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부려먹는 못된 딸
현재 사무실은 책상 3개가 들어갈만한 큰 방에 회의실(이라 부르고 접견실처럼 아담함)까지 있어 혼자 일하기엔 제법 큰 사이즈다. 사무실을 구할 때쯤 임신사실을 알게 되었고 출산 전후에는 공백기가 있을 것 같아 공백기를 채워 줄 직원이 필요하단 생각을 했다. 그리고 아무래도 직원이 있다면 어느 정도 분리된 공간 하나는 있어야 될 것 같아서 무리해서 넓은, 지금의 사무실로 이전하였다. 구인광고를 내고 직원을 채용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직원은 출근한 지 3일 만에 그만두었다. 소규모 사무실의 비애다. 직원 구하기가 참 힘들다.
직원이 그만두었단 소식을 전하자 기다렸단 듯이 엄마가 사무실로 나왔다. 친정집은 현재 사무실과 가까웠고, 이 넓은 사무실에 나 혼자 있으면 심심하단 이유였다. 아마 임신한 딸이 안쓰러워서 나오셨으리라. 안 그래도 직원이 그만두어서 단순 입력 노동을 하던 참이었는데, 놀러 나온 엄마가 경력단절녀라는 사실을, 무엇보다 절대 먼저 그만두지 않고 연락 두절될 일도 없는 성실한 인재라는 사실이 생각나서 엄마를 그 자리에서 중고신입으로 채용하였다.
난 분명 엄마에게 의사를 물어보았다. 단순 입력/업무를 해줄 수 있냐고. 엄마는 대답을 했다. 그리고 난 엄마의 대답에서 뭔가 의지를 느꼈고 엄마를 세무분야에서 탄탄한 실력을 갖춘, 경력직으로 교육시키겠노라고 다짐했다. 아마 새로운 분야를 배우면서 엄마가 또 다른 적성을 찾고 활력을 찾고 회춘하길 기대했었나 보다. 또한 세무업은 1월~5월이 한창 바쁠 때라서 엄마가 보조를 해준다면 편할 것 같단 생각도 들었고, 엄마가 보조 업무에 숙달되면 당분간은 직원 채용할 필요도 없단 생각에 엄마에게 새로운 분야인 세무업과 컴퓨터 사용법을 알려주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엄마에게 업무를 알려주고 엄마가 실제 업무를 하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나 혼자 했다면 다 하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한 번만 알려주면 나의 보조 손이 돼줄 거란 기대감에 인내를 거듭하며 업무를 알려주었지만,,, 다음날이면 엄마의 업무 숙련도는 리셋되었다. 엄마를 노련한 경력직으로 만드리라!라는 사명감으로 약간은 격양된 목소리로, 그리고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기 위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내 도움 없이 혼자 업무를 해보라고도 했다. 하지만 격양된 목소리와 “죽이 되든 밥이 되든”이란 말은 오히려 엄마를 위축시킨 것 같다. 격양된 목소리는 급하니 빨리 처리해 달라란 의미로 전달되었고 본인의 실수로 업무가 “죽”이 될까 봐, 딸에게 해가 될까 봐 더 완벽하게 하고 싶어 했고, 그러다 보니 숫자 하나를 입력해도 생각이 많아지고 나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 세무회계 프로그램이 도통 이해도 안 되고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것 같다. 이 버튼을 눌러도 될지, 저 버튼을 눌러야 할지. 아무거나 눌러도 상관없다고 누누이 말해도 엄마는 버튼을 누르기 전마다 나에게 물어보았다.
급한 마음에 엄마한테 어제 했던 건데 왜 또 물어보냐고 소리치고 나서는 너무 마음이 안 좋았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반백살도 넘은 엄마한테 일도 못하냐고 소리치는지. 차라리 엄마 평소 성격처럼
네가 내 나이 돼라 이년아~
라고 해주면 마음이 덜 불편할 텐데, 엄마는 정말 주눅 들었는지,
기억이 안 나는 걸 어쩌니~ 다시 알려줘 봐
라고 하셨다.
연애시절, 남편은 취미로 3D프린터 기초 과정을 배운 적이 있었는데 3D프린터 종료 버튼도 제대로 찾지 못했다고 했다. 그리고 수강생 50%가 초등학생이라고 들려주었다. 나름 남편은 공돌이로 우리나라에서 알아주는 대학교를 나왔는데도 종료버튼도 못 찾는 걸 보니 신문물에 장사 없구나~라는 걸 느꼈다. 그리고 나도 늙으면 어린애들한테 코딩하나 못하냐고 뒷방 노인네 취급받겠구나란 생각을 했었다.
엄마를 보면서 느꼈다. 아 20년 뒤 내 모습이구나. 아래 직원이, 자녀가 코딩을 백번 알려줘도 그다음 날이면 모른다고 다시 알려달라고 하고, 불안한 마음에 이렇게 해도 돼?를 계속 물어보는. 그런 생각이 들자 노련한 경력직원 만들기 프로젝트를 끝내고 내가 하기 싫은 단순 업무를 도와주는, 내 손발이 되어주는, 항상 내 곁에 있는 하나밖에 없는 엄마 고마운 사람으로 인식하기로 다짐했다.
하지만 다짐이 무색하게 일이 몰아치고, 시간은 촉박하고, 단순 업무인데 또 틀린 엄마에게 “내가 이렇게 하지 말랬잖아”라고 격양된 목소리로 말하는 난 엄마를 부려먹는 못된 딸이다. 엄마 미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