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소 이상하게 보이는 제목을 가진 이 책의 저자는 서울에서 태어나 7살 때 부모를 따라 뉴욕에 정착한 이민진이라는 여성이다. 이민진은 예일에서 역사를 전공하고 조지타운 로스쿨을 나와 변호사로 일했으나 간염 보균자로 건강이 나빠져 소설가로 전향한 이력을 가졌다.
이 소설은 '파친코(Pachinko)'에 이은 그녀의 두 번째 작품으로 발표된 2007년 당시 ‘The Times’에 의해 톱 10 소설, 뉴욕타임스 편집진 추천, ‘SF Chronicle’에 의해 그해 괄목할만한 소설, 월스트리트 저널에 의해 북클럽에 선정되었다. 한국에는 그다음 해에 소개되었다. ‘Free food for Millionaires’가 원제로 번역본 그대로다.
어제 소개한 영화 ‘Gook’이 서부에서 비참하게 생존하는 한인 형제의 이야기라면, 이 소설은 동부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는 부모 밑에서 자란 자매가 주인공으로, 한인 여성들이 주류사회에 어떻게 동화되고 살아가는지 그리고 있다. 성공한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프린스턴, 하버드, MIT, 웨슬리 등 명문대를 다니거나 졸업하고 맨해튼에 거주하며 월스트리트 금융가를 무대로 연봉이 7 디지트(백만 불)를 넘는다.
500페이지가 넘는 책 두 권으로 이루어진 소설은 경제학을 전공하고 프린스턴에서 졸업 후 퀸즈의 낡은 부모 집으로 돌아온 케이시가 아버지 조셉에게 말대꾸를 하다가 싸대기를 맞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작가는 한국문화와 미국 문화의 충돌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았다. 4년 동안 프린스턴 기숙사에 기거하며 백인들과 자유를 맘껏 누렸던 케이시는 섹스와 술, 담배, 마약에도 익숙한 미국인(?)으로 묘사된 것을 보면 그렇다.
이런 케이시에 비해 그녀의 교회 친구이자 또 다른 주인공인 엘라는 정숙하고 모범적으로 전형적인 한국 여성이다. 그녀의 부친 심 박사는 케이시의 아버지 조셉 한과는 전혀 다르게 맨해튼에 오피스를 갖고 있는 안과의사로 인텔리다. 이렇게 확실히 다른 아버지를 둔 두 여성은 신분의 차이만큼이나 출발점도 다르다.
같은 프린스턴을 졸업하고도 백인 남성들은 쉽게 최고의 직장을 얻지만 케이시는 훨씬 더 좋은 성적으로 졸업하고도 면접조차 볼 기회가 없어 계약직으로 시작한다. 작가가 제목에 ‘공짜 음식’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도 이에 대한 비유적 표현일 것이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불평등을 경험하는 이민자들의 이야기를 작가는 하고 싶었을 것이다. 물론 모든 작품들이 그러하듯 여기에는 작가 스스로의 경험이 배경에 있으리라고 본다.
소설가든 영화인이든 사업가든 자녀들이 미국 주류사회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것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원하는 바일 것이다. 어제 소개한 ‘Gook’의 엔딩이 끝나고 제작에 참여한 사람의 이름들이 올라갈 때 많은 이들의 라스트 네임이 한국인이었다. 물론 중국인이나 베트남인으로 보이는 이들도 없지 않았지만.
그렇다면 우리 부모세대들은 그들이 만든 영화를 보고 그들이 쓴 소설을 부지런히 읽어줄 의무가 있다. 그게 그들을 돕는 길이고 힘이 되어주는 방법이다. 아무 도움도 주지 못하면서 막연하게 주류사회에서 일하기만 바랄 수는 없지 않을까. 그게 이런 영화를 일부러 소개하고 소설을 찾아 읽는 까닭이며 앞으로도 그런 책과 영화가 있다면 계속 소개할 것이다.
무슨 인종차별이나 인종 비하 발언 같은 구태의연한 미국의 문제점을 제기하려는 의도와는 거리가 멀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시선을 두지 말고 달을 바라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스스로 인종에 대한 열등감을 갖고 있지 않다면 말이다.
이 소설에 대한 미국 언론의 찬사가 사실인지는 알 수 없으나 책의 겉면에 적힌 글은 이렇다.
뉴스위크 – 사랑과 직업, 가족에 대한 의무, 돈, 신념 등의 문제를 잘 짜인 다양한 시각으로 형상화함으로써 뉴욕판 카스트제도를 들춰낸다.
뉴욕타임스 – 미국 버지니아공대 조승희 총기난사사건 이후 한인들의 정체성 문제를 파헤친다.
USA Today – 미국 언론에 화제가 된 책! 한국계 미국인들의 실제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소설로 꼭 읽어봐야 한다.
퍼블리셔스 위클리 – 세대 간 문화충돌을 다룬 이 책은 다양한 독자들로부터 광범위한 공감을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이렇듯 극찬을 받았다 하더라도 이 책을 끝까지 읽는 인내력을 발휘하지는 못했다. 최근에 소설을 쓰겠다는 생각을 구체화하면서 작가의 마음으로 책을 읽는 버릇이 생겼는데, 전혀 취향이 맞지 않았던 탓이다. 170센티라는 케이시의 늘씬한 키에 비해 아버지 조셉은 160센티도 안 된다는 것도 일반적이지 않지만, 프린스턴에 갈 정도의 인물이 그렇게 방탕하다는 것에도 공감이 힘들었다. 섹스와 혼외정사, 불륜 등이 소재인 것도 취향에 맞지 않아서 300 페이지까지만 정독하고 나머지는 대충 훑어보고 스토리만 이해하는 것으로 끝냈다. 그렇지만 이런 소재의 책을 좋아하는 분도 분명 있을 것이다.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은 미국인들이 4천만이 넘어 인구의 13%에 이른다고 한다. 그 숫자 중에는 내 아이 셋도 포함된다. 그들이 그리고 그들의 자식들이 인종 같은 선천적 이유로 마음에 상처받는 일이 없기만을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