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을 잃는 것은 흥미를 잃는 것이다.
후쿠오카를 여행할 때 밤에는 호텔에서 넷플릭스 시리즈를 봤다. 록우드 심령 회사라는 제목의, 대충 유령과 전투를 할 수 있는 재능을 타고난 아이들에 대한 내용이다. 볼 때는 딱히 관심이 가지 않았던 킵스라는 이름의 친구가 계속 기억에 남아 있다.
세계에서 가장 유능한 집단의 선택을 받아 입단하여 활동하는, 꽤나 인정받는 엘리트인 듯하다. 당연히 싸가지 없는 먼치킨 주인공의 재수 없는 라이벌 포지션이다. 엄청난 재능을 지니고 있었겠지. 하지만 유령과 전투를 할 수 있는 아이들의 재능은 커갈수록 사라지고, 이 친구 역시 재수 없게도 상대적으로 어린 나이에 재능을 잃었다. 어린 나이의 아이들은 모두 천재라고 생각한다는, 어쩌면 무책임하기도 한 말의 ‘모두’라는 단어에 포함되어 보잘것없이 잊혀질 운명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자기 잘난 맛에 살아가려는 재수 없는 모습이 솔직히 너무 보기 좋았다. 굿 보이!
초등학생 때만 해도 나는 내가 진짜 천재인 줄 알았다. 아니라도 부산에서는 제일 똑똑한 줄 알았지. 매일 바이올린을 소중히 들고 등교하던 우리 반 반장은 항상 드레스를 입고 큰 무대에서 연주하던 자신의 모습을 그렸고, 학년에서 가장 빠른 공을 던지던 친구는 10년 뒤 롯데 자이언츠의 마무리 투수가 되어 우승을 이끌겠노라 큰소리를 치고 다녔다. 아쉽게도 어디서도 이름이 들리지 않는 것으로 보아 자신의 평범함을 깨닫고 살아가고 있겠지. 나 역시 아무래도 그냥 공부를 조금 일찍 시작한 사람이었을 뿐. 동기부여를 잃어가는 평범한 대학원생이 되었다.
글 쓰는 것도 마찬가지. 처음에는 하고 싶은 말도 많았고, 뭔가 술술 써졌다. 어쩌면 나의 적성은 작문이었을지도, 자퇴를 해야 하나. 하지만 역시 거기까지였다. 내가 쌓아왔던 인문학적 소양은 다 소모되었고, 참방거리던 내 얕은 샘을 바닥을 드러내고 말았다. 다시 채우면 되지, 그렇긴 한데 나는 바쁘니까. 프로젝트에 쓸 기준 전극만 3달째 알아보고 있으니까. 핑계인 거 나도 안다. 운동을 그만둔 것처럼. 운동은 진짜 다시 시작해야지. 글이 잘 안 써지니까, 솔직히 흥미를 잃었다. 생각을 살피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다시 메마르고 편협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재능을 잃어버렸다고 느끼는 것은 흥미를 잃게 한다.
영화 개봉의 영향인지, 일본에서도 슬램덩크 인기가 다시 한창이었다. 이럴 때 다시 봐서 그런가, 정대만에 이입이 되었다. 자신의 재능이 특별하지도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고, 흥미를 잃고 2년을 방황했다. 나는 긴 머리의 정대만이 처음 등장했을 때 그냥 잠깐 나왔다 사라질 인물일 줄 알았다. 하지만 주어진 재능이라는 것은 사실 얻기가 죽기보다 힘든 만큼, 쉽게 사라지지도 않는다. 흥미를 잃었다고 생각할 뿐, 사실 잃은 것은 용기일지도. 흥미를 되찾자 무석중학의 정대만은 다시금 천재 슈터로 돌아온다. 흥미를 얻자 재능이 다시 피어났다. 그래서 정대만의 슛에는 항상 벅차오름과 감동이 있었다.
흥미를 잃는 것은 재능을 잃는 것이다. 과연 어느 쪽인가. 모든 재능을 다 잃는다 해도 킵스가 순종적인 머저리가 되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