 일도 가능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런 예상들은 특정 사건이 예상보다 빠르게 나타날 것인가 아니면 늦어질 것인가 하는 점에서는 오차가 있겠지만, 실현 자체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AI는 여러 산업에 도입, 적용되어 개인생활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예를 들면, 애플의 시리(Siri, 2011), 아마존의 알렉사(Alexa, 2014), 마이크로소프트 코타나(Cortana, 2014), 구글 어시스턴트(Assistant, 2016) 등 AI 엔진(또는 플랫폼)은 각종 전자/기계 제품에 내장되어 지능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실제로 아마존 에코, 구글 홈과 SK텔레컴의 누구, KT의 기가지니, 네이버의 웨이브, 카카오의 카카오미니 등 AI 스피커는 음악감상, 각종 정보검색, 가전기기 제어 등에 이용되고 있다. 아마존 알렉사는 ‘연결 가능한 서비스’를 의미하는 스킬(Skill)의 숫자가 2018년 초에 약 26,000개이던 것이 연말에는 두 배가 넘는 약 57,000개에 이를 정도로 응용이 확대되고 있다. 그 외에도 IBM의 딥블루(1997, 체스), IBM 왓슨(2011, 퀴즈풀이), 구글 딥마인드의 알파고(2016, 바둑)처럼 체스, 바둑 등 특정 문제에서는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고 있다. 구글은 바둑에 국한되었던 알파고리(2016)와 알파고제로(2017. 10.)에 이어 알파제로(2017. 12.)를 개발함으로써 인공일반지능(AGI: Artificial General Interface) 실현 가능성에 접근하고 있다. 알파제로는 강화학습 방식을 적용했기에 문제를 푸는 규칙만 알려 주면 스스로 해결 능력을 갖추게 된다. 페이스북은 2014년 AI 기반 얼굴인식 프로그램인 딥페이스(Deep Face)를 통해 사진 등록 추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로컬모터스는 2016년 IBM 왓슨을 장착한 자율주행 셔틀버스인 올리(Olli)를 특정 지역 내 교통수단으로 제공하였다. AI는 현재 음성/사진/동영상 인식, 질병 진단, 법률 자문, 투자 자문, 고객 응대(챗봇), 개인비서, 공정관리, 자연어 이해, 통역/번역, 기사 작성, 작곡, 그림 그리기, 자율주행, 무인판매 등에 활용되고 있다.
AI뿐만 아니라 여타 디지털 기술도 주변 기술과의 융합을 통해 실용화 속도와 파급력이 커지고 있다. 예를 들면, 사물인터넷(IoT)은 센서와 무선통신기술은 물론, 데이터 발생 장소에서 가까운 곳에 저장/관리할 수 있는 클라우드 기술, 수집된 데이터를 이용해서 각종 업무를 최적화해 주는 AI 등에 힘입어서 활용 범위가 커지고 있다. 기업이 AI와 빅데이터를 활용해서 신약개발 기간과 비용을 절감하게 됨에 따라 개인은 적은 비용으로 효과가 높은 약물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향후, 저비용이면서 내구성과 환경친화성을 가진 자재를 3D 프린팅 소재로 쓸 수 있게 되면 지금보다 훨씬 싼 값으로 주택을 구입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블록체인은 은행을 이용할 수 없었던 난민이나 저개발국가 국민들이 금융 서비스를 받게 해 준다. 드론은 오지/험지에도 의약품을 포함한 구호물자를 신속하게 전달할 수 있게 해 주고, VR/AR은 우리들에게 가상관광, 수술/시술 전 체험, 미지 세계에 대한 학습 등을 제공해 줄 것이다. 각종 웨어러블(wearable) 기기들은 사람-사람 간 연결(예: 착용/삽입된 센서를 통해 몸 상태를 의사에게 전달), 사람-컴퓨터 간 연결(예: 시계, 안경 등을 통해 체온, 박동 등을 파악, 조절), 나아가 인체에 컴퓨터를 삽입/착용하는 방식(예: 몸에 부착한 팔찌를 기록매체로 사용하거나 피부에 삽입한 칩을 인증수단으로 활용)을 통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참조: PSFK, 2014). 스마트 로봇은 제조용, 서비스용 등으로 구분되는데 소니가 개발한 애완견 로봇, 소프트뱅크가 판매하는 서비스 로봇 페퍼(Pepper)는 감성을 이해할 수 있기에 노인이나 어린이의 친구가 되기도 한다.
