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경제-01
(주) 이 글은 2023년 8월,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SPRi)가 발간하는 월간 'SW중심사회'에 게재한 글 (제목: 플랫폼 상품과 비즈니스 모델 재정립 제안, 첨부 파일 참조)의 전반부를 재편집한 것입니다.
플랫폼의 의미와 일반적 분류
웹스터 사전에 의하면 플랫폼(platform)은 평평하거나 바닥보다 높게 돋워 만든 대(臺), 다수가 수용하는 원리/정책, 의견/정보를 나누는 매체, 뭔가를 덧붙일 수 있는 기반/근거, 공통구성품, 서비스 제공자 등을 가리킨다. 故 이민화(2017)는 플랫폼을 인수분해를 통해 나오는 ‘공약수’에 비유하면서 ‘반복되는 요소를 공유하는 시스템’으로 규정하였다. 자동차 산업에서 엔진과 변속기를 포함한 파워트레인은 HW 플랫폼으로 이를 제조한 회사나 타 회사의 여러 차량 모델에 포함된다. 온라인 쇼핑몰은 다수의 구매자와 판매자에게 제공할 디지털 서비스(예: 거래 상대방 탐색, 구매/판매 조건 비교, 대금 지불/수취 등)를 지원하는 SW 플랫폼(예: 데이터 처리, 프로세스 관리, 정보보호 등)을 내장하고 있다. 반면, 다수의 기술이나 제품/서비스와 공유하는 바가 없는 것은 완성품이지 플랫폼이 아니다. 예를 들면, 특정 용도의 SW 제품이나 SaaS는 플랫폼이 아닌 독립된 제품/서비스이다.
플랫폼은 구현기술에 따라 아날로그 플랫폼과 디지털 플랫폼으로 나눌 수 있다. 아날로그 플랫폼은 오래전에 등장했고 여전히 존재한다. 디지털 플랫폼은 ICT가 기업활동에 널리 활용되기 시작한 1980년대 이후에 등장, 발전한 것이다. ‘공통 기술’인 플랫폼은 경제 영역에서는 플랫폼 상품과 플랫폼 BM으로 구현된다. 플랫폼 상품은 처음부터 외부 판매용으로 개발된 것과 기업 내부에서 활용하던 것을 외부 수요자에게 판매하는 상품으로 전환한 것을 포함한다. 플랫폼 BM은 통상 ‘공급자(또는 개발자)와 수요자(또는 사용자)를 연결하는 서비스’를 가리킨다. 예를 들면 종래의 자동차 엔진은 아날로그 플랫폼 상품이고, 복덕방, 전통시장, 옐로페이지(전화번호부) 등은 아날로그 플랫폼 BM이다. MS 윈도우즈, SAP ERP는 디지털 플랫폼 상품이고, 애플 앱스토어, 아마존 쇼핑몰, 우버 차량공유 등은 디지털 플랫폼 BM이다.
‘플랫폼’은 때로는 플랫폼 상품 또는 BM이 주력 사업인 기업(예: 애플, 아마존, 구글)이나 그를 중심으로 형성되는 기업생태계를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기도 한다. 기업활동에서 플랫폼 상품은 비즈니스의 대상(‘what’), 플랫폼 조직은 비즈니스의 주체(‘who’), 플랫폼 BM은 비즈니스 가치를 창출(create)-전달(deliver)-획득(acquire or catch)하기 위한 설계도에 해당한다. 플랫폼 상품/조직/BM 3가지는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지만, 초점이 다른 용어이기에 문제에 따라 구분, 사용해야 한다. 예를 들면, ‘플랫폼에 대한 규제’는 그 대상이 상품인지, BM인지, 아니면 기업이나 생태계인지에 따라 목적과 접근방법이 달라져야 할 것이다.
