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비욕구
이스탄불에서 5일간 있었는데 한인 민박에서 묵었었다. 도미토리를 사용했는데, 마지막 날을 제외하면 나 말고는 모두 여성분이었기 때문에 아침 먹을 때 말고는 만날 일이 없었다. 아침마다 사장님을 포함한 모든 분들과 함께 식사를 했는데, 서로의 여행 일정이 주된 이야깃거리였다. 무슨 인터뷰처럼 사장님께서 ‘오늘은 어디 가세요?’라는 질문을 하시면 신기하게 약속이라도 한 듯 돌아가면서 각자의 계획을 말했다.
나의 대답은 항상 ‘잘 모르겠어요. 씻고 생각해보려고요’였다. 사실 다른 분들이 계획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여기 가볼까?’라고 생각을 했다. 그러고 숙소를 나온 다음 구글 지도를 보고 따라가 그 주변을 둘러보다가 마음에 드는 곳, 한 번씩은 사람들이 많이 몰려있는 곳으로 행선지를 정했다. (중국어가 많이 들리면 일단 이 곳은 관광지다!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어떻게 보면 방황에 가깝다. 그러다 보면 동선도 많이 꼬여 사실 시간 낭비가 꽤 심했다. 그래도 그러면서 바닷가에서 낚시하던 아저씨, 목적은 모르겠지만 해녀 같은 복장으로 잠수를 하던 사람들, 우연히 들어간 공원의 운동 기구에서 놀던 아이들을 만나는 것이 즐거웠다.
그러다가 딱 한 번 계획을 구체적으로 베벡 지구에 간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나는 이스탄불에 도착한 첫날에 베벡 지구에 갔었기 때문에 사장님께서 ‘갔던 곳을 왜 또 가요? 다른 곳은 다 가보셨어요?’라고 여쭤보셨다. 사실 사람들이 말하던 이스탄불에서 유명하다는 곳 중 몇 군데는 가보지 못했다. 그래도 그 날은 이스탄불에서의 마지막 날이었고, 첫날 날씨가 안 좋았는데도 베벡 지구의 풍경이 너무 이뻤기 때문에 날씨가 좋은 날 다시 한번 가보고 싶었다. 다른 분들은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겠지만 나는 크게 만족을 했다. 그래서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시간 낭비. 옛날에는 친구랑 놀려면 일단 친구 집에 가서 이름을 크게 불렀다. 그 친구가 지금 집에 있는지 없는지, 나랑 놀 수 있는지 없는지는 나중에 생각할 문제였다. 먼저 집 전화로 물어보는 방법도 있었지만, 보통 친구의 부모님이 받았기 때문에 조금 무서웠다. 요즘은 그렇게 하는 사람이 없다. 일단 먼저 연락을 해서 만날 수 있는지 없는지부터 언제 어디서 만나 무엇을 할 것인지도 다 정해놓고 사람을 만난다.
그때는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시간 낭비일수도 있는데 말이다. 요즘에는 조금의 위험요소가 있어도, 조금이라도 시간이든 뭐든 낭비할 거 같으면 섣불리 행동하지 않게 된다. 그 이유도 비슷한 것 같다. 단순하게 친구가 집에 있고 나랑 놀 수 있을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지 않더라도 크게 상관없었기 때문에, 그때의 나는 그것이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일부터 동유럽으로 약 2주간 떠난다. 항상 그랬듯 계획은 전혀 없다. 사실 계획을 안 세우는 가장 큰 이유는 귀찮아서이지만, 방황에 가까운 여행을 시간 낭비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고 나름의 즐거움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도 있다.
시간을 낭비하는 만큼 작은 것이라도 무언가를 얻게 된다. 사실 모든 것이 다 그렇지 않을까.
낭비가 있는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