융합기술(Converging Tech)은 국가별로 약간씩 다르게 정의하고 있는데 미국은 2002년 NBIC 융합전략을 통해 나노, 바이오, 정보기술과 인지과학 등을 결합한 기술을 융합기술로 설정하였다. EU는 2004년에 발표한 융합전략에서 NBIC+ 즉, NBIC에 사회과학, 인문학 등을 추가했고, 우리나라는 2008년 이후, 사실상 모든 과학기술과 지식/학문을 결합한 것을 융합기술로 정의하였다. 이처럼, 2016년에 시작된 4차 산업혁명 논의와 관계없이 2000년대 초반 이후, 융합은 신기술개발 또는 신제품/서비스 개발을 위한 중요한 방법론으로 활용되어 수많은 산출물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2010년대 이후에는 고수준의 융합기술(예: 딥러닝+의료), 융합 제품/서비스(예: 자율주행차량, 예지정비 서비스), 그리고 융합산업(예: 스마트시티, O2O)이 등장하고 있다. R&D 단계에서 융합은 다학제, 학제간, 초학제(Multi-, Inter-, Trans-disciplinary) 접근을 통해 진행된다. ‘다학제’는 특정 문제 해결을 위해 여러 지식/학문이 참여하는 방식이고, ‘학제간’이란 두 개 이상의 지식/학문이 가진 강점을 합친 접근방식이며, ‘초학제’는 처음부터 지식/학문의 구별 없이 문제해결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2000년대에 추진되었던 대표적 융합기술 R&D 과제로 미국의 첨단 방탄복, 재생의학과 EU의 자연어처리, 비만/비대 치료, 지능적 거주공간, 인공손 등이 있다. 이들은 모두 디지털 기술은 물론, BT, NT, 나아가 사회과학, 인문학 등 지식/기술 융합이 필요한 문제들이었다. 예를 들면, ‘자연어처리’ 과제는 EU 회원국 간 언어 장벽 완화/해소를 위해 자동 번역시스템을 개발하기 위한 것으로 인공지능, 센서, 뇌과학, 전자공학 등의 다학제 R&D 과제였다. 유사한 연구 결과물에 의해 오늘날 우리는 모바일 앱을 통해 실시간 통역 서비스를 받으면서 외국인과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비대/비만 치료’ 과제는 유전자학, 생리학, 운동과학, 심리학, 인종/민족학, 광고(예: 인체 노출), 대중문화 등에 대한 전문가들이 참여한 과제로 식품에 나노 소자를 부착해서 식사 습관이나 영양분을 분석하는 식의 애플리케이션이 개발되었다. 유사한 연구 결과물에 의해 오늘날 우리는 웨어러블 기기를 통한 건강 상태 모니터링이나 건강관리 서비스를 받고 있다.
융합기술이 만든 개인생활에 끼친 영향을 몇 가지 더 살펴보기로 한다. 정보기술(IT)과 BT 융합의 예로 인체에 삽입하는 바이오칩, 출입보안을 위한 지문/홍채 인식 장치를 들 수 있으며, IT와 NT 융합의 예로 휘어지는 디스플레이 장치, 장시간 이용 가능한 배터리 등이 있다. 나노소재 중에서 강도와 유연성, 전기/열 전도율 등이 탁월한 그래핀은 디스플레이 장치에, 탄소나노튜브는 배터리 전극 소재에 사용되고 있다. BT와 NT 융합의 예로 약물을 초소형 캡슐에 담아서 인체 내 특정 부위에 전달하는 장치, 합성 피부, 오염제거용 소재 등이 있다. IT와 인지과학(Cognitive Science: CS) 융합의 예로 데이터/정보에 대한 사용자 반응을 측정, 분석해서 몰입도나 반응성을 높일 수 있게 만든 사용자 인터페이스(UI), 멀티미디어를 이용한 학습 등이 있다. BT와 CS 융합의 예로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 NT와 CS 융합의 예로 신경보철 인공물 등이 있다. 종래의 MRI는 장기의 상태를 음영으로 구분되는 이미지로 촬영해서 읽을 수 있도록 한 장치임에 반해, fMRI는 자극에 따라 달라지는 뇌 활동 변화를 측정할 수 있는 장치이다. 랩온어칩(Lab-on-a-Chip)은 하나의 초소형 칩에, 예를 들면, 세균 감염 여부를 측정하기 위한 시료 채취-분석-결과 표시 등을 모두 구현한 장치로 NT, BT, IT 등이 결합된 제품이다. 클라우스 슈밥이 2016년, 2018년 저서를 통해 소개한 이른바 ‘4차 산업혁명 핵심기술’ 즉, 물질계/생명계/디지털 기술, 환경통합기술 등이 모두 융합기술이라는 점에서 보면, ‘4차 산업혁명’은 결국 ‘융합(기술이 촉발하는) 혁명’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