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상
미국에서 백인들이 중국인을 비하할 때 사용하는 슬랭이 ‘칭키(Chinky)’다. 흑인을 ‘니거(Nigger)’로 호칭하고 우리가 중국인을 경멸할 때 사용하는 ‘짱께’라는 비속어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중국인과 한국인, 일본인을 구분하지 못하는 백인들은 동아시아인을 경멸할 때도 칭키라는 저속어를 사용한다. 특별히 한국인을 가리키는 비속어에 ‘Gook’이 있다. 한국전쟁에 참여했던 미군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그렇게 불렀다는 설이 그럴듯한 것은, 미국이 참전했던 베트남 사람들도 ‘Gook’이라고 불리기 때문이다.
‘Gook’은 1981년생 코리안-아메리칸 2세인 ‘Justin Chon(한국명: 전지태)’이 감독하고 주연한 흑백영화로 배경은 1992년 LA 남부 Paramount 지역이다. 엘에이 폭동 지역 사우스 센추럴은 아니지만 폭동의 기폭제가 된 로드니 킹 폭행사건과 폭행 경찰의 무죄판결이 어떻게 한흑간 갈등을 불렀는지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며, ‘카밀라’라는 11세 흑인 소녀와 일라이(저스틴 분)의 우정을 통해 한흑간에는 아무 문제가 없음을 그리고 있다.
가든 그로브에서 태어나고 어바인에서 성장한 감독이 밑바닥 한국 교민들의 삶을 얼마나 정확히 묘사했는지 알 수는 없으나, 영화 속의 일라이와 그의 동생 대니얼의 인생은 끔찍할 정도로 비참하다. 툭하면 스페니쉬와 흑인 건달들에게 얻어터지고 부친에게 물려받은 가게에서 여자 신발과 운동화를 팔며 생계를 유지한다. 학교를 땡땡이치고 신발 가게에서 일라이와 어울리는 카밀라가 일라이 승용차 본넷 위에, 동네 건달들이 스프레이로 칠한 낙서를 보고 묻는다.
“Eli, what does that mean?” - 저거 뭔 말이야?
일라이가 대답한다.
“Means a country in Korean” - 한국말로 국가라는 뜻이야.
“한국은 코리아, 중국은 차이나, 영국은 잉글랜드”
“그럼, 아메리카는?”
일라이가 자신의 가슴을 가리키며 대답한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말인데, 미국이라고 해.”
이 부분에서 감독은 ‘Me Gook’, 즉 ‘내가 바로 이 나라’라는 메타포를 사용한 것으로 보았다. 미국은 더 이상 기회의 땅이 아니라는 외침의 은유법은 아니었을까.
일라이의 아버지와 카밀라의 엄마가 영화에 등장하지 않는 대신, 그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묘사하는 대화가 나온다. 총을 든 강도에게 돈을 뺏기지 않으려고 저항하다 주인과 점원이었던 일라이 부친과 카밀라의 엄마가 살해된다. 그리고 카밀라의 오빠는 한인들을 생명보다 돈을 소중하게 여기는 쓰레기로 취급한다. 실제로 1992년 엘에이 폭동 직전까지 사우스 센트럴 지역에서 장사하는 한인들은 해마다 십 수 명에서 수십 명이 살해되었다고 한다.
영화 속 김 영감이 운영하는 리쿼 스토어에서 벌어지는 카밀라와 김 씨의 언쟁은 1991년 두 순자 씨 사건을 연상하게 하는 이 영화의 대사는 말끝마다 ‘Fuck you’ 붙는 슬랭의 연속이다. 카밀라는 자신의 오빠가 약탈하려는 신발가게를 지키려다가 오발로 숨을 거두고 일라이와 대니얼 두 형제는 자신의 가게에 불을 지르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이민 1세대이자 부친의 친구인 김 영감의 주장, 즉 자식들에게 나은 삶을 주기 위해 이민을 왔다는 부모의 세대와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 같았다.
▼ 일라이의 차 본넷에 스프레이로 낙서된 ‘Gook’
▼ 김 영감이 일라이에게 아버지에 대한 회상을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