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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ukbo Jul 25. 2022

상대적 이론

‘셰이프 오브 워터’ 이제 봤음

우선 나는 이 영화의 장르는 로맨스가 맞다고 생각한다.


여러 평가가 엇갈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만 각자가 느낀 불편함에 대한 그들의 비평은 읽어보아도, 이해가 잘 되지는 않았다. 영화에 대한 평가는 감상한 사람의 수만큼 존재하고, 내가 보고 느낀 것을 남에게 이해시키려 하거나, 남의 것을 내가 받아들이려 굳이 노력할 필요는 없다.


영화의 핵심은 인어를 구해야 한다고 엘라이자가 자일스를 설득하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거기에 영화의 대부분이 담겨 있다.


‘그 사람은 나를 있는 그대로 봐요.’ 엘라이자는 인어를 대할 때, 낯선 존재를 마주한 것 같지 않았다. 문명의 손길에 닿지 않는 곳에서만 살아왔던 존재에게 다가가며,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게 한다. 인어도 마찬가지이다. 엘라이자의 말처럼 그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교감한다. 자일스는 그녀가 인어를 ‘것’이라 부르는지, ‘사람’이라 부르는지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리고 결국 사람이 아니라고 정의해버린다. 나와는 다른 무언가라고 인식하는 것, 일반적으로 이는 차별의 시작점이다.

여기에 영화의 몰입이 깨지는 지점이 있는데, 인어가 고양이를 산채로 뜯어먹는 장면이다. 자일스는 이후 ‘야생동물이니 어쩔 수 없다’라고 표현한다.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우리도 인간이 아니에요.’ 엘라이자는 60년대의 여자, 언어 장애를 가진 사회적 약자로 그려진다. 사회적 약자들은 일반적으로 수동적인 자세를 취한다. 현실에서든 영화든. 다시 한번 김원영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하늘의 불운’에 걸린 사람들은 개인적인 욕망조차 희망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엘라이자는 다르다. 그녀는 사랑을 적극적으로 쟁취한다. 호감을 느낀 대상에게 구애하고, 그가 위험에 처하자 목숨을 걸고 과감하게 구해낸다. 매일 출근 전 자위를 하며, 악역인 스트릭랜드의 더러운 욕구의 대상이었던 그녀가 모든 것을 이겨내고 인어와의 사랑을 쟁취한 뒤 이뤄지는 그와의 섹스는 굉장히 상징적이다. 그녀의 눈빛에서도 보이듯이.


결국 ‘사회적 약자가 적극적인 자세로 자신이 욕구하는 것을 쟁취하는 영화’이며, 그 쟁취의 대상이 ‘사랑’이기에 이 영화는 로맨스 영화인 것이다.


또 하나 주목할만한 점은 엘라이자의 조력자인 자일스와 옥타비아 모두 사회적 약자라는 점이다. 자일스는 일자리가 없는 노인, 동성애자이다. 옥타비아는 흑인 여성, 워킹맘이다. 장애인을 비하하는 여성 인권 운동가, 성추행을 저지르는 장애인 등 약자가 다른 약자에게 자신이 가진 상대적인 강함을 가지고 권력과 폭행을 행사하는 사례를 많이 봐왔다. 옥타비아의 남편인 흑인 남성은 자신의 아내인 흑인 여자에게 권력을 행사하다가, 백인 남자가 들어오자 조아리는 모습을 보인다. 사회적 약자로 그려지는 이들이 연대하여 쟁취하는 것은 어떠한 메시지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세상에 절대적인 것은 없는 듯하다. 사람마다 자신이 절대적이라고 믿는 무언가가 있을 뿐.


이 이야기가 동화 같지만, 동화로 남지 않은 것도 좋았다. 인어는 갑자기 잘생긴 왕자님으로 변하지 않고, 엘라이자는 갑자기 목소리를 되찾지 않는다. 인어는 자신의 생활 방식을 고수하게 되었고, 엘라이자 목의 흉터는 아가미로 새롭게 자리매김한다.


판타지적인 요소와 심미적인 존재. 이 영화의 아름다움을 부정하기는 쉽지 않은 이유다. 그 사이의 현실적인 내러티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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