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욕
(이 글은 저처럼 저급한 수컷들에 대한 이야기로 고매한 분들은 해당되지 않는 글이라는 것을 먼저 밝힙니다. 남성우월주의자도 아니지만 페미니스트도 아니어서 여성분들에게는 불쾌한 단어나 내용이 있을 수 있다는 것도 미리 알려드리며 가급적 읽지 마시기를 권합니다. 한심한 수컷의 음담패설에 불과할 수도 있으니까요. 또한 가급적 어감을 살리기 위해 상스런 단어를 그대로 사용했다는 것도 미리 이해를 구합니다.)
미국에 살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주검을 접하기까지 안희정이라는 인물은 듣보잡이었다. 인간 노무현에 대한 공부를 시작하면서 ‘좌희정, 우광재’로 일컬어지는 안희정에 대해 알게 되었고, 그에 대한 호감을 갖는 계기가 되었으며 호감도는 2018년 3월 5일 오후 8시 무렵까지 계속되었다. 충남도지사로서 그의 낮은 행보와 투명하고도 서민 위주의 행정, 그리고 정의, 신뢰, 평화와 인권을 주창하는 도덕군자형 정치인으로서 차기 대권주자로서 손색이 없었다.
그런 그가 지난 월요일 저녁 한순간에 땅바닥으로 추락했다. 손석희 앵커의 팬으로서 웬만하면 뉴스룸을 놓치지 않는다. 손 앵커가 안희정 지사의 성추문을 언급한 시작 멘트를 들었을 때도 안 지사를 향한 음모라고 생각했을 만큼 그에 대한 개인적인 신뢰가 있었다. 하지만 김지은 씨와의 인터뷰를 보는 순간 김 씨가 사실을 말하고 있다는 것과 정치인으로서 안희정은 끝났다는 것을 동시에 실감했다.
이글의 목적은 자연인 안희정을 옹호하거나 비난하자는 것이 아니다. 어차피 실정법의 잣대로 판단될 것이기 때문이다. 대중 앞에서 정의와 인권을 부르짖으며 단란한 가정까지 가진 인물이 어떻게 성욕에 무참하게 무너졌는가를, 나 자신의 삶과 경험을 거울삼아 투영해보자는 게 글의 취지다.
정치인이 아닌 자연인으로서의 안희정은 65년 생으로 고려대 학생 시절 민주화 운동으로 투옥되는 바람에 군대가 가지 않았으며, 약관 24살의 나이에 고대 동기동창으로 한 살 위인 지금의 아내와 결혼하여 두 아들을 두었다. 전과자라 취업이 쉽지 않았던 탓에 국회의원 비서관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는 노무현을 만나면서 본격적으로 정치에 뛰어들었고, 노무현 사후에 얻은 대중의 인기를 배경으로 충남도지사를 연임한 경력의 소유자다.
그의 경력으로 보아 그의 인생 전체가 위선이라고 보이지는 않는다. 대중 앞에서 정의와 인권을 주창했던 그의 연설은 진심이었을 테고 도지사로서 충남도민의 민생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것도 사실에 더 가까울 것이다. 하지만 그는 열일곱 살이나 어린 여성을 수행비서로 데리고 다니며 싫다고 거부의사를 표시하는 여성을 도지사라는 지위를 이용하여 성욕의 대상으로 인권을 짓밟았다. 제정신이라면 또는 위선자가 아니라면 있을 수 없는 만행이다.
성욕은 식욕, 수면욕과 함께 인간의 3대 본능이다. 식욕과 수면욕은 생명을 유지하는데 필수고 성욕은 ‘호모 사피엔스’라는 개체의 번식과 유지에 불가결의 요소다. 처음으로 성욕이라는 본능을 느낀 것은 중학생 시절로 기억한다. 책이라면 닥치는 대로 읽던 시절이었다. ‘미야모도 무사시’라는 일본 무협지에서 남녀의 교접 장면을 처음 읽었지만 그게 무얼 의미하는지는 몰랐다.
겨울방학 때 친척집에서 선데이서울이라는 주간지를 읽은 적이 있다. 삼촌이나 고모가 여행 중 고속버스에서 읽으려고 샀다가 버린 것이었다. 따뜻한 아랫목에 깔린 이불속에서 ‘카사노바’라는 야릇한 내용의 연재물을 읽는데 돌연 꼬추에 힘이 들어가며 커져서 무의식적으로 흔들었더니 그곳에서 시작된 쾌감이 온몸에 퍼지면서 꿀럭거리며 오줌이 아닌 뭔가가 걷잡을 수 없이 쏟아져 나오는 쪽팔리는 경험(?)을 하고 말았다. 인생 최초로 겪은 사정이자 자위였으며 어른들 모르게 뒤처리를 하느라 애를 먹었다.
