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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ukbo Sep 07. 2022

2019.03.25

보금자리

초등학교  내가  배웠는지 생각해보면 기억나는 것은 하나 밖에 없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기본 3요소라는 ‘의식주.   하나가 집인데 당연한 소리다. 나도 태어나서부터 계속 집이 있었다. 물론  집은 아니고 부모님과 조부모님 집이었지만, 나도 집에서 밥을 먹고 침대에서 자고 화장실에서 싸고 재해를 피하면서 생존해왔다.

 생존을 위한 요소  이상이  수도 있다.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공간이기 때문에 자신의 취미를 마음껏 즐길 수도 있고, 그에 따른 취향과 생각대로 마음대로 꾸밀 수도 있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담을  있고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마음의 안정을 얻을  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하고 보니까 이상하게 나는 그렇지가 않다. 나는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아주 어렸을 때를 제외하면 내 방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집안 사정 때문에 누나랑 방을 함께 써야 했고 침대도 2층 침대를 사용했다. 그나마도 쓰고 싶었던 2층이 아닌 1층을 썼다. 방이 그렇게 크지도 않았기 때문에 침대, 책상 등 가구를 놓으면 뭐 꾸미고 자시고 할 공간도 없었다. 공부를 할 때도 누나가 방에서 공부를 했기 때문에 나는 항상 거실에 있는 식탁에서 공부를 해야했다. 그 방에서 나의 공간은 침대 한 칸이었다. 나의 생각과 감정을 담기에는 너무 좁은 공간이었다.


또한 조부모님과 함께 살면서부터 집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할아버지께서는 굉장히 보수적인 분이셨기 때문에, 행동 하나하나에 잔소리를 하셨다. 주말에도 늦잠을 편하게 잘 수 없었고, 방에 있으면 내가 뭐 하고 있는지 계속 지켜보셨기 때문에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집에 나의 공간도 없고 간섭이 심하니까 친구들을 집에 초대한 적도 없었다. 심지어 치킨이나 피자 같은 배달음식을 시켜먹지도 못했다. 집이 편하지 않았기 때문에, 딱히 무슨 일이 없어도 집에서 쉬지 않고 항상 일부러 나가서 밖에서 시간을 보냈었다. 그러다보니 갈수록 할아버지께 밖에 나가는 핑계를 대는 요령도 발전했다. 어디든 집보다는 편했다. 집안사정으로 인한 분위기 때문에 더 그랬다. 나에게 집은 단지 생존을 위해 필요한 요소일 뿐이었다.


고등학교를 기숙사 학교에 들어가면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은 정말 적어졌다. 주말에도 대부분의 시간을 학원에서 보냈기 때문에 진짜 집은 그냥 잠을 자는 곳에 불과했다. 고향인 부산이 아닌 대전으로 대학을 진학한 지금은 집에 거의 가지도 않는다. 고등학교 때부터 기숙사에 6년을 살았다. 당연히 기숙사도 룸메이트가 있고 침대, 책상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내가 마음의 안정을 얻을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은 아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공간을 처음 얻은 것이 프랑스에서 지금 살고 있는 방이다. 작은 원룸이고, 타지에서 6개월간 살고 떠나기 때문에 마음대로 꾸미거나 할 수는 없지만, 처음으로 생긴 나만의 공간이다.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다. 피곤해서 늦잠을 자도 되고,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이어폰을 끼지 않고 마음껏 봐도 된다. 배가 고플 때,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먹을 수도 있다. 할아버지가 보셨으면 잔소리를 100마디는 했을, 런던에서 산 해리포터 지팡이와 손흥민 스카프도 손 닿은 곳에 두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마음대로 누군가를 이 곳에 초대할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의미 있는 처음이다. 환경적인 제약 때문에 많이는 아니지만 2달간 살면서 이 곳에 나의 생각과 감정이 이미 많이 담겨있다는 것을 느낀다. 이러한 생존을 위한 요소 그 이상인 곳, 누군가의 생각과 감정이 담긴 곳을 보금자리라고 부른다고 생각한다. 나는 프랑스에서 보금자리를 얻게 되었다.


‘집과 보금자리는 그 의미가 다릅니다. 집은 무생물일 뿐이지만 보금자리에는 감정이 담겨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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