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제목이 생각나지 않는다. 2000년 안팎이었던 것 같다. 모처럼 아이들과 함께 영화관을 찾았다. 미국에 살아갈 아이들에게 마약의 무서움을 알려줄 목적으로 마이클 더글러스가 분한 정치인의 딸이 마약에 빠져 파멸에 이르게 된다는 영화 광고를 보고 주말에 가까운 영화관에서 보았던 영화의 등급은 PG(Parent Guide)이었다.
고등학생 아이들의 레슨용 영화이었으나 아이와 함께 보기에는 민망한 장면이 많았다. 부모가 마약 구입할 용돈을 끊어버리자 10대 미성년인 딸은 마약을 구하려고 마약상에게 몸을 파는 장면이 너무 적나라했다. 하지만 그런 정도의 영화도 지금은 오히려 순진한 편이다. 인터넷을 들먹일 필요도 없이 영화나 TV 드라마나 개그 같은 오락프로에서도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만큼 자주 등장하는 소재가 없다. 성인은 물론 아이들까지도 섹스폭력물에 공공연하게 노출된다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
‘Magic Mike XXL’이라는 제목의 할리우드 영화가 있다. 남성관객을 위해서 여성을 벗기는 영화가 아니라 그 반대로 여성의 섹스욕구충족을 위해 근육질 남성들의 스트립쇼를 보여주는 영화다. 7백만 불의 제작비로 2012년 LA Film Festival에서 첫 상영된 이 영화가 벌어들인 돈은 1억6천만 불이 넘는다. 모르긴 몰라도 이 영화의 주 소비자는 수컷은 아닐 것이다. 수컷이라면 니글거려서 끝까지 볼 수 없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종교계의 섹스 스캔들도 빼놓을 수 없다. 신부나 목사는 물론 스님도 빠지지 않는다. 무신론자에 가까운 내 눈에 비친 주임신부 같은 종교인들 주위에는 항상 여성들이 보였다. 대학시절에 만난 어느 유명한 부흥회 목사는 숙소에 수시로 찾아오는 여신도들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았다. 권사이었던 모친의 장례식에 왔던 담임목사는 수 십 명의 여성 신도들을 몰고 다녔다. 지금도 대형교회 목사들의 성추행 사건이 뉴스에 나오기도 하고 인구에 회자되지만, 이런 종교계 인사들의 성추행 사건은 항상 쉽게 잊혀지는 경향이 있다.
딸이 고등학생일 때 학교노트를 보고 놀란 적이 있다. 성교육 내용에 성기의 묘사가 너무 노골적이었다. ‘선데이 서울’과 ‘일간스포츠’가 유이(唯二)한 성교육 교과서이었던 세대로서는 경이로웠다. 하지만 그토록 앞서가는 교육의 나라 미국에서도 수컷들의 성추행은 미개한 나라와 다르지 않다. 할리우드의 제작자 ‘하비 와인스틴(Harvey Weinstein)’에게 당한 여배우들에 의해 ‘#MeToo’운동이 본격화되었으니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액션배우 ‘스티븐 시걸’의 20년 전 성추행을 고발한 뉴스도 보았다.
봉준호 감독이 연출한 ‘설국열차’ 제작자로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와인스틴이 충격적인 것은 진보적 성향으로 공공연하게 페미니즘을 지원하며 여성들의 권익을 위한 행진에도 참여한 인사이기 때문이다. 그보다 더 기막힌 것은 그의 여배우에 대한 추행은 업계에서 공공연한 비밀이라는 사실이다. 모두가 알았지만 ‘#MeToo’운동이 전개되기 전에는 아무도 문제 삼지 않았다는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런 점에서는 ‘스티븐 시걸’도 마찬가지다.
다른 동물과는 다르게 이성과 양심이라는 특성을 가진 인간은 이 세상 모든 사람을 속일 수는 있어도 자기 자신은 속이지 못한다. 와인스틴이 페미니스트 여성행진에 기부금까지 내며 적극적으로 참여한 행동도 속죄의 가식이었을 수도 있다. 안희정 씨가 김지은 씨에게 지난 일을 잊어달라고 부탁하고는, 사람들 앞에서 ‘#MeToo’운동을 지지하는 연설을 한 것도 비슷하다. 성욕이라는 본능에 굴복했으나 양심을 속이지 못하는 인간으로서 취할 수 있는 최소한의 행동일지도 모른다. MB처럼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여러분!’이라고 외치며 스스로마저 속이는 행위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재능은 아니다.
