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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조 Apr 24. 2018

쓰레기

쓰레기와 시민의식

 살고 있는 아파트가 800가구를 넘는 대단지라 곳곳에 쓰레기 집합장이 있다. 집합장마다 규정 플라스틱 백을 사용해서 생활쓰레기 버리는 장소와 함께 분리되어 있는 종이나 플라스틱, 철제류 등 재활용 수거함과 음식물 쓰레기 수거함을 날마다 몇 번에 걸쳐 새벽이나 오전에 차량들이 종류별로 수거해 간다.


 새벽에 조깅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그런 수거차량을 자주 만난다. 문제는 그 양이 엄청나다는 것이다. 생활쓰레기를 버리는 곳은 넘쳐나기 일쑤고 규정 봉투를 사용하지 않은 쓰레기도 가끔 보인다. 음식물 수거함도 항상 가득하다. 그래도 제주의 그곳보다 깨끗한 것은 경비원의 수고 때문일 거라고 짐작한다. 내 또래로 보이는 경비원이 수시로 흩어진 쓰레기를 정리하고 음식물 수거함 주위 지저분한 것들을 물로 청소한다.


 여수로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어떤 젊은 엄마가 총각김치를 통째 버리는 것을 보았다. ‘아니, 저걸 왜 버리지!’ 꽤 많은 양이어서 아깝기 그지없던 나는 머리를 회전시켰다. 모르긴 몰라도 섬이나 농촌에 사는 시어머니가 보냈을 것이고, 시댁을 싫어하는 젊은 며느리가 버리는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했다. 남자의 상식으로도 김치는 버릴 것이 없다. 아무리 오래된 김치도 씻어서 찌개로 해먹을 수 있다. 게다가 음식은 먹으면 양식이 되지만 버리면 쓰레기 중에서도 최악이 된다.


 아무것도 모르던 처음에는 음식물 쓰레기통을 구입해서 며칠 동안 모았다가 버렸지만 여름에는 하루만 지나도 냄새가 났다. 지금은 비닐봉지에 버렸다가 매일 버린다. 쇼핑할 때 가져오는 비닐봉지가 너무 많아서 충분하다. 버려야 하는 음식물 쓰레기도 거의 없다. 뭣이든 맛있어하는 천박한 입맛과 어떤 음식이든 소화시키는 튼튼한 위장을 타고난 덕분이다. 과일의 껍데기나 야채를 다듬은 부산물이 내가 버리는 음식물 쓰레기의 대부분이다.


 한국에서 아무리 쓰레기가 많다고 해도, 소비의 천국 미국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반면에 미국에서는 아무리 쓰레기가 많아도 버리는 데는 한국에 비해 너무 쉽다. 뉴저지에서는 코스트코에서 구입한 커다란 플라스틱 백에 쓰레기를 가득 채워 우체통 옆에 두면 되었고 음식물 쓰레기는 싱크대 배수구에 넣고 모터만 돌리면 깨끗하게 갈아져 배출되었다. 재활용 쓰레기는 지정된 요일에 일반 쓰레기처럼 내놓으면 되었다. 캘리포니아에서는 페트병이나 캔 같은 재활용 쓰레기들을 넣으면 몇 센트씩 마트에서 사용할 수 있는 쿠폰으로 바꿔주는 기계가 있어 편리했다.


 한국살이에서 눈살을 가장 찌푸리게 하는 것 가운데 쓰레기가 있다. 7년 전 역이민하여 제주에 처음 정착했을 때 낯선 광경이 있었다. 차량이 다니는 도로나 인적이 드문 밭두렁 등 도처에 버려진 파란색의 캔이었다. 맥주나 음료수용으로는 너무 작았다. 일부러 주워서 살펴보니 ‘레쓰비(Let’s be)’라는 커피였다. - 나는 아직도 이게 무슨 뜻인지 모른다. Let’s be 다음에 다른 단어가 이어져야 의미가 생긴다.


