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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ukbo Sep 16. 2022

양팔 흔들기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줄만 알았다, 망가지고 있는 줄도 모르고.

이번 추석 때 부산 본가에 내려가 침대에 엎드려 누워있었는데 엄마가 와서 내 등과 옆구리를 이리저리 만졌다. 그러더니 나에게 너 걸을 때 한 팔만 흔들면서 걷는 거 알고 있냐고, 그래서 한 쪽 옆구리만 엄청 뭉쳐있다고 했다.


나는 걸을 때 왼팔은 고정하고 오른팔만 흔들면서 걷는다. 몰랐는데 그렇다고 한다. 내가 허구한 날 어깨랑 목에 담이 와서 한의원이나 정형외과에 가는 이유가 이거일지도 모르지. 또 애초에 많이 안 걸으니까.


나는 원래 산책하는 걸 좋아했는데, 이상하게 요즘은 잘 안 걷는다. 꽤 가까운 거리도 전동 킥보드를 타고 다니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얼마 전에 누가 나한테 왜 이렇게 찌들고 피폐해졌냐고, 예전에는 사람답게 사려는 노력은 했는데 이제는 그것도 안 한다고, 그렇게 말했다.


그래서 억지로 밤에 퇴근할 때라도, 아니면 30분이라도 산책을 한다. 오늘은 오랜만에 혼자 영화를 보고 집까지 걸어왔다. 그때 보니까 정말 내 왼팔은 경직되어 있는 건지, 가만히 있는 법을 아는 건지, 어쨌든 움직이지 않았다.


이게 다 내가 사람답게 사려는 노력을 하지 않아서인가. 빽빽이 흘러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게 삶인 것 같아, 어제는 피곤해서 9시쯤 퇴근하려니까 선배들이 평소의 나보다 조퇴 수준으로 빠르다며 웃었다.


나는 이제 퇴근하고 들어가는 어질러진 내 방이 익숙하다. 우주의 법칙을 따르는 거라고 위안하는 열역학 제2법칙. 한 번씩 마주치는 날파리는 반가움과 동시에 바로 죽인다. 욕실에는 왜 때가 쌓입니까. 여유가 없단 말입니다. 그래도 사람 사는 방처럼은 보여야지, 한 팔로 대충 쓱쓱 닦는다. 오른팔이겠지.


살기 위해 쓰기 시작한 글이었는데, 나 걱정하는 건 나밖에 없었으니까. 세상 일에는 별 관심이 없다. 어차피 아무도 읽지도 않는 글 이제 쓰지 말까, 하고 생각하는 거 보니까 그래도 그때보다는 살만해졌나 봐.


이게 다 내가 사람답게 살려는 생각도 안 해서 그래. 26살 먹고 걷는 것도 제대로 못 걷는 병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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