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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호영 Jul 21. 2017

한국에서 누리는 편리함 속의 불편함

해외에 살거나 여행을 하다 보면 한국이 얼마나 살기 편한 나라라는 것을 종종 깨닫게 된다. 특히 미국에 살다 보면 한국에서 누리는 많은 편리함이 많이 생각나고 한국과 비교하면서  '한국에서는 이런데 어 왜 여기는 이렇지?" 뭐 이런 식이다. 그런데 '왜 여기는 이렇게 할까?'라는 질문을 던지다 보면 한국에서 내가 누렸던 '편리함'이 누군가의 '불편함'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런 생각을 나눠보고자 한다. 사실 정확한 통계를 가지고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고 살아온 경험에 의한 것이니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은 미리 밝혀둔다. 



1. 한국의 택배/우편/배달 시스템은 정말 싸고 빠르다. 


미국에 살다 보면서 택배나 우편 시스템을 경험하다 보면 비싼 비용에 한번 놀라고, 우체국과 택배 사무소에서 느릿느릿 일하는 사람들을 보고 울화통이 터진다. 한국에서는 공짜 혹은 정말 저렴한 비용으로 가구를 배달받고 설치를 할 수 있지만, 미국에서 IKEA에서 사서 배달을 시키면 기본이 $100이다. 물론 설치는 따로 비용을 내야 한다. 그에 비해 한국은 2,000 ~ 5,000원이면 어디든 물건을 보낼 수 있고, 집에서 물건을 받아 볼 수 있다. 그리고 정말 빠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택배 하나 배달하면 500원을 손에 쥘 수 밖에 없는 저임금의 택배기사와 과로로 자살을 하는 집배원들의 희생이 우리가 누리는 편리함을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면 미안함과 마음의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미국에서 우체부가 과로로 자살을 하거나, 택배기사의 저임금이 사회적 이슈가 된 적이 없는 걸로 봐서는 우리가 누리는 편리함이 가져오는 택배기사와 집배원의 '불편함'의 결과라는 생각에 마음이 불편해진다. 


2. 한국의 의료비용과 서비스는 정말 싸고 편리하다. 


미국에서 택배비용보다 더 깜짝 놀라는 건 한국과 비교할 수 없는 의료비이다. 첫째 아들의 어린이집 입학을 위한 간단한 소아과 검진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보험 적용이 되었는데 불구하고 자기 부담금을 $30을 내야 했다. 한국이었으면 몇천 원에 해결할 수 있는 검진이었지만 여기서는 10배 이상의 돈을 내야 했다. 그리고 사람들의 추천을 받은 의사에게 예약을 하려고 했더니, 본인이 맡고 있는 환자가 이미 너무 많아서 신규 환자를 이제 받지 않는다라는 답변을 받았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 하는 일이다. 내가 담당하는 환자수를 정해놓고 신규 환자를 받지 않는다라고 선언을 하는 한국 의사가 있을까? 종합병원의 유명한 의사에게 진료받기 위해 길게 줄 서 있는 환자가 정상인 나라에서 살아오다 이런 대답을 들으니 충격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한국에서 받는 의료 서비스와 여기 미국에서의 의료 서비스를 비교해보면 분명 차이는 있었다. 한국에서 의사들은 1분도 되지 않는 시간에 환자를 보고 진단하고 약 처방을 한다. 질문을 하고 싶어도 질문을 받아주는 의사들은 거의 없다. 수많은 환자들이 컨베이어 벨트에서 처리되듯이 의사들은 빨리빨리 진료를 끝낸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간단한 소아과 검진인데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자세히 물어보고 살펴본다. 난 그냥 대충 써주면 될 것 같은데, 세세히 정석대로 살펴본다. 


이런 차이를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저렴한 의료서비스를 누리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원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의료 수가체계와 이를 뒷받침하고 있는 의료 종사자들의 희생이 있다. 한국의 간호사들과 간호 조무사들은 박봉과 강도 높은 노동을 견뎌야 한다. 미국에서도 간호사들의 업무는 힘든 일은 분명하지만 고소득 전문 직업 중에 하나로 대접받는다. 우리가 누리는 싼 의료비용은 분명 누군가가 그에 대한 대가를 치루어서 만들어지고, 그 가격에 맞는 서비스가 제공 될 수밖에 없다. 그런 사실들이 내 마음속에 불편함을 느끼게 한다. 


3. 한국 식당에서는 팁을 주지 않아도 된다. 


