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ukbo Apr 14. 2021

바다, 도망과 바다

바다 보러 갈까. 그래, 우리 도망가자. 바다는 도망치기 좋은 곳이지. 영화 보면 다들 그러더라고. 영화와 현실은 다르다지만, 내가 도망치던 곳이 주로 영화의 장면들이었고, 그 환상을 동경했으니까.


 다들 바다로 도망갈까, 생각해보면 거긴 진짜 끝이거든. 해변이 바다와 맞닿아 파도가 부서지는 곳은 마치 경계 같았어, 넘어갈  없는. 겁도 없이 체감하던 바다의 소금기가 아직도  어딘가에 남아있으니까. 경계 너머를 바라보며 관망하는 바다는 하늘과 맞닿아 있는 면에서 소음을 일으키듯 지지직거리고, 어딘지도 모를 수평선은 손에 닿을  일렁이지.  너머까지는 관심이 없었어. 이제 도망칠 수도 없다는 것을 깨달은 채로 바라보는 풍경이 아름답기까지 하다니. 진짜 영화의  장면 같잖아.


2018년에 혼자 강릉에 갔다고 했었지. 사실은 도망갔었어. 그런데 도망도 쉽지 않더라. 영화처럼 멋지게 앉아 바다를 보며 사색에 잠기고 싶었는데, 사람들이 많아 편히 앉을 곳도 잘 없었어. 겨우 찾아 앉은 자리에서도 바다와 나는 그냥 사람들의 배경인 건가, 싶더라고. 이 사람들에게 바다는 도망지가 아니구나. 아무리 영화와 현실은 다르다지만, 도망조차 쉽지가 않더라. 나는 이제 어디로 도망을 가야 하나.


그냥 방에 숨어 있었어. 어린 시절 경찰과 도둑을 할 때도 도망을 못 가면 숨기라도 해야 했으니까.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 건물 뒤에는 급식실로 통하는 장소가 있었는데, 거기가 진짜 숨기 좋았어. 나는 항상 거기에 숨어 있다가, 들키면 급식실을 통해서 반대편으로 도망가곤 했지. 어디를 향해 도망친 건 아니었어. 그냥 내가 도망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했지. 그래, 도망지가 뭐가 중요할까. 바다는 그냥 선택지였던 거야.


우리 도망가자. 그래, 바다나 보러 갈까? 바다는 도망치기 좋은 곳이래. 음, 도망친다는 사실이 중요한 거지. 사실은 너만 옆에 있으면 어디든 좋아.

작가의 이전글 She made me feel things.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