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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ukbo Jan 15. 2023

이악물고해피뉴이어

그날이 오고야 말았다. 모두가  악물고 밝고, 희망차며, 서로의 안녕을 빌어주는 시기. 젠장, 새해다. 사실 신파극과 다를  없다. 슬프고, 감동적이며, 벅차기까지  순간이 정해져 있다는 . 이런 생각을 한다는 사실이 내가 얼마나 꼬일 대로 꼬인 사람이 되었는지를 말해주는 듯하다.


그 몇 번의 새해가 지나가면서, 나는 크게 변했다. 대화를 할 때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하는 경향이 심해졌고, 아주머니들이 나누어 주시는 전단지를 거절하는 횟수가 늘어났으며, 올해는 드디어 ‘대응하는 기계’가 되어버렸다.


요즘은 글을 왜 안 쓰세요? 사실 매일 씁니다. 메일 답변을 한 10개씩은 송부하거든요.

[교수님/선생님/담당자님/연구원 님께, 안녕하세요. 어디 연구실 소속 석사 과정 000 학생입니다. 어쩌구 저쩌구. 확인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000 올림.]

양식도 정해져 있다. 관계의 높낮이 또한 으레 정해져 있다. 뭔가를 요구하고, 강조하고, 명령한다. 그래서 그냥 따르면 된다. 피동적인 일상. 새로 추가된 인생의 루틴은 5분에 한 번씩 메일창을 새로고침하는 것이다. 내 주변에도 대부분 대응하는 기계‘들’이다. 누가 더 군더더기 없고, 이성적으로, 더 많은 일을 짧은 시간 안에 완벽히 대응하는가.


그럼에도 실수를 한다. 실수라는 단어로는 포장이 되지 않는 잘못을 저지르기도 한다. 때로는 고의적이다. ‘인간적인’ 모습. 흔히 쓰이던 ‘인간적’이라는 표현이 그저 자신의 어설픔과 무능력을 무마하려는 발악이었다는 사실을 나는 기계가 되고 나서야 깨달았다. 그래서 그런지, 아직 기계화가 덜 된 나에 비해 업그레이드를 몇 번이나 더 한 듯 저 멀리 가 있는 존재를 보면 도저히 경탄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또 하나의 변화가 있다면 사람들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다. 나는 내가 유난히 감성적이고, 충동적이고, 영악하며, 나약하다고 확신했다. 아니었다. 다들 자신만의 단단한 페르소나를 구축하고 있었을 뿐. 나 자신의 페르소나가 잘 조각되어갈수록,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더욱 절실히 느낀다.

‘조각’이라는 단어에 대해 흥미로운 글을 본 적이 있는데, 예측할 수 없이 깨어진 파편을 칭함과 동시에, 잘 다듬어진 미술품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좋든 싫든 후자가 내가 나아가는 방향이지만, 가끔은 이를 벗어던지고 싶다. 감성적이고, 충동적이고, 영악하며, 나약한 본능과 욕구를 마음껏 드러내고 싶어진다. 이 추악한 벌거벗은 모습마저 보듬어줄 수 있는 이들과 그 순간을 같이 만끽하고 싶어진다. ‘인간적’이라는 표현으로 무마해도 좋다.


그래서 나도 아무튼 해피뉴이어를 외친다. 파편이고 싶기 때문에. 파편에 끊임없이 찔려 굳은살이 배기는 건지, 아니면 잘 다듬어진 조각이 되어가는 건지.


어쨌든 새해라서 이런 ‘인간적인’ 생각에 적당히 시간 써 보는 거지. 아무튼 해피뉴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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