 언제부터 그토록 커피를 사랑하는 국민이 되었을까. 철부지 아이들은 사탕을 먹는 그 자리가 껍질을 버리는 장소였고, 어른들은 마지막 담배를 꺼내는 장소가 빈 갑을 버리는 곳이었다. 담벼락과 건물 사이의 좁은 틈새는 온갖 쓰레기가 가득했고, 현무암 바위들이 보기 좋은 계곡에는 버려진 폐타이어나 TV, 냉장고 같은 가전제품이 흉측했다. 제대로 수거하지 않은 농사용 폐비닐과 비료부대가 바람에 날아가 걸린 나무와 전봇대에서 흉물스럽게 나부꼈다.


 올레길에도, 해변에도, 도심에도, 인적이 드문 후미진 곳에도 제주에는 쓰레기가 넘쳐났다. 관광객이 많은 곳은 청소하는 바람에 그나마 나았다. 처음 올레길을 걸을 때는 쓰레기를 줍기도 했으나 같이 걷던 집사람으로부터 핀잔을 받았고 또한 몇 사람의 노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어서 포기하고 말았다.


 몇 년 전 역이민을 계획하는 부부를 제주에서 만난 적이 있다. 외국인으로서 한국살이의 질문에 답하면서 장점만 부각하였는지 그분들은 단점을 물었다. 주저 없이 더럽다는 것을 들었다. 퀴퀴한 냄새는 익숙해지면 그만이지만 도처에 널린 쓰레기는 감수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여수에 살면서 다행스러운 것은 제주보다는 깨끗하다는 것이다. 제주보다 부지런히 청소하는 것인지, 시민의 의식 수준이 제주보다 높은 것인지는 알 수 없다.


 3년 전 동남아를 여행할 때다. 다닌 곳 중에 가장 못 사는 나라는 아마도 라오스였을 거다. 차도 별로 다니지 않는 시골길을 몇 시간 지났는데 보이는 것은 온통 비닐이었다. 그곳에서는 국물이 있는 길거리 음식을 비닐에 담아주었는데 그것이 온갖 곳에 굴러다녔다. 지구가 멸망한다면 저놈의 비닐 때문일 거라는 생각이 그때 문득 들었다. 라오스가 가장 심하다 뿐이지 베트남과 태국도 비슷했다.


 여수에 살면서 처음에는 김치나 육류 같은 음식도 인터넷으로 쇼핑해서 택배로 받았다. 그런데 스티로폼에 아이스팩까지 과도한 포장에 편치 않았다. 아무리 산다는 것이 쓰레기를 생산하는 일이라고 해도 불필요한 부피가 큰 쓰레기 양산에 동참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트에서 물건을 고를 때도 포장이 과도하면 꺼려졌다. 택배가 일상화된 세상에서 버려지는 박스도 엄청나다. 박스를 버릴 때 칼로 테이핑을 따서 납작하게 만들어 버려야 하는데 그러지 않아서 버리는 장소는 부피만 큰 빈 박스로 항상 넘친다.


 아파트가 없었던 어릴 때는 집집마다 시멘트로 만든 쓰레기통이 대문 옆에 있었고 가장 부피가 큰 쓰레기는 연탄재였다. 그걸 청소부들은 손수레로 실어 날랐다. 종을 치며 다니는 두부장수에게 두부를 살 때는 빈 그릇을 들고나갔고, 시장을 본 엄마는 가지고 간 장바구니를 힘들게 들고 돌아왔다. 지금은 두부 한 모도 호박이나 오이 한 개도 비닐에 쌓여있다. 과자나 사탕도 봉지를 뜯으면 낱개가 또 포장되어 있다. 커피 한 모금에도 물을 마셔도 캔이나 페트병이 버려진다. 어른도 아이도 매 순간 쓰레기를 생산한다.


 그렇게 70억 인구가 매일 쏟아내는 쓰레기에도 불구하고 지구가 멀쩡하다는 사실이 정말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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