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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ukbo May 10. 2022

땟물에서 용 난다

내가 살면서, 어쩌면 죽을 때까지 잊혀지지 않을 것 같은 말이 몇 개 있다.


우리 엄마는 내가 진짜 어렸을 때부터 목욕탕을 했다. 그 목욕탕이 엄마 꺼가 아니라는 것을 좀 크고 나서 알았지만, 사실 그건 딱히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나는 내 주변 사람들의 부모님이 어떤 일을 하시는지, 그래서 그 집의 형편이 어떤지에 별로 관심이 없다. 우리 집이 가난했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동정을 느껴본 적도 별로 없고, 진짜 돈 많은 집에서 태어난 누군가를 부러워한 적도 좀 크고 나서는 몇 번 없다.


이러한 것에 관심이 많은, 아니 무슨 집착 수준으로 알려고 하는 사람을 나는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만났다. 생각해보면 꽤 공부를 잘했던 것 같다. 당연히 나는 걔의 집 사정에 관심이 없었고, 걔는 관심이 있었다. 어떻게 엄마가 목욕탕을 하는 것을 알았는지, 내가 어떤 학원을 다닌다는 것을 알았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기억나는 건 그냥 걔가 했던 말이다.

‘너네 부모님은 목욕탕 해서 니 공부 시킨다매. 목욕탕 하면 돈 많이 못 벌지 않나? 니 학원비는 낼 수 있나? 니가 성공하면 개천이 아니라 목욕탕 땟물에서 용 나는 거다.’


목욕탕에서 엄마의 자리였던 카운터는 너무나도 좁았다. 중학생이던 나와 누나만 들어가도 거의 꽉 찼었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노트북보다 조금 더 큰 낡은 TV가 엄마의 심심함을 달래줬고, 내 자취방에 있는 것보다도 작은 냉장고와 코팅이 거의 다 벗겨져 있던 소파가 하나 있었다. 목욕탕 셔터가 올라가는 시간은 보통 새벽 4시였고, 엄마는 나랑 누나 아침으로 먹으라고 주먹밥까지 싸놓고 갔었다. 나는 한 번도 목욕탕이 창피하다거나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나는 아직도 목욕탕에 자주 가고, 돈을 내고 들어가는 것이 조금 어색하다.


어제 인스타 계정에 팔로우 요청이 하나 왔다. 걔였다. 중학교 때 그렇게 나보다는 좋은 대학 갈 거라고 집착을 했었는데. 요청을 받았는데, 그 이유는 딱 하나다. 걔가 어떤 직업을 얻고 살아갈지 궁금해서.

직업에는 귀천이 없지만, 천한 사람이 하는 직업은 대부분 비슷하더라는 말을 본 적이 있다. 니는 내가 봤던 사람 중에 가장 천했던 사람 중 한 명이다. 나는 진심으로 니가 어떻게 살아갈지 궁금하다. 나도 꼭 목욕탕 땟물에서 용 났다는 말을 칭찬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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