미국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 젤 아까운 게 팁이다. 식당에서 먹는 음식값도 한국에 비해서 훨씬 비싼데, 세금도 따로 내야 하고 거기에 또 팁도 줘야 한다. 정말 아깝다. 한국에는 맛있고 싼 음식이 지천에 널렸는데, 정말 맛집으로 유명한 곳도 한 끼 식사에 만원이 거의 넘지 않는다. 미국에서는 패스트푸드가 아니면 대체로 한 끼 식사에 10불이 넘고 거기에 세금과 팁을 줘야 한다. 그런데 그 팁으로 인해서 식당 서빙이 꽤 괜찮은 직업이 된다. 내가 아는 동생은 유학시절 고깃집과 초밥집에서 일하면서 벌은 돈으로 학비를 대면서 대학을 졸업하고 석사까지 마쳤다. 그리고 몇 년 전에 LA의 유명한 곱창집에서 밥을 먹을때 우리 테이블을 서빙을 하고 있던 한국에서 온 대학생은 어학연수 왔다가 알바로 식당 서빙을 하면서 벌어들이는 벌이를 경험하면서 한국에 돌아가지 않고 미국에 머물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는 이야기를 내게 했다. 그게 과연 장기적으로 현명한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장사가 꽤 되는 식당의 서빙이 꽤 나쁜 직업은 아닌 건 확실한 것 같다. 그럼 우리는 어떨까? 난 팁을 주지 않아서 정말 편하고 좋긴 한데,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그 직업에 만족하고 꿈을 이룰 수 있는 벌이를 하고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4. 한국은 어디를 가던지 24시간 편의점이 널려있다. 


한국은 어디를 가던지 편의점들이 정말 많이 있다. 심지어는 50m 간격으로 편의점들 여러 개가 있는 경우도 많이 있다. 그리고 그 편의점은 24시간 365일 쉬지 않는다. 미국은 기본적으로 뭔가를 사려면 차를 타야 되고, 그리고 24시간 하는 편의점이 아닌 경우도 많다. 그리고 우리처럼 편의점끼리 다닥다닥 붙어있지도 않다. 이건 우리 어머니가 편의점을 10년 가까이 경영을 해보셔서 잘 아는 거지만, 사람들의 누리는 그 편리함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편의점 점주는 일상의 작은 행복들을 모두 포기해야 한다. 어머니는 편의점을 운영하는 동안 명절을 포함해서 단 하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알바가 나오지 않는 명절은 제일 힘든 날이었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경쟁 편의점들은 소비자에게는 편리함이지만, 편의점 점주에게는 경쟁자이다. 장사가 조금이라도 잘되면 근처에 경쟁 편의점이 생길까 봐 노심초사해야 했다. 


5. 한국은 세금이 싸다 


한국은 대표적으로 실효세율이 낮은 나라이다. 많은 사람들이 세금, 국민연금, 건강보험에 대해서 불만이 있을 수 있겠지만, 선진국과 비교하면 정말 실효세율이 낮은 나라이다. 유럽과 비교하면 비교가 안 되는 세율이고, 선진국중에 가장 세금이 여유로운 나라인 미국과 비교해도 현격히 낮다. 같은 1억 원의 연봉을 받아도 미국에서는 세금을 많이 떼어서 살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종종한다. 한국은 소득세도 낮고, 부동산 보유세도 낮다. 한국에서는 건물주중에 임대 소득을 제대로 신고하는 사람들이 드물다. 미국에서 세금 탈루는 정말 중범죄이기 때문에 세금을 탈루한다는 생각 자체를 잘 하지 않는다. 한국은 세금 안 내고 버티는 부자들이 정말 많다. 한국은 정말 건물 많고 돈 많은 부자들이 살기 편한 나라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분명 우리가 느끼는 불편함이 있다. 사회 안전망이 OECD 최저 수준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있고, 국방은 최저임금도 안 되는 돈을 받고 징병되는 인력들로 채워지고 있고, 경찰도 의경이라는 이름으로 저임금의 경찰인력으로 채워진다. 현장 공무원들은 여기저기서 사람이 없어서 이것도 못하고 저것도 못한다고 난리이다. 오늘 뉴스를 보니 항공 안전을 감독하는 현장 공무원이 국제 기준으로 봤을 때 80명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20명이 있다고 한다. 소방관은 규정 인력보다 2만 명이 부족하다고 한다. 조류독감이라도 돌면 과로사로 죽는 공무원들이 종종 나온다. 사회복지 공무원도 격무에 시달려 우울증으로 인해 자살을 하는 사람들이 나온다. '작은 정부'라는 이상향은 우리에게 적은 세율의 편리함을 누리게 해주지만, 분명 그 '작은 정부'는 종종 우리가 필요할 때 우리를 도와주지 못하고, 사회전반에 필요한 국가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많은 현장 공공 노동자들의 희생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은 정말 편한 나라이다. 내가 택배 노동자, 의료계 종사자, 우체부, 편의점 점주, 소방관, 혹은 징병되어 일하는 군인, 의경, 그리고 격무에 시달려야 하는 사회 복지 공무원이 아니라면 한국은 정말 편한 나라이다. 누군가의 불편함이 우리가 누리고 있는 편함을 만들고 있고, 그 불편함의 당사자가 일단 내가 아니라면 그 편리함을 버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이게 정말 지속 가능한 사회로 가는 길인가에 대해서는 한 번쯤 의문을 가져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조금의 편리함을 버릴 용기가 있다면 우리 사회가 더 나은 사회로 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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