플랫폼 상품의 기회와 위협
자동차 산업에서는 1900년대 초에 GM이 처음으로 제품 플랫폼을 개발, 적용했고 1960년대 이후에는 대부분 업체가 파워트레인을 플랫폼으로 생산, 활용하였다(참조: Wikipedia- ‘Car Platform’). 공통구성품을 플랫폼으로 설계-활용하는 방식은 이후 선박과 항공기 등 HW 제품으로 확산하였고 1990년대 이후에는 SW 시스템에도 적용되었다. 미국 국방부, 카네기멜런大 SEI, 유럽의 INSEAD 등은 플랫폼 기반 설계 방식을 제품라인설계(PLE: Product-Line Engineering or SPLE: System PLE)라는 방법론으로 발전시켰다(Bergey et al., 1999; Northrop & Clements, 2012). 미국 국방부가 1990년대 후반에 제정한 국방정보시스템 아키텍처는 공통운영환경(COE: Common Operating Environment)과 자료공유환경(SHADE: Shared Data Environment)을 플랫폼으로 정의하였다(US DoD, 1998). 클라우드 서비스에 비유한다면 COE는 IaaS, SHADE는 PaaS에 속하는 구성품이다. SEI 조사에 의하면 정부와 군, 기업 등은 PLE/SPLE를 통해 평균적으로 생산성 향상 10배, 품질 향상 10배, 비용 절감 60%, 인력 절감 87%, 시장 출하시간 단축 98%, 신시장 개척 기간 단축 등의 효과를 거뒀다(Northrop, 2008).
플랫폼 상품은 기업과 소비자 모두에게 여러 가지 효익을 제공한다. 우선, 구성품 자체와 내/외부 연결부(interface)를 규격화/표준화함으로써 플랫폼이 포함되는 시스템(‘완성품’)의 상호운용성과 품질을 높여준다. 다음, 유사 제품 간 중복을 줄임으로써 설계-생산 시간과 비용을 줄여준다. 예를 들면, 특정 제품의 30%를 플랫폼으로 설계-생산한다면, 필요한 전체 생산량의 70%만 새롭게 설계-생산하면 되므로 생산량이 늘어날수록 한계생산비가 줄어드는 것이다. 더구나 SW 제품은 플랫폼을 복제만 하면 되므로 한계생산비가 획기적으로 줄어든다. 이는 ‘공급쪽 규모/범위의 경제’에 해당하는 것으로 디지털 경제의 원리 중 하나인 ‘수요쪽 규모의 경제’, 즉 네트워크 효과와는 차이가 있다. 규모의 경제(Economy of Scale)는 1개 제품의 생산량(또는 수요자의 수)이 늘어남에 따라 생기는 이득이고, 범위의 경제(Economy of Scope)는 1개 기업이 2개 이상의 제품을 생산(또는 판매)함에 따라 생기는 이득이다. 자동차 회사의 플랫폼이 자사/타사의 여러 제품 모델에 포함되고, 빅테크 기업이 하나의 기술 플랫폼을 기반으로 여러 제품/서비스를 개발하고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것이 공급쪽 규모/범위의 경제에 해당한다. 한편, 소비자는 생산자/판매자가 거둔 이득을 혁신적 기능과 낮아진 가격으로 누리고 동일 플랫폼을 적용한 시스템을 사용할 경우 일관된 UI 같은 편의성도 얻는다.
플랫폼 상품은 여러 가지 위협 요인도 내포하고 있다. 플랫폼 자체의 기능/성능, 품질이 낮거나 표준화가 미흡하다면, 사소한 오류가 전체 시스템의 품질을 낮추고 오히려 더 큰 추가 개발이나 유지보수 비용을 지불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5G/6G 초고속 통신망과 GPT 같은 대규모언어모델(LLM: Large Language Model)이 모든 디지털 서비스의 인프라가 되는 시기에 이르게 되면 경제/사회 시스템의 안전성/안정성은 플랫폼의 품질에 크게 좌우될 것이다. LLM을 ‘파운데이션 모델’이라고 하는 것은 그 위에 다양한 애플리케이션 또는 서비스(예: 텍스트, 이미지, 오디오/비디오, 소스코드 등 생성)를 얹을 수 있기 때문이다.
플랫폼 상품과 플랫폼 비즈니스
플랫폼 상품은 특정 기능을 제공하는 단순 제품/서비스에서 복합상품 또는 융합상품으로, 나아가 소비자의 문제 해결을 위한 통합 솔루션으로 발전하고 있다. 통합 솔루션은 특정 문제(예: 제조/생산, 물류/의료 서비스) 해결용 전용 솔루션과 여러 가지 문제 해결에 쓰이는 범용 솔루션(예: AI 비서, 산업용 IoT)으로 나눌 수 있다. 플랫폼 상품은 그 자체로는 완성품이 아니므로 자사 또는 타사의 추가 개발을 통해 기업용(B2B) 또는 소비자용(B2C) 상품이 된다. 예를 들면, 오픈AI의 GPT-4는 솔루션 플랫폼이고 챗GPT는 그 위에서 인간과 채팅을 통해 텍스트를 생성하도록 만들어진 애플리케이션 또는 디지털 서비스인 것이다. 오픈AI는 GPT-4에 자사가 만든 플러그인(예: 브라우징, 코드 인터프리터)을 얹어서 B2C 서비스로 판매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고수준의 제3자용 플러그인과 API를 B2B로 판매하는 식의 BM을 운영하고 있다.
