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차별
단순한 제목 ‘13th’이 의미하는 것은 ‘수정헌법 제13조’다. 흑인 여성 ‘에바 듀버네이(Ava DuVernay)’가 감독하고 넷플릭스에서 2016년에 제작한 이 다큐멘터리는 미국 이민자나 미국의 실체를 알고 싶은 모든 분이 반드시 봐야 할 영화다. 영화 전문 매체가 ‘2016 올해의 영화 TOP 3’에 선정했기 때문도 아니며, 평점 10점을 받았기 때문도 아니다. 진실 여부를 떠나 미국의 겉모습이 아닌 속살을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옳았던 선택이든 잘못된 선택이든 스스로가 아닌 부모의 결정에 의해 자식들이 영원히 살아갈 나라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미국의 재소자의 수를 전 세계와 비교하면서 시작한다. 미국 인구를 3억 5천, 세계 인구를 70억으로 가정하면 미국은 전 세계 인구의 5%에 해당하지만, 미국 교정시설에 수감된 범법자의 수는 전 세계 재소자의 25%를 차지한다. 이유가 뭘까? 미국인들이 타고난 범죄자라서 그럴까? 아이러니하게도 영화는 그 원인을 1865년에 공포되어 미국 땅에서 노예제도를 폐지한 ‘수정헌법 제13조(Thirteenth Amendment)’에서 찾는다.
두 개의 조항으로 이루어진 수정헌법 제13조의 전문을 보자.
제1항 : 어떠한 노예 제도나 강제 노역도, 해당자가 정식으로 기소되어 판결로써 확정된 형벌이 아닌 이상, 미합중국과 그 사법권이 관할하는 영역 내에서 존재할 수 없다.
제2항 : 의회는 적절한 입법을 통하여 본조(本條)를 강제할 권한을 가진다.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가 고전경제학 논리라면, ‘노동자(Employee)는 잘리지 않을 만큼만 일하고, 고용주(Employer)는 관두지 않을 만큼만 준다’는 것이 근대 심리 경제학 이론이다. 이를 근거하면 노예제도만큼 자본에게 효과적인 제도는 없다. 자본에게 그토록 좋은 노예제도가 하루아침에 없어졌다고 해서 그들은 손 놓고 방관만 하지 않았다. 13조 제1항에 단서를 달아놓은 것이다. 바로 ‘확정된 형벌이 아닌 이상’이라는 단서다.
이를 바꿔 말하면 ‘형벌이 확정되기만 하면’ 노예상태로 둘 수 있다는 뜻이 된다. 범법자를 양산하여 이들에게 유죄를 확정하고, 13조 제2항에 의해 적절하게 법을 만들어 강제할 수 있다면 노예제도는 없어지는 게 아니다. 어떻게 범법자를 많이 만들어낼 수 있는지 연구하면 된다. 마침 사진이 보급되고 있었다. 이를 최대로 이용해서 흑인들을 범죄자로 묘사한다. 흑인 이 범죄를 저지르면 신문에 대서특필하여 공포심을 불어넣는 방법이다.
20세기 초에 영화가 보급된다. 1915년에 제작되어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한 영화 ‘The Birth of a Nation(국가의 탄생)’에서 흑인(실제로는 검게 분장한 백인이 연기)을 백인 소녀를 겁탈하는 충격적인 악마로 묘사한다. 현실에서는 백인이 흑인 여성을 겁탈하는 사건이 훨씬 많다고 하더라도, 사실과는 상관없이 목적이 있는 그들은 영화에서 신문에서 소설에서 흑인을 일반인에게 공포의 대상으로 만든다. ‘엉클 톰스 캐빈’에 등장하는 착한 ‘톰 아저씨’는 어디에도 없었다.
1960년대 열 살까지 살았던 용산구 한강로에 위치한 동네에 미군부대가 있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흑인병사를 보면 왠지 무서워 피하던 기억이 있다. 6~70년대 TV나 극장에서 본 할리우드 영화에서도 마약을 하거나 악당으로 등장하는 인물로 흑인이 많았다고 기억한다. 이런 사실은 흑인에만 국한되고 같은 유색인종인 아세안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일까.
19세기 대륙횡단철도가 건설될 때 중국인들에 대한 착취는 유명하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같은 이민자들인 독일인들은 그냥 두었지만 일본인들은 네바다에 만든 임시 수용소에 감금했다. 일본말을 전혀 할 줄 모르는 2세, 3세까지 수용했으며, 그들 중에는 미군으로 참전하여 팔과 다리, 또는 생명을 잃고 돌아오는 자식의 부모들도 있었다. 미국인들 중에서 한국인, 중국인, 일본인을 구분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1992년 LA폭동 시 유독 한인들 피해가 많았던 것에 대해, ‘LA 타임스’의 한인에 대한 악의적인 기사나 한인 상가 약탈을 방조한 LAPD에 아무 책임이 없을까.
13조 제2항 ‘적절한 입법’은 정치인들의 역할이다. 범죄자 양산 시스템의 선봉장들이 바로 닉슨, 레이건, 부시 등 공화당 출신 대통령들이다. ‘범죄와의 전쟁’, ‘마약과의 전쟁’을 빙자하여 어슬렁거리거나 배회한다는 이유로 흑인들을 체포했고 백인으로 이루어진 배심원들은 ‘길티’로 판단했다. 이를 조직화한 것이 1973년 만들어진 ‘ALEC(American Legislative Exchange Council)’이라는 비영리단체다.
ALEC의 회원은 기업인과 공화당 정치인이 주 회원으로 자본과 권력이 결합한 로비단체다. ‘제한된 정부, 자유 시장, 연방주의(Limited Government, Free Markets, Federalism)’인 단체의 모토를 봐도 공화당을 빼닮았다. 공화당 의원들과 작당하여 감세와 같은 기업에 유리한 법을 만드는 로비스트가 바로 단체의 목적이다. 영화에서는 ALEC의 주요 회원기업으로 CCA(Corrections Corporation of America)를 언급한다. 글자 그대로 사설 교정시설인 셈이다. 레이건 시절부터 재소자가 급격히 증가하여 정부가 가진 기존 시설에 수용할 수 없게 되자 이들을 수용할 회사 설립을 허가한 것이다.
재소자의 수가 바로 수익으로 연결되는 구조를 가진 CCA는 재소자를 노예나 다름없는 저비용으로 강제노동을 시킴으로써 ‘꿩 먹고 알 먹는 식’의 이익을 창출한다. 여론의 지탄을 받아 지금은 ‘CoreCivic’으로 이름도 바꾸고 ALEC에서도 탈퇴했지만 역할은 바뀌지 않았다.
한 시간 40분의 러닝타임을 다 소개할 순 없지만, 영화의 마지막은 다음과 같은 통계치를 제시하면 끝난다. 일생동안 수감 가능성이 백인은 17명 중의 한 명에 비해 흑인은 3명 중의 한 명이고, 미국 인구에서 흑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6.5%에 불과하나 수감자의 비율은 40.2%에 이른다고.
▼ 재소자의 급격한 증가를 보여주는 화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