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사장이고, 엄마는 직원이야
엄마한테도 딸이 운영하는 사무실도 사무실인가 보다. 출근하기가 쉽지 않나 보다. 임신한 딸이 추운 겨울에 사무실에 혼자 있다는 점이 안쓰럽지만, 내가 ‘엄마 오늘은 날도 너무 춥고, 안 나와도 돼~’라고 하면 음 그냥 집에서 쉴까?라는 마음이 먼저 든다고 한다. 이 사실이 웃기면서도 이해가 갔다. 난 사장이고, 엄마는 직원이니까! 난 사장이고 엄마는 직원이다라는 사실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1
참 웃긴 점이, 내가 결혼 전까지 엄마한테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이
“어지르는 사람 따로 있고 치우는 사람 따로 있냐”였다. 그럴 때마다 내가 깜빡하고 한번 안 치운 걸로 엄마는 잔소리를 한다며 생각했었다. 하지만, 사무실에서는 상황이 정 반대였다. 정말 어지르는 사람 따로 있고 치우는 사람 따로 있었다. 처음에는 엄마가 정말 깜빡하고 안 치운 줄 알았다. 하지만 계속 반복되는 행동에 아, 이 사무실의 주인은 나는구나. 나는 사장이고 엄마는 직원이구나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예전에 다니던 회사 대표님이 왜 사무실 들어오자마자 잔소리를 했는지 이해가 간다. 애정이 가득한 내 사무실이 조금만 관리 안되어 있으면 내 눈엔 유독 튀어 보인다.
#2
엄마가 회사 카드를 달라고 했다. 사무실에 필요한 비품을 사 오기 위함이란다. 날도 추운데 꼭 이날 가야 하나 싶었으나 카드를 주며 다녀오라고 했다. 생각해 보니 나도 인생 첫 회사에 입사했을 때가 12월이었는데, 신입이라 할 일이 없기도 했지만, 사무실을 나가고 싶어서 그 추운 날 세무서 방문 업무는 내가 직접 다녀왔다.
한 시간 뒤, 엄마가 이것, 저것 사 왔는데, 아니… 죄다 쓸데없이 비싼 걸 사 왔다. 도대체 왜? 종이상자에 든 클립 사 오면 되는데 왜 아크릴 케이스에 든 클립을 사 왔지? 사무실에 지우개 많이 있는데 지우개를 한 상자 사 왔네? 오잉 손거울도 사 오셨네? 커피 먹으면 잠 못 주무신다는 양반이 종류별 믹스커피를 사 오셨구나. 항상 나보고 한 푼 두 푼 아끼라면서, 내가 사무실 용품을 산다고 하면 집에 있다며 갖다 주겠다고 했으면서, 왜 이렇게 충동구매를 하셨을까?
불현듯, 근로자로 일하던 시절, 사무실 막내가 사무실 비품 사러 장 보러 간다고 하면 굳이 따라가서 쓸데없이 비싼 걸 사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인과응보인가.
그래. 일하다가 이렇게 쇼핑(?)하는 재미도 있어야지.
#3
친정집 베란다에는 화분이 가득하다. 물론 아빠가 키우는 화분이지만, 가끔 아빠가 관리를 못하면 엄마는 무심한 듯 툭툭 물을 주시곤 했다. 엄마의 손길이 닿은 식물들은 시들 줄 몰랐다.
개업하고 화분 선물을 많이 받았는데 공유 오피스 시절 대부분 내 곁을 떠나 흙만 남았다. 그래도 겨우 3개가 남아서, 새로운 사무실은 환기도 잘되고 공간도 넓으니 내 손으로 잘 키워야지 다짐했다. 하지만, 장매니저가 사무실을 관리해 주니, 나도 모르게 장매니저 손길을 믿으며 화분 관리에 소홀해졌다. 그런데 반전은 장매니저도 화분 관리를 안 했다.
화분 관리를 안 하고, 출근하기 싫은 마음이 먼저 들고, 사무실에선 치우는 것도 잘 안 하는 굳이 이유를 따져 묻진 않았다. 아무리 딸의 사무실이지만, 엄마한텐 “엄마가 주인인 집”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혼자 결론을 내렸다.
#4
일반 사무실로 옮겼을 땐 한창 코로나가 창궐하던 시절로, 남편도 재택근무 기간이었다. 비어있는 책상도 있고 장매니저가 싸다 주는 집밥도 먹을 수 있으니, 남편도 내 사무실에 나와서 근무를 하곤 했었다. 그렇게 동고동락을 하던 어느 날, 친오빠가 엄마한테 물었다.
“엄마, 사위랑 같이 일하는 건데 안 불편해?”
그러자 엄마가
“아이고 말도 마라, 나는 숫자 입력하고 틀린 거 없나 확인하느라 옆에 누가 있는지 신경도 못쓴다. 고개 들 시간도 없어~”
장매니저, 일에 집중하고 아주 좋은 태도입니다. 짝짝짝. 정말 서로 각자 할 일에 집중하니 업무 시간 중에는 대화가 거의 없다.
이렇게 나, 엄마, 남편이랑 부대끼며 일하던 중 거래처 사장님이 상담을 위해 사무실을 찾아왔다. 거래처 사장님은 공유오피스를 쓰던 시절부터 알고 지냈는데, 인테리어가 되어 있는 공유오피스를 보다가 구축의 겨우 구색을 갖춘 사무실을 보고 뭔가 후져졌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거래처 사장님은 새로운 사무실에 대해
“우와 집 같아요”
라고 했다. 난 속으로 생각했다.
그럼요, 엄마도 있고 남편도 있고 집이죠
사무실이 자리 잡지 않은 상태에서 임신은 나에게 상당히 스트레스였다. 아이 걱정에 사무실 걱정, 출산 후 사무실 걱정, 출근 시 아이 걱정 등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혼자 일했다면, 걱정에 사로잡혀 맨날 울면서 일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무실엔 엄마도 있고, 남편도 있어서, 물론 같이 일하면서 불편한 점도 있었지만, 집 같은 편안함을 느껴서 그런지 멘붕도 없었고, 감정 기복도 없이 정서적으로 안정적인 상태로 바쁜 시기를 무사히 끝낼 수 있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