하나의 제품/서비스/솔루션을 독립된 완성품으로 생산-판매할 것인지 아니면 미완성인 플랫폼으로 생산-판매할 것인지는 기업이 전략적으로 결정할 문제이다(Gawer & Cusumano, 2007). 예를 들면, 맞춤 수요가 많아서 직접 추가 생산과 A/S를 담당하는 것이 부담스러울 때, 또는 자사/타사가 새로운 기능을 추가/보완하는 식의 확장성이 클 때는 플랫폼으로 판매하는 것이 유리할 것이다. 규격화된 수요가 많고 차별화를 통한 경쟁우위를 확보하고 있어서 안정적 사업 운영이 가능하다면 완성품으로 판매하는 것이 유리할 것이다. 오픈AI 외에도 CRM 업체인 Salesforce, 메시징 솔루션 업체인 Slack 등 많은 기업이 완성품 서비스와 플랫폼 서비스, 2가지를 함께 판매하는 하이브리드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Sermi, 2023).
플랫폼 상품을 어떤 BM으로 생산-판매할 것인지 결정하는 것도 전략적 의사결정 문제이다. 플랫폼은 조달-생산-판매로 이어지는 종래의 파이프라인(pipeline) BM을 적용할 수도 있고 외부 보완자(complementor)에 의한 생산/판매/지원을 기대하면서 플랫폼 BM을 적용할 수도 있다. 파이프라인 BM에서는 생산자가 만든 가치가 크므로 리더가 성과의 대부분을 갖게 되지만, 플랫폼 BM에서는 리더보다는 점차 외부 보완자에 의한 혁신이 더 커질 것이므로 비즈니스에 대한 책임과 권리를 나눠 갖게 된다. 플랫폼 BM에 의한 성과를 이해관계자가 어떻게 합리적으로 나눌 것인가 하는 문제는 플랫폼 경제가 풀어야 할 중요한 과제이다.
플랫폼 BM은 이제 가장 유망한 디지털 BM으로 인정받고 있다. 플랫폼 BM을 통해 성공한 기업들이 시장가치로는 세계 최상위를 차지하고 있고 그런 추세는 적어도 당분간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애플리코(Applico)는 미국 ‘S&P500 지수’에서 플랫폼 기업의 비중이 2010년에 2%였던 것이 2020년에 8%가 되었고 2040년경에는 50%에 달할 것이며, 플랫폼 BM의 평균 수익률이 파이프라인 BM의 2~4배인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는 플랫폼 기업이 인력, 장비/설비 같은 물적 자산은 외부에 두고 창의적 아이디어와 기술 같은 지적 자산을 내부 핵심역량으로 활용함에 따라 얻게 되는 성과라 할 수 있다. 새로이 등장하고 있는 스마트 팩토리, 디지털 헬스케어, 스마트 모빌리티, 스마트 농업 등 모든 융합산업은 공통 기술/제품/서비스를 통합한 플랫폼 상품과 BM을 기반으로 한 생태계로 구축, 운영될 것이다.
플랫폼 BM이라고 해서 무조건 높은 성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맥킨지 분석에 의하면 디지털 기업생태계는 2050년까지 60조불에 달하는 매출(전 세계 기업 매출의 30% 이상)을 이룩할 텐데 기존 기업의 3% 정도만 플랫폼 전략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Hirt, 2018). 올바른 전략과 실행방안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플랫폼 BM의 성공을 기대할 수 없다. 플랫폼 BM 중 최대 90%는 잘못된 가격 책정, 신뢰 개발 실패, 잘못된 진입 시기, 경쟁의 위협 무시 등으로 인해 실패한 것으로 나타났다(Cusumano et al., 2019). 플랫폼 자체의 매력이 작아서 적용되는 시스템의 숫자가 작거나(: 공급쪽 규모/범위의 경제) 충분한 수요(: 수요쪽 규모의 경제)를 창출하지 못하는 BM은 성공할 수 없다. 아마존, 구글, 애플, MS, 메타 등은 모두 우수한 SW 제품이나 서비스로 소비자/시장을 창출하는 데 성공했기에 플랫폼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Tiwana, 2014). //
첨부: 김덕현, 플랫폼 상품과 비즈니스 모델 재정립 제안, SW중심사회, SPRi, 2023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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