누가 알려준 것이 아니라 저절로 알게 되는 본능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고백이다. 그 이후로 관심은 자연적으로 이성에게 향했다. 그 관심은 공부에 지장이 있을 만큼 커서 한 번만 경험할 수 있으면 죽어도 소원(?)이 없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또래들 대부분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주위의 아이들은 ‘꿀단지’라는 제목의 음란서적을 돌려보고, 짐승의 성기까지 등장하는 춘화들을 학교에 가져와 끼리끼리 돌려보며 호기심을 채웠다. ‘꿀단지’라는 책을 본 적이 있는데 얼마나 지독한 내용이었는지 얼굴이 빨개졌던 기억은 내 또래의 허접한 수컷이라면 누구나 가진 추억일 것이다.
배고프고 졸린 것이 나쁜 짓이 아니라면 성욕구도 조물주에게 부여받은 본능의 하나일 뿐 죄악은 아니다. 더 맛있는 음식을 찾고, 더 편한 잠자리를 구하듯 성욕도 다를 것이 없어서 더 좋고 편안한 상대를 찾는 것도 본능이다. 그러나 아무리 배가 고프다고 남의 음식을 훔친다거나 졸린다고 편안한 침대를 찾아 남의 집에 들어갈 수는 없다. 본능을 해결할 수 없으면 인내하거나, 사춘기 남자들이 으레 그렇듯 손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으며 이는 불결한 것도 수치스러운 것도 아닌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호모 사피엔스라는 개체는 다른 생물과는 다르게 번식기가 존재하지 않는다. 시도 때도 없이 성욕을 느끼는 존재라는 의미다. 게다가 두뇌의 발달로 도덕심이라는 의식이 존재하는 유일한 생물체다. 조물주의 장난일지는 모르겠으나 남녀가 이성에게 느끼는 감정이나 성욕의 강도가 다르다는 것에 모순이 존재한다. 평생 남녀관계를 연구한 존 그레이(John Gray, 1951~) 박사의 저서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Men from Mars, Women from Venus)’에 의하면 그 성격이나 생각의 차이가 서로 다른 외계에서 살았던 외계인처럼 다르다고 주장한다.
진화생물학자의 분석도 비슷하다. 건강한 젊은 남자라면 한 번의 사정으로 2~3억 마리의 정자를 배출한다. 이론적으로는 유럽 가임여성 전체를 임신시킬 수 있는 양을 매일 만든다는 사실은 놀랍다. 반면에 여성은 한 달에 오직 한 개의 난자를 생성한다. 이것의 의미를 진화생물학자들은 이렇게 설명한다. 다른 개체의 수컷들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수컷도 자신의 유전자를 가진 자손을 최대한 많이 퍼뜨리기 위해 최적화되었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쉽게 바꾸면 본능적으로 바람을 피우는 존재라는 뜻이다.
반면에 한 달에 단 하나의 난자를 생성하는 여성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소중한 난자를 보호해주고 오랫동안 한눈팔지 않고 지켜줄 수 있는 이성에게 끌린다고 한다. 다른 말로 바꾸면 바람을 피우지 않는 남성에게 자신을 맡기려고 한다는 의미다. 이처럼 남녀는 사회 심리학적으로나 진화론적으로 태생적 모순을 갖는 존재다. 이 모순을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으로 이성과 도덕심 이외에 무엇이 또 있을까.
아르갈리 양은 한 마리의 수컷이 보통 25마리의 암컷을 거느린다. 적은 암컷을 거느린 수컷은 더 많은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 다른 수컷에게 도전장을 내미는데, 이때 두 마리의 수컷은 시속 100킬로가 넘는 속도로 박치기를 해서 승부를 겨룬다. 더 강한 수컷이 암컷을 잉태시켜 강한 유전자로 종족을 보존하기 위한 나름의 진화생물학적 방법이다. 젊은 남성이 사정할 때 시속 50킬로가 넘는 속도로 정액이 분출되어 가장 빨리 도달하는 정자가 난자와 수정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또다시 어릴 때의 기억이다. 초등학교 3~4학년쯤이었을까. 젊은 엄마는 수시로 내게 말을 걸었다. 평소처럼 저녁나절 베개를 깔고 엎드려 숙제를 하고 있고 엄마는 뜨개질을 했었을 거다.
“사내는 자고로 세 뿌리를 조심해야 하능겨!”
“세 뿌리? 그게 뭔데?”
“혀뿌리, 손뿌리, 좆뿌리여!”
어렸던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To be continued.)
▼ 몽골의 거친 산악지대에 서식하는 아르갈리 산양 수컷의 뿔.
▼ 지난 3월 5일에 있었던 뉴스룸의 손석희와 김지은 씨의 인터뷰. 김지은 씨는 손 앵커의 질문에 2~30초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