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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ukbo Oct 21. 2022

유창성 장애는 __의 꿈을 꾸는가?

본래 사람은 자신의 방식대로 씨부리기 마련이다. 더 예쁜 표현도 있겠지만 씨부린다고 굳이 말하는 것도 그런 거겠지. 상대방의 씨부림을 받아들이는 것도 마찬가지다. 듣는 것과 받아들이는 것은 다르니까. 번역과 통역의 차이를 설명하세요, 과학과 공학의 차이를 설명하세요, 어쩌구. 시발. 그게 뭐가 중요한지.


하지만 유창성 장애인 나로서는 말로 하는 대화에 부정적이다. 말은 뱉는 순간 사라지거나, 뱉지 못하고 사라질 기회를 박탈당한다. 유독 누구와 말을 할 때 더 많이 더듬는데, 사실 그건 우리 엄마다. 세상에서 분노한 표정을 제일 잘 짓기로 유명한 엄마는 그를 뽐내며 말 좀 똑바로 하라고 소리를 많이 질렀다. 그럴 때면 어린 시절 나는 눈물로 시야를 가려 세상으로부터 독립하고, 이응이 포함된 낱말 하나를 뱉으려 애를 썼다. 사라질 기회를 박탈당한. 아직까지도 유독 엄마 앞에서 말을 더 많이 더듬는 것은 박탈당한 원혼을 가진 채 메아리치고 있던 것들에 의한 병목 현상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한동안 말을 하지 않으려고 피해 다녔다. 병신같이.


그렇다고 글 쓰는 것을 좋아한다고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 글이 생존의 수단인 사람들을 직접 본 이후로. 장애를 극복하라는 말 같아서. 누구나 자신의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경중의 차이를 두고 싶지는 않다. 자신의 선택이 아니라는 것은 모두에게 공평하니까. 테드 창이 자유의지를 박탈했냐 아니냐로 떠들지만, 빅터 프랭클이 부여한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선택할 수 있는 태도는 고유하다.


그래서 본래 사람은 자신의 방식대로 씨부리기 마련이다. 내뱉는 것과 받아들이는 것의 문제.


나는 보편적 괴로움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위로의 말이든 글이든 잘하지 못한다. 그런 거 잘하는 사람은 따로 있지. 그저 존엄적 생명과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써 내가 가진 한 사람만큼의 무게를 스스로 잘 이해하려고 발버둥 치는 것일 뿐.


세상엔 이런 사랑도 있다고 하는 것만큼 추접스러운 일은 없고, 초록빛보다 초록색을 좋아하는 나는 초록색을 색의 삼원색으로 임명했다. 통역사가 필요하다고 외치던 때도 있었지만. 뭐, 말은 즉각 이해하지 않으면 사라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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