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싹한 장면이다. 살아있는 자와 시체가 서로 마주하고 있다. 대꾼한 눈으로 빈틈없이. 살아있는 자는 죽어가고 시체는 썩어가고 있다. 먼저 죽고 썩은 자가 먼저 살게 되는가. 그것은 확실하지 않다. 그저 모든 시간에서의 모습이 한 번에 나타날 뿐.
시간을 느끼지 못하는데 여기 있어도 될까. 나는 어디에서 끝나는지, 그냥 그것이 궁금했다.
똑같은 알람 소리를 듣고 일어나자 하루가 지남을 깨달았다. 월급 들어왔냐는 엄마의 연락에 한 달이 지났음을 깨닫는다. 같은 풍경의 목련을 보고 이전과는 다른 사색에 잠기며 해가 바뀌었다는 것을 실감한다.
시간을 느끼게 해주는 것은 한 기간의 끝과, 똑같은 한 기간의 시작 사이에서 들려오는 어떠한 파장 같은 것이다. 카세트의 오토리버스 같은 것. 아이러니하다.
그것을 느꼈을 때, 나는 자신을 본다. 자신의 주변도 본다. 이때 똑같은 것이 일상이며, 나는 이것을 기록하지 않는다. 같지 않은 것의 발견은 축복이다. 매번 똑같은 같지 않은 것은 두려운 존재다. 죽음에 가까워져 간다는 것, 그 순간에도 죽어가고 있다는 것. 이 순간마다 죽어가는 자신마저 느껴야 하는 시간의 형벌은 주어진 생애의 어느 지점에서나 동일하다.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순간은, 같지 않은 것이 유일한 순간이다. 축복이 사라진 순간. 스스로 숨마저 쉬지 못해 강제로 쉬는 것. 스스로 음식물을 자신의 입에 가져오지 못하는 것. 그리고 씹고 삼키지도 못하는 것. 살기 위해 필요한 모든 행위가 저주가 되는 것을 목격하는 순간, 사람은 지독함을 멈춘다.
푸르른 것을 좋아하는 이유다. 푸르르고 하얗고 무언가 피어나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다. 이제는 오싹함까지 눈에 보이기 때문에. 길을 걷다가도 꽃집과 청과점 앞에서 걸음을 멈추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