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

현재의 고민에 경중은 없다

by DukeRattler

"고민 중이야"


라는 말은 누구나, 정말이지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은 해봤을 법한 흔하디 흔한 말이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서도, 이 표현은 대부분의 경우에 틀린 용도로 사용되고 있음을 부정하긴 어렵다.


苦 [쓸 고] 悶 [답답할 민]


한자부터 가슴이 턱 막히는 이 단어가 '고민'의 진정한 의미이다. 우리는 쉽게 "고민 중이야"라고 말하지만 사실 얼마나 많은 경우에 그렇게나 괴롭고 힘들게 고뇌를 할까. 분명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거의 모든 "고민"은 사실 "생각"이다. 점심은 뭘 먹을지, 아아일지 카푸치노일지, 시험공부를 할지 말지. 인생은 매 순간이 결정이고, 선택의 연속이라 하지만 기실 모든 결정과 선택이 고민을 요했다면 아마 인간 수명은 지금의 반토막이 되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스트레스는 만악의 근원이라고 하지 않는가.


하지만 이를 인지하고도 '고민'을 한다면 그건 필시 정말로 힘들고 혼란스러운 숙고의 과정일 것이다. 고민인가 생각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그 선택의 기로에 선 본인 이외 그 누구도 아니다. 같은 상황일지라도 결정의 주체, 결정의 순간 등 모든 것에 따라 그건 생각도 고민도 될 수 있기 때문에.


극단적인 예시일지도 모르지만 위에 '생각'의 예시로 쓴 것들도 고민이 될 수 있다. '시험공부를 할지 말지'를 나처럼 게으르고 별 욕심도 없는 누군가가 논한다면 그건 필시 생각이다. 필요성은 알면서도 정말 단지 그냥 공부가 하기 싫은 것이다. 하지만 금전 사정상 고학점을 유지해서 장학금을 받아야만 하는 사람이라면? 건강 문제로 절대적 휴식과 안정이 필요하다면? 그들은 '고민'을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누군가 고민을 한다고 스스로 표명할 때 그 고민을 절하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설령 유사한 고민을 과거에 해봤던 자, 현재 안고 있는 자도 마찬가지이다.

같은 고민을 안고 있다고 한들 두 주체는 둘이니 같을 수 없다. 논리회로부터 이름, 얼굴, 가족, 지갑 상황, 호흡법, 경험 그 무엇 하나 같은 게 없다. 유사한 듯 보여도 그건 다른 고민이고 서로 비교대상이 될 수 없다.


"나도 다 겪어봐서 아는데"


라는 말 역시 본인이 -꼰-이라는 사실을 견고히 하는 것 이외에 그 어떤 효과도 갖지 못한다. 위에 쓴 대로 결국 같은 고민도 아닐뿐더러 이미 그 상황은 과거가 되어버린 사람에게 그 고민은 더 이상 고민이 아니게 되어버린지 오래다.

우리는 흔히 사춘기 시절의 고민을 얕잡아보곤 한다. 아침에 거울을 보며 새로 올라온 여드름에 일희일비하고, 친구에게 하고 싶은 말을 솔직하게 하기 망설여져 밤을 지새우는 그러한 일들을 "학생 때는 다 그런 거지"라는 말로 평가절하해버린다. 하지만 스스로 '사회의 고민'을 겪어봤다고 주장하는 그런 사람들을 회춘시켜 다시 그 시절로 돌려보내 놓는다면 그때도 그 사람들은 그렇게 남 얘기하듯 평온하게 "허허 학생 때는 다 그런 거지. 그런 건 고민도 아냐"라고 할 수 있을까. 인생 후배들의 고민이 덧없이 보이는 것은 그저 그것이 우리에게 과거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고민이었지만 좋든 싫든 결과론적으로 이미 끝난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것이 현재의 고민이라면, 그 고민에 경중은 없다. 올라간 전셋값에 대출을 알아보는 회사원, 어떤 대학, 어떤 학과에 원서를 쓸지 망설이는 고3, 첫 생리에 머리가 복잡해진 여학생도, 예방주사가 너무도 무서운 유치원생도 모두 같은 무게의 고민을 안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고민을 대할 때는 마음을 가볍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혹시라도 분위기에 휩쓸려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 한번 판단해보는 것도 좋다. 잠시 고개를 돌려 모른 척 다른 것을 바라보는 것도 좋다. 무엇보다 하면 안 되는 것이 자신의 고민에 먹혀 언제까지고 그 고민을 현재의 문제로 만드는 것이다. 무거울 수밖에 없는 것이 너무나 무겁다며, 쓸 수밖에 없는 것이 너무나 쓰다며 한탄하고 왜 이렇게 아픈가, 왜 이렇게 힘든가 자괴감에 짓눌려서 무엇하나. 원래 그런 것이니 나 밖에 이해할 수 없는 이 상황을 나라도 좀 마음 가벼이 여겨줘야 하지 않을까. 계략을 통해서 칼에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성을 점령하던 옛 한나라의 대원수 한신도 말하지 않았는가: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선이다"라고. 도망칠 수 있다면 도망쳐도 좋고, 해결할 수 있다면 단숨에 해결해버리는 것도 좋다. 시간을 벌어 과거로 만들어버리는 것도 좋고, "이게 정말 그렇게 고민할 일인가?" 자문하여 사실 고민이랄 것도 없이 그냥 생각이나 해보면 좋았을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 역시 해답이 될 수 있다. 도저히 탈출구가 없는 고민이라면 결국 시간이 지나 과거가 되어 해결되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더더욱 괜히 곱씹으며 쓰디쓴 눈물을 흘리는 것보다 그냥 후딱 삼켜 넘겨버리고 알아서 소화되기를 바라는 것이 상책 아니겠는가.


타인의 고민을 대할 때는 그냥 입을 다무는 것이 좋다. 그냥 입 다물고 비음으로 "음~"만 해서 충분히 듣고 공감만 해주도록 하자. 저쪽에서 먼저 노골적으로 조언과 도움을, 구체적인 경험담을 요구하지 않는 이상 청자가 무슨 말을 해도 그건 오늘 아침 내 방 창문 앞에서 짹짹대던 참새 지저귀는 소리나 다름없다. 잠을 잘 자서 기분이 좋은 편이라면 아름답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밤샘으로 딥빡해있는데 들려오면 그냥 다 소형 치킨으로 튀겨버리고 싶어지는 그런 소리 말이다.


늘 '생각'하는 것이지만 이과라서 그런지 그냥 고질병이 하나 있다. 글 맺음을 꼭 '결론'으로 내고 싶어 진다. 애초에 서론도 본론도 기승전도 모두 그냥 내 마음대로 끄적이는 글을 쓰면서도 결은 뚜렷하고 명확하기를 바란다니 스스로 느끼기에도 참 부질없다. 뭐, 그런 의미에서 그냥 이렇게 갑자기 끝내야지. 옼케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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