본능으로서 수성(獸性)과 이성이라는 신성(神性)을 동시에 가진 모순덩어리 인간은 평생을 욕망과 절제 사이에서 갈등하지 않을 수 없는 존재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뿐만 아니라 동서고금의 모든 문학은 인간의 이런 모순과 갈등을 표현했으며, 수성이 신성을 넘어섰을 때 비극이 되었고 이성이 본능을 억눌렀을 때 인간은 위대해졌다고 말한다. 이성이 본능을 억누르는 것은 양심이 바탕이 된 자제력과 타인에 대한 배려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닥칠 두려움이 큰 탓이기도 하다. 법과 규범이라는 현대국가의 제도가 두려움을 갖게 만든다.
본능이 시키는 대로 따르더라도 두려움이 없다고 판단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법과 규범 위에 존재하는 권력자가 그렇다. ‘연희단 거리패’의 실질적 수장인 이윤택 씨는 일반에게 알려진 인물은 아니지만, 연극계에서 대부로 불릴 만큼 전설적인 거물급 인물이라고 한다. 원로시인 고은 씨도 문학계에서는 그의 말 한마디로 등단이 결정될 만큼 권력을 가졌기에 80세가 넘은 나이에도 성추행이 가능했다. 안희정 씨가 국회의원의 일개 보좌관이었더라도 김지은 씨에게 성폭행을 할 수 있었을까. 와인스틴이 거물급 영화사 ‘Miramax’의 설립자가 아니었다면, 할리우드의 콧대 높은 여배우들이 그에게 굴복했을 리 없다.
무엇이 먼저였을까. 원래 그런 종류의 사람들이었을까, 아니면 권력을 갖게 되면서 괴물로 변했을까. 후자라고 생각하는 이유를 1930년에 발간된 러셀의 저서에서 찾았다.
알렉산더 대왕도 심리학적으로는 정신병자와 다를 게 없었지만 꿈을 이룰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꿈을 실현할 때마다 점점 꿈의 범위를 넓혀갔기 때문에 결국 자신의 꿈을 완전히 실현할 수 없었다. 이름난 정복자 가운데 가장 위대한 정복자로 명성을 날리게 된 그는 신이 되기로 결심했다. 과연 그는 행복했을까? 술에 젖어 지내고, 난폭하게 화를 내고, 여자에게 무관심하고, 자신이 신이라고 주장한 것을 보면 그는 결코 행복하지 않았던 것 같다. - ‘Bertrand Russel’의 ‘행복의 정복(Conquest of Happiness)’에서 인용한 글.
권력이 커갈수록 욕망과 함께 수성(獸性)도 자란다. 권력자일수록 능력보다는 평균 이상의 높은 도덕심이나 이타심이 요구되는 까닭이다. 욕망과 이기심에 휘둘린 권력자의 만행은 이명박근혜 두 대통령으로도 충분하다. 성희롱이나 성추행, 성폭력까지도 그 원인은 권력과 권력에 움츠려드는 자기보호 본능에 있지 남성의 본능인 수컷 탓은 아니다.
이성에 의한 절제력, 양심에 의한 자제력, 도덕에 따른 배려심이 권력과 금력에 앞선다면 갑이 을을 불편하게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안희정 씨의 변명대로 그것이 합의에 의한 관계였다고 하더라도, 도지사와 수행비서 사이에 벌어진 일이라면 100% 권력이 개입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용서받을 수 없다.
<후기>
앞날이 창창했던 안희정이라는 젊은 정치인이 어떻게 성욕이라는 수컷의 본능으로 인해 무너졌는지를 경험에 입각해서 투영해보고자 했던 시도를 어설프게 마칩니다. 원래는 성욕이라는 문제의 본질을 파헤쳐보자는 의도로 시작한 글이었으나, ‘수컷’이라는 단어가 불편한 분들이 있어 더 깊이 들어가지 못하고 얼버무리고 말았습니다.
▼ 영화 'Magic Mike XXL'의 한 장면