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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ukbo Apr 11. 2023

봄사랑벚꽃

게으름뱅이에게도 봄은 찾아왔다.


창밖을 향한 내 시선의 초점은 하늘을 통과한 우주 끝까지 갔다가, 빛을 초월한 속도로 눈앞까지 온다. 휴, 하마터면 우주의 진리를 깨달아버릴 뻔했다. 직사각형 이미지의 다가온 계절의 풍경이 프레임 단위로 빠르게 입력되었다.


노력을 하지 않아도 찾아오는 자연의 선물이라지만, 내 생활의 반경에는 미치지 못했다. 나는 그냥 새로운 계절의 배경 엔피씨 1일뿐. 바닥을 보는 것이 익숙한 사람이었으니까.


그때 찾아온 또 다른 자연의 선물은 글쎄, 뭐라고 해야 하나. 문득 고개를 들었다. 흐드러진 벚꽃과 너. 나는 벚꽃에는 별 관심이 없어. 1만 장의 분홍색 종이 쪼가리여도 상관없는 듯, 벚꽃도 너처럼 그 자체로 사랑스러운 존재는 아닌 거야. 감히 이것만으로 너를 사랑하는 이유가 설명이 될까.


어쩐지 블라인드의 높이와 각도가 따스한 햇볕에  맞고, 흩날리던 꽃잎이 우연히 외투 주머니 속으로 들어오는가 싶더니. 빈틈 없이 자욱을 남기고. 혹여나 옅어질까  페이지를 넘겨 색연필로 빼곡히 문질러 완성된 우리 둘만 의식하는 차원의 프로타주.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던 싱그러운 기운, 나를 찾아온 계절은 온통 너였어. 그러니까  말뜻은,


이렇게나 보잘것없는 게으름뱅이에게도 봄을 한 아름 품은 그녀가 찾아왔다